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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계피차를 매일 마시면 혈당이 내려간다던데요”, “올리브유를 한 숟갈씩 먹으면 당뇨를 막을 수 있나요?” 같은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식품으로 혈당을 다스리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의사로서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어떤 음식이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그 효과가 얼마나 컸는지와 어떤 조건에서 확인됐는지를 함께 살펴보셔야 한다는 점입니다.
왜 지금 식품을 꼼꼼히 따져봐야 할까
대한당뇨병학회 팩트시트에 따르면 2021~2022년 기준 국내 30세 이상 성인의 당뇨병 유병률은 15.5%, 당뇨병 전단계 유병률은 41.1%입니다. 둘을 합치면 성인 둘 중 한 명 이상이 혈당 관리가 필요한 상태입니다.
당뇨병의 중심에는 췌장의 베타세포가 있습니다. 혈당이 오를 때 인슐린을 내보내는 세포인데, 이 세포가 지치거나 줄어들면 혈당 조절이 어려워집니다. 2003년 미국당뇨병학회 학술지 ‘다이어비티스’에 실린 연구에서는 비만한 제2형 당뇨병 환자의 베타세포 부피가, 체중이 비슷하지만 당뇨병이 없는 사람보다 63%나 적었습니다. 혈당이 오래 높게 유지되면 베타세포에 부담이 쌓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먹느냐는 단순히 오늘의 혈당 숫자를 넘어, 남아 있는 베타세포를 얼마나 아껴 쓰느냐의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 근거는 탄탄하지만 ‘식단 전체’의 결과입니다
올리브유는 비교적 근거가 튼튼한 편입니다.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에는 단일불포화지방인 올레산과 폴리페놀 성분인 히드록시티로솔이 들어 있습니다. 2014년 미국내과학회지에 발표된 스페인 프레디메드(PREDIMED) 연구의 하위분석은 당뇨병이 없는 심혈관 고위험군 3,541명을 중앙값 4.1년 동안 관찰했습니다. 그 결과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를 하루 50mL씩 제공받으며 지중해식 식단을 실천한 그룹은, 저지방 식단을 따른 대조군보다 당뇨병 발생 위험이 40% 낮았습니다.
수치만 보면 무척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해석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 결과는 올리브유 하나가 아니라 채소, 콩류, 생선, 통곡물을 아우르는 지중해식 식단 전체에서 나온 것입니다. 또 올리브유 50mL는 열량이 400kcal 안팎에 이릅니다. 지금 식단은 그대로 둔 채 올리브유만 더하면 오히려 체중이 늘 수 있습니다. 버터나 튀김용 기름을 올리브유로 ‘바꾸는’ 방식이 이 연구의 취지에 더 가깝습니다.
계피: 공복혈당은 내려갔지만 당화혈색소는 그대로였습니다
계피는 효과와 한계를 함께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계피 속 신남알데히드와 폴리페놀은 인슐린 수용체의 신호 전달을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13년 미국가정의학회지에 실린 메타분석은 제2형 당뇨병 환자 543명이 참여한 무작위 대조 시험 10건을 종합했습니다. 하루 120mg에서 6g까지 계피를 4~18주 섭취한 그룹에서 공복혈당이 평균 24.59mg/dL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같은 분석에서 당화혈색소는 의미 있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당화혈색소는 지난 2~3개월의 평균 혈당을 반영하며, 합병증 위험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지표입니다. 아침 공복 수치는 낮아졌어도 하루 전체의 혈당 흐름까지 확실히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연구마다 섭취량 차이가 최대 50배에 달해 결과의 편차가 컸고, 적정 용량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시중에 흔한 카시아 계피에는 쿠마린이 들어 있어, 고용량 보충제를 오래 먹으면 간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 두시기 바랍니다. 요리나 음료에 향신료로 곁들이는 정도가 무난합니다.
피스타치오: 간식을 ‘바꾸는’ 용도로 쓰세요
피스타치오에는 단일불포화지방산과 식이섬유가 풍부합니다. 탄수화물의 흡수 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조합입니다. 다만 견과류도 열량 밀도가 높습니다. 과자나 빵 같은 정제 탄수화물 간식을 대신할 때 의미가 있습니다. 하루 한 줌 정도, 소금이나 설탕을 입히지 않은 제품을 고르시는 것이 좋습니다.
‘좋은 음식’보다 먼저 챙겨야 할 것
여기까지 정리하면 결론은 분명합니다. 혈당에 도움이 된다는 식품의 효과는 대체로 실재하지만, 크기가 제한적이고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하루 탄수화물 총량, 식사의 균형, 꾸준한 신체활동, 적정 체중이라는 기본 위에 얹을 때 비로소 보탬이 됩니다. 중국 연구진이 식이섬유 식단의 효과를 보고한 소규모 임상시험에서도,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전문가들은 식단을 약의 대체재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당뇨병 약이나 인슐린을 쓰고 계신 분이라면, 특정 식품을 많이 늘리거나 보충제를 시작하기 전에 꼭 주치의와 상의하세요. 혈당이 예상보다 크게 떨어지거나 약물과 상호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음식은 약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입니다. 하나의 ‘비법 식품’을 찾기보다 매일의 식탁을 조금씩 바꿔 가는 것, 그것이 베타세포를 오래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