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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사이에 오간 돈은 갚으라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꺼내기 어렵습니다. 피붙이라 건넨 정성은 쉽게 잊히고, 어느새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주는 쪽이 아무 말을 하지 않으면 받는 쪽은 그 돈이 어디서 왔는지 끝내 모르기도 합니다.
경기도 남쪽 소도시에 사는 이 씨는 올해 예순다섯입니다. 15년째 시내 사무실 건물에서 청소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새벽 다섯 시에 출근해 열두 개 층의 화장실과 복도를 닦고 나면 점심 무렵에야 허리를 펼 수 있습니다. 남편은 택시를 몰다 무릎이 상해 몇 해 전 일을 그만두었고, 외동딸은 결혼해 이웃 도시에 삽니다.
이 씨에게는 세 살 위 언니가 있습니다. 형부가 하던 인테리어 일이 기울면서 언니네는 늘 형편이 빠듯했습니다. 언니가 식당 일을 나가던 시절, 외아들인 조카는 방학이면 이모 집에서 지냈습니다. 이 씨가 딸과 조카를 나란히 앉혀 놓고 김밥을 말면 조카는 꽁다리만 골라 먹으며 “이모 김밥이 제일 맛있어” 하고 웃었습니다.
조카가 열네 살 되던 해에는 이 씨 생일에 손수건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한 달 동안 군것질을 참고 모은 돈으로 샀다고 했습니다. 이 씨는 그 손수건을 지금도 장롱 서랍에 넣어 두고 있습니다.
조카는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에 한 번 떨어졌습니다. 그해 겨울, 조카가 이 씨 집 현관에 서서 머뭇거리다 말을 꺼냈습니다. “이모, 서울 학원가 고시원에 들어가서 제대로 해 보고 싶어요. 엄마는 못 해 준대요. 딱 3년만 도와주시면 꼭 붙을게요.”
그날 밤 남편은 한참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당신 조카면 내 조카지. 대신 당신 몸 상하게는 하지 마.”
이 씨는 노후 자금으로 붓던 적금을 깼습니다. 주말에는 예식장 청소 일을 하나 더 맡았습니다. 매달 25일이면 조카 통장에 40만 원을 보냈고, 명절과 시험 철에는 따로 얼마씩 더 얹었습니다. 3년 동안 보낸 돈은 모두 1,500만 원이었습니다. 이 씨는 송금할 때마다 늘 들고 다니는 작은 수첩에 날짜와 금액을 적었습니다. 청소 용품 값까지 적어 온 오랜 버릇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카의 연락은 뜸해졌습니다. 전화는 송금이 하루 늦어지는 날에만 왔습니다. “이모, 이번 달 거 아직 안 들어왔는데요.” 언니에게서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 박 씨가 “조카가 인사는 하냐”고 물으면 이 씨는 “공부하느라 정신없겠지” 하고 넘겼습니다.
올여름 조카가 지방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이 씨는 그 소식을 조카가 아니라 언니가 가족 대화방에 올린 사진으로 알았습니다. 서운했지만 혼자 부엌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기뻐했습니다.
합격 발표 두 달 뒤, 언니가 축하 자리를 마련했다며 연락을 해 왔습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토요일 저녁, 이 씨 부부는 시내 한정식집 방에 들어섰습니다. 이 씨의 가방에는 축하금 30만 원을 넣은 봉투가 들어 있었습니다. 새 양복을 입은 조카는 이 씨를 보고 고개만 까딱했습니다.
갈비찜과 전이 오르고 술잔이 한 바퀴 돌자 형부가 조카에게 한마디 하라고 했습니다. 조카가 잔을 들고 일어섰습니다.
“솔직히 3년 동안 정말 힘들었습니다. 세 평짜리 고시원에서 컵라면 먹으면서 누구 도움 없이 혼자 버텼습니다. 그래서 더 뿌듯합니다.”
박수 소리 속에서 이 씨는 수저를 든 채 굳어 버렸습니다. 남편이 이 씨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이 씨가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혼자 버텼다고…”
언니가 웃으며 말을 가로챘습니다. “얘는, 그건 이모가 좋아서 준 거잖아. 그걸 도움이라고 하면 네 이모가 생색내는 사람 되는 거야.” 조카도 따라 웃었습니다. “그러니까요. 이모는 원래 퍼 주는 거 좋아하시잖아요.”
이 씨는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창밖으로 빗줄기가 굵어지고 있었습니다.
식사가 끝나자 종업원이 계산서를 들고 왔습니다. 언니는 계산서를 받아 들더니 상 위로 스윽 밀어 이 씨 앞에 놓았습니다. “막내야, 오늘은 네가 내라. 조카 합격했는데 이모가 한턱내야지.” 계산서에는 38만 원이 찍혀 있었습니다.
이 씨는 계산서를 한참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리고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몇 장을 조심스럽게 뜯어냈습니다. 3년 동안 25일마다 적어 온 날짜와 금액이 빼곡했고, 맨 아래에는 ‘합계 1,500만 원’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 씨는 그 종이를 계산서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습니다.
“언니, 좋아서 준 거 맞아요. 그런데 좋아서 준 돈도 공짜는 아니에요. 새벽 다섯 시에 남의 건물 화장실 닦고, 주말마다 예식장 바닥 밀어서 번 돈이에요.”
이 씨는 조카를 바라보았습니다. “공부는 네가 했으니 혼자 버틴 것도 맞다. 그런데 그 고시원 월세는 누가 냈는지 한 번만 생각해 봐라.”
방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이 씨는 축하 봉투를 꺼내지 않은 채 가방을 닫고 먼저 일어섰습니다. 남편도 말없이 따라 나왔습니다. 등 뒤로 “밥값 몇 푼에 저런다”는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날 밤 이 씨는 서랍 속 손수건을 꺼내 오래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손수건을 내밀던 열네 살 아이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며칠 뒤 이 씨는 마음을 정했습니다. 돈을 돌려받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다만 더는 당연한 사람으로 살지 않기로 했습니다. 추석에 언니 집에 가지 않았고, 차례 장보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언니가 “너 그렇게 나올 거냐”며 전화했을 때 이 씨는 짧게 답했습니다. “언니, 이제 내 정은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한테 쓸게요.” 설에도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조카에게서는 지금까지 전화 한 통 없습니다.
남편이 말했습니다. “잘했어. 그 돈이 아까운 게 아니라 당신이 아까웠던 거야.”
셸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나무는 소년에게 열매와 가지와 줄기까지 내어 줍니다. 소년은 무언가 필요할 때만 나무를 찾아왔습니다. 주는 사랑은 아름답지만, 받는 사람이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순간 그 사랑은 상처가 됩니다.
가족에게 베푼 정성은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에게 끝없이 내어 주는 것은 정이 아니라 나를 깎는 일입니다. 내 땀으로 번 돈이라면 그 돈을 어디에 쓸지는 내가 정해도 됩니다.
늦가을 이 씨는 남편과 함께 동네 저수지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물가의 억새가 바람에 은빛으로 흔들렸고, 보온병에 담아 온 보리차에서 김이 피어올랐습니다. 이 씨는 남편의 무릎을 살피며 천천히, 오래 그 길을 걸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