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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순을 훌쩍 넘겨 이혼이라는 결정을 내리고 나면, 서류 정리보다 먼저 마음을 짓누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들의 눈이지요. 동네 마트에서 아는 얼굴을 마주칠까 봐 고개를 숙이고, 명절이 다가오면 무슨 말을 들을까 싶어 잠을 설칩니다. 잘못한 일도 없는데 죄인처럼 움츠러드는 날이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기도 합니다.
문화부 장관을 지낸 문학평론가 이어령 선생은 2019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남은 내 생각만큼 나를 생각하지 않아”라고 말했습니다. 짧은 한 문장이지만 곱씹을수록 마음이 놓이는 말이지요. 우리는 남들이 내 일을 오래 붙들고 이야기할 거라 여기지만, 실은 저마다 제 삶을 꾸리느라 바쁩니다. 그의 말에 비추어 보면, 이혼 후 우리가 두려워하는 시선 가운데 상당수는 생각보다 가볍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내려놓아도 좋을 시선을 차례로 짚어 보겠습니다.
4위 – 동창 모임의 수군거림
오랜만에 나간 동창 모임에서 누군가 “요즘 혼자 지낸다며?” 하고 물으면 얼굴이 화끈해지지요.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도 그 한마디가 귓가를 맴돕니다. 다들 뒤에서 내 이야기를 하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를 떠올려 보면, 친구들은 금세 손주 이야기와 무릎 수술 이야기로 넘어갔을 겁니다. 내게는 하루 종일 맴도는 말이 그들에게는 수많은 근황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지요. 모임이 반가운 자리라면 계속 나가도 좋습니다. 대화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다른 데로 흘러갑니다.
3위 – 친척들의 혀 차는 소리
명절에 모인 친척들이 “그 나이에 뭘 그렇게까지…” 하며 혀를 차면 서운함이 오래 남습니다. 피를 나눈 사람들이라 더 아프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분들이 내 사정을 얼마나 깊이 알까요. 수십 년 동안 한 지붕 아래서 견뎌 온 시간은 오직 나만 압니다. 친척들의 말은 대개 걱정이 서툴게 튀어나온 것이고, 다음 명절쯤이면 또 다른 집안 소식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다 설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짧게 고맙다고 답하고 넘기셔도 충분하지요.
2위 – 사돈댁의 눈치
자녀가 결혼했다면 사돈댁이 어떻게 볼지가 마음에 걸립니다. 혹시 내 이혼이 자식 얼굴에 먹칠을 하는 건 아닐까, 괜히 자식이 눈치 보며 사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지요.
부모 마음으로는 당연한 걱정입니다. 다만 사돈댁 역시 자기 집안의 크고 작은 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내 생각만큼 그분들이 내 결정을 곱씹고 있지는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면 사돈의 눈을 살피기보다 자식에게 직접 안부 한 번 더 건네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1위 – 내 머릿속에서 만든 남의 눈초리
마지막으로 가장 오래, 가장 집요하게 나를 따라다니는 시선이 있습니다. 실제로 누가 보낸 적도 없는데 내 머릿속에서 스스로 만들어 낸 눈초리이지요. “다들 나를 실패한 사람으로 보겠지”, “저 사람도 속으로 흉보고 있을 거야” 하는 상상 말입니다.
이어령 선생의 말을 가장 깊이 새겨야 할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남은 내 생각만큼 나를 생각하지 않는데, 정작 나 혼자 남의 목소리를 빌려 나를 끝없이 깎아내리고 있는 셈이지요. 동창의 수군거림도, 친척의 혀 차는 소리도 결국 이 상상 속 눈초리를 거쳐 몇 배로 부풀어 오릅니다. 그러니 가장 먼저 꺼야 할 시선은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 있습니다.
이 시선을 끄는 데 거창한 결심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오늘 종이 한 장을 꺼내 ‘남이 뭐라 할까 봐 미뤄 둔 일’을 떠오르는 대로 적어 보시지요. 혼자 식당에 가서 밥 먹기, 동네 문화센터에 등록하기, 오래 연락 끊긴 친구에게 전화하기 같은 것들일 겁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작은 일 하나만 오늘 해 보시길 권합니다. 해 보면 아마 알게 되실 겁니다. 생각보다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는 것을요. 그 가벼움을 한 번 맛보고 나면, 내일 한 걸음은 조금 더 수월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