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2 13:52

“모녀 보증금 2500만원 대줬는데..” 8년 뒤 병실에서 내민 통장에 눈물이 났다

세를 놓고 사는 사람에게 세입자는 결국 남입니다. 계약서 한 장으로 맺어진 사이라 계약이 끝나면 각자 갈 길을 갑니다. 그런데 오래 한 지붕 아래 살다 보면 그 남이 가족보다 더 마음에 걸리는 날이 생깁니다.

강 씨는 올해 예순아홉입니다. 열여덟 살에 대패를 처음 잡아 40년 넘게 목수로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남의 집 문틀을 짜고 마룻바닥을 깔았고, 나중에는 동네 인테리어 일을 도맡았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서울 변두리 동네에 3층짜리 다세대 주택을 지었습니다. 강 씨 부부는 3층에 살고 1층과 2층은 세를 놓았습니다. 아들과 딸은 결혼해 각자 살림을 났습니다.

8년 전 봄, 강 씨는 골목 건너편 낡은 연립에 사는 윤 씨 모녀를 알고 있었습니다. 윤 씨는 마흔 초반으로 남편 없이 식당 주방에서 일하며 고등학생 딸을 키웠습니다. 겨울에 그 집 현관문이 뒤틀려 닫히지 않자 강 씨가 연장을 들고 가 고쳐 주었습니다. 돈을 받지 않으니 다음 날 딸이 요구르트 한 줄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할아버지, 엄마가 이거라도 드리래요.”

그해 봄, 윤 씨가 사는 연립이 경매로 넘어갔습니다. 집주인의 은행 빚이 워낙 많아 세입자 보증금은 한 푼도 돌려받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윤 씨는 골목 어귀에서 강 씨를 붙잡고 울었습니다. “어르신, 2500만원이 다예요. 애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마침 강 씨네 1층 세입자가 이사를 나가던 참이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새 세입자의 보증금으로 나가는 사람의 보증금을 돌려주어야 했습니다. 강 씨는 아내와 밤늦게까지 의논했습니다. 아내가 먼저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 적금 깨요. 그 집 애가 고3 올라가는데 길바닥에 나앉게 할 수는 없잖아요.”

강 씨는 목수 일 하며 10년 동안 부어 온 적금을 깨서 나가는 세입자에게 2500만원을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윤 씨 모녀를 보증금 없이 1층에 들였습니다. 월세는 8년 동안 한 번도 올리지 않았습니다. 이사 온 날 강 씨는 남은 원목으로 딸의 책상을 짜 주었습니다. 서랍 손잡이 아래에는 아이 이름 세 글자를 조각칼로 새겨 넣었습니다. “공부 열심히 해라. 이 책상은 네 거다.”

딸은 그 책상에서 간호학과에 붙었고, 4년 뒤 모녀는 공공임대주택에 당첨되어 이사를 나갔습니다. 떠나기 전 윤 씨가 봉투에 50만원을 담아 내밀었지만 강 씨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갚을 생각 말고 애 공부나 끝까지 시키소.”

그 뒤로 연락은 점점 뜸해졌습니다. 명절에 문자 한 통 오다가 그마저 끊겼습니다. 사정을 들은 아들은 혀를 찼습니다. “아버지, 그 돈이면 어머니 무릎 수술을 몇 번은 했겠어요.” 강 씨는 대꾸하지 않았지만, 빈 1층을 지날 때면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습니다.

올가을, 아내가 빗길 계단에서 미끄러져 고관절이 부러졌습니다. 수술을 마친 아내는 큰 병원 정형외과 병동 6인실에 누웠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아침, 창밖에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강 씨가 보온병에 담아 온 미음을 아내에게 떠먹이고 있는데, 담당 간호사가 링거를 갈러 들어왔습니다.

무심코 고개를 든 강 씨의 눈에 간호사 가슴의 이름표가 들어왔습니다. 8년 전 책상 서랍에 조각칼로 새겨 넣었던 바로 그 세 글자였습니다. 강 씨가 숟가락을 든 채 굳어 있는데, 간호사도 강 씨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할아버지… 목수 할아버지 맞으시죠?”

간호사는 링거 줄을 마저 정리하더니 침대 옆에 그대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가운 주머니에서 낡은 통장 하나를 꺼내 두 손으로 내밀었습니다.

“엄마가 이거 늘 갖고 다니라고 했어요. 할아버지 언젠가 꼭 만나면 드리라고요.”

통장은 윤 씨 명의였지만 앞면에 매직으로 ‘목수 할아버지 돈’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안을 펼치자 8년 동안 매달 찍힌 입금 기록이 빼곡했습니다. 20만원, 30만원, 어떤 달은 10만원. 마지막 줄 잔액은 정확히 2500만원이었습니다. 통장 사이에는 꼬깃꼬깃 접힌 쪽지가 끼워져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오시면 꼭 드려라. 엄마가 내밀면 또 손사래 치실 테니 네가 무릎 꿇고 드려라. 그 1층 방이 없었으면 너도 엄마도 없었다.]

간호사가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엄마는 할아버지께 떳떳해지면 연락드린다고, 그 전에는 얼굴 못 뵙겠다고 했어요. 지난달에 다 채웠는데 어떻게 찾아뵐지 몰라서요.”

침대에 누운 아내가 먼저 눈물을 흘렸습니다. 강 씨는 통장을 손에 쥔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끊긴 연락이 서운함이 아니라 8년 동안 지켜 온 염치였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습니다.

그날 저녁, 윤 씨가 식당 일을 마치고 병실로 달려왔습니다. 손에는 아내 몫으로 끓인 전복죽이 들려 있었습니다. 강 씨는 이번에는 손사래를 치지 않았습니다. “고맙게 받겠소. 그 대신 이제 명절에는 문자 말고 얼굴 보여 주소.” 윤 씨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베푼 것을 잊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받은 것을 갚으려고 오래 애쓰는 사람은 더 드뭅니다. 연락이 끊겼다고 그 마음까지 끊긴 것은 아닙니다. 어떤 고마움은 말 대신 시간으로 갚아집니다.

남을 도울 때는 돌려받을 생각 없이 돕되, 상대가 갚으려 할 때는 그 마음을 받아 주는 것도 도리입니다. 받아 주는 일 또한 상대의 자존심을 지켜 주는 인심이기 때문입니다.

열흘 뒤 아내는 퇴원했습니다. 강 씨는 아내가 탄 휠체어를 밀고 집 앞 언덕길을 천천히 올랐습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비에 젖어 골목에 깔려 있었고, 1층 창가에는 늦은 오후 햇살이 비스듬히 들었습니다. 아내가 그 창을 올려다보며 웃었고, 강 씨도 걸음을 멈추고 한참 그 창을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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