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1 13:19

“막내에게 유산 8000만원 줬는데..” 6년 뒤 동생이 보여 준 낡은 피아노에 울었다

형제자매 사이에 유산 이야기가 나오면 오랜 정에도 금이 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자기 몫을 선뜻 내려놓는 사람은 드뭅니다. 내려놓은 사람도 마음 한편으로는 그 돈이 어디에 쓰였을지 궁금해하기 마련입니다.

경남 진주에 사는 조경애 씨는 올해 일흔입니다. 진주 시내 한 냉면집 주방에서 서른다섯 해 동안 육수를 끓이다 다섯 해 전 앞치마를 벗었습니다. 남편은 택시 운전을 하다 은퇴했고, 외아들은 창원에서 직장에 다닙니다. 경애 씨는 세 자매 중 둘째입니다. 위로는 부산에 사는 언니가 있고, 아래로는 열일곱 살 어린 막내 미정 씨가 있습니다.

경애 씨는 어릴 적 교회 풍금 소리에 반해 피아노 선생님을 꿈꾸었습니다. 중학교를 마치고 방직공장에 다니며 다섯 해 동안 월급을 모아 스무 살에 중고 피아노 한 대를 들였습니다. 짙은 갈색 칠을 한 업라이트 피아노였습니다. 경애 씨는 건반 뚜껑 안쪽에 볼펜으로 조그맣게 ‘경애’라고 적었습니다. 퇴근하면 밤마다 그 앞에 앉았고, 어린 미정 씨는 언니 무릎에 앉아 건반을 눌러 보곤 했습니다.

스물다섯 살 되던 해 겨울, 아버지가 공사장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습니다. 수술을 두 번 받아야 했지만 집에는 병원비가 없었습니다. 경애 씨는 며칠을 고민하다 피아노를 내놓았습니다. 트럭이 피아노를 싣고 골목을 빠져나가던 날, 여덟 살 미정 씨는 맨발로 트럭을 쫓아가며 울었습니다. 경애 씨는 동생을 업고 돌아오며 말했습니다. “괜찮다. 피아노는 나중에 또 사면 된다.”

그러나 경애 씨는 다시 피아노를 사지 않았습니다. 결혼해 아이를 키우고 식당 주방에 들어간 뒤로는 건반 대신 칼과 국자를 잡았습니다. 미정 씨가 피아노를 전공하겠다고 했을 때 레슨비를 보탠 것도 경애 씨였습니다. 미정 씨는 졸업 뒤 남의 학원에서 이십 년 넘게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아버지는 그 뒤로 오래 사셨습니다. 어머니가 먼저 떠난 뒤 말년 칠 년은 미정 씨가 모셨습니다. 그리고 6년 전 봄, 아흔하나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진주 외곽의 집과 논은 2억 4000만 원 남짓이었습니다. 세 자매가 나누면 한 사람 앞에 8000만 원씩이었습니다.

장례를 마친 날 밤, 경애 씨는 미정 씨를 따로 불렀습니다. “아버지 마지막 몇 년은 네가 다 모셨다. 내 몫은 네가 가져라.” 미정 씨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언니, 그건 안 돼. 언니도 형부랑 노후 생각해야지.” 경애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우리는 연금 나오고 집도 있다. 넌 아직 전셋집 아니냐. 내가 주고 싶어서 주는 거다.”

남편도 “처제가 장인어른 모신 거 우리가 다 봤잖아. 당신 뜻대로 해” 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법무사는 상속을 포기하면 그 몫이 다른 자매들에게 똑같이 나뉘니, 분할 협의서로 정하는 것이 맞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세 자매는 협의서에 경애 씨 몫을 미정 씨에게 돌린다고 적었고, 언니도 군말 없이 도장을 찍었습니다.

그 뒤 6년이 흘렀습니다. 처음 한두 해는 미정 씨가 자주 전화를 걸었지만 점점 연락이 뜸해졌습니다. 명절에도 바쁘다며 반나절만 머물다 돌아갔습니다. 경애 씨가 “그 돈은 잘 두고 있니?” 하고 물으면 미정 씨는 “언니, 조금만 기다려 줘” 하고 말을 돌렸습니다.

경애 씨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제부가 몇 해 전 가게를 접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로는 더 그랬습니다. 혹시 그 빚 갚는 데 다 들어간 건 아닐까, 아직도 전셋집을 옮겨 다니는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준 돈이니 따질 일은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으면서도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올가을 미정 씨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언니, 이번 토요일에 동네에 작은 피아노 교습소를 열어. 형부랑 꼭 와 줘. 언니가 제일 먼저 와야 해.”

토요일 오후, 골목에는 은행잎이 노랗게 깔려 있었습니다. 교습소는 세탁소 2층이었습니다. 계단 입구 간판은 흰 천으로 덮여 있었고, 안에는 동네 아이들과 학부모 스무 명 남짓이 모여 있었습니다. 교실 한쪽에 한 뼘 높이로 짠 작은 무대가 있었고, 그 위에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었습니다.

경애 씨는 그 피아노에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짙은 갈색 칠, 둥글게 깎인 다리, 왼쪽 모서리의 작은 흠집까지. 경애 씨는 홀린 듯 무대에 올라 건반 뚜껑을 열었습니다. 뚜껑 안쪽에 볼펜으로 쓴 ‘경애’ 두 글자가 바랜 채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미정아, 이게… 이게 어떻게 여기 있니?”

미정 씨가 언니 손을 잡았습니다. “언니가 준 돈으로 제일 먼저 한 게 이거 찾는 거였어. 그때 피아노 사 간 사람 이름을 아버지가 수첩에 적어 두셨더라. 그 사람이 교회에 기증했고, 교회가 문을 닫으면서 산청 어느 창고로 갔대. 찾는 데만 2년 걸렸어. 줄은 녹슬고 건반은 다 내려앉아 있었는데, 조율사 선생님이 1년 넘게 고쳐 주셨어. 남은 돈에 학원에서 번 돈 보태서 여기 차린 거야. 미리 말하면 언니가 말릴까 봐 못 했어.”

미정 씨의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언니, 나 그날 트럭 쫓아가던 거 하나도 안 잊었어. 피아노 또 사면 된다고 해 놓고 언니는 평생 한 번도 안 샀잖아. 아버지 살린 게 이 피아노였어.”

그때 제부가 간판을 덮은 천을 걷었습니다. 하얀 바탕에 ‘경애 피아노 교습소’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경애 씨는 그 자리에 선 채 펑펑 울었습니다. 남편이 말없이 어깨를 감싸 주었습니다.

미정 씨가 의자를 빼 주었습니다. “언니가 첫 곡 쳐 줘. 이 교습소 첫 소리는 언니 손으로 내고 싶어.” 경애 씨는 망설이다 의자에 앉았습니다. 서른다섯 해 동안 뜨거운 육수에 데고 칼에 베인 손이었습니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섬집 아기’를 더듬더듬 쳤습니다. 틀린 음이 몇 번 났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습니다. 곡이 끝나자 아이들이 손뼉을 쳤습니다.

오 헨리의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가난한 아내는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의 시곗줄을 사고, 남편은 시계를 팔아 아내의 머리빗을 삽니다. 서로를 위해 가장 아끼는 것을 내놓은 마음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가족에게 무언가를 내어 주고 나면 그 돈이 어디에 쓰일지 마음을 졸이게 됩니다. 하지만 받은 사람이 말이 없다고 해서 잊은 것은 아닙니다. 서운함이 들 때면 조금만 더 기다려 보세요. 오래 품은 고마움은 가장 알맞은 때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지난 주말 경애 씨는 동생과 남강 둑길을 걸었습니다. 강물 위로 붉은 노을이 번졌고, 억새가 바람에 은빛으로 흔들렸습니다. 자매는 다음 주부터 교습소에서 함께 건반을 두드리기로 약속하고, 해가 질 때까지 나란히 앉아 강을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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