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2 14:08

“모교 장학금 몰래 1000만원 보냈는데..” 동창회장 선거 날 감사패 앞에서 벌어진 일

나이가 들수록 동창회는 묘한 자리가 됩니다. 어린 시절 한 교실에서 도시락을 나눠 먹던 친구들도 세월이 지나면 직함과 형편대로 자리를 나눠 앉습니다. 말 잘하는 사람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해 온 사람은 뒷자리로 밀려나기 일쑤입니다.

경상도 바닷가 소도시에 사는 신 씨는 올해 예순다섯입니다. 시장 안 골목에서 38년째 순대국집을 하고 있습니다. 새벽 네 시면 셔터를 올리고 돼지 뼈를 고았고, 아내는 그 곁에서 머릿고기를 썰었습니다. 아들과 딸은 모두 출가해 객지에서 살고, 가게는 부부 둘이 꾸려 왔습니다.

신 씨는 중학교를 겨우 마쳤습니다. 고등학교 입학금을 낼 형편이 안 되어 졸업하던 해 봄부터 이 순대국집에서 그릇을 씻었습니다. 3학년 내내 밀렸던 수업료를 담임 선생님이 대신 냈다는 사실은 졸업식 날에야 알았습니다. “갚을 생각 마라. 나중에 너 같은 아이한테 갚으면 된다.” 그 말이 평생 신 씨의 가슴에 남았습니다.

중학교 동창 최 씨는 반에서 늘 일등이었습니다. 교대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고, 교장으로 정년퇴임했습니다. 신 씨는 그런 친구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최 씨의 부친상 때는 가게 문을 사흘 닫고 장례식장에서 국을 끓여 날랐습니다. 하지만 몇 년 뒤 신 씨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최 씨는 화환 하나만 보내고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동창 모임이 열리면 장소는 늘 신 씨네 가게였습니다. 신 씨는 수육을 넉넉히 썰어 내고 술값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 씨는 옷깃을 털며 웃곤 했습니다. “여기 오면 양복에 냄새가 배서 큰일이야.” 누군가 신 씨를 동창회 총무로 추천했을 때도 최 씨가 먼저 손을 저었습니다. “장사꾼이 바빠서 무슨 임원을 해. 동창회도 체면이 있지.”

10년 전 봄, 담임 선생님의 부고가 왔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선생님의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평생 형편 어려운 제자들 수업료를 몰래 내셨습니다. 그래서 저희 집은 늘 빠듯했지요.” 그날 밤 신 씨는 가게 계산대 앞에서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해마다 천만 원씩 모교에 보내고 싶소.”

“우리 형편에 그 큰돈을 어떻게요.”

“하루 장사 마치고 삼만 원씩만 따로 떼면 되오. 쉬는 날 빼고 일 년이면 얼추 천만 원이오.”

아내는 한참 말이 없다가 장롱에서 새 통장 하나를 꺼내 왔습니다. 그해 겨울, 신 씨는 모교 행정실 창구에 찾아가 첫 돈을 건넸습니다. “이름은 빼 주십시오. 졸업생 한 사람이라고만 해 주시면 됩니다.”

그렇게 ‘이름 없는 선배 장학금’이 생겼습니다. 해마다 후배 열 명이 백만 원씩 받았습니다. 그런데 4년쯤 지나자 동창회에서 이상한 말이 돌았습니다. 최 씨가 술잔을 들고 말했습니다. “그 장학금, 내가 교육계 인맥으로 독지가를 연결한 거야. 이름은 밝힐 수 없고.” 동창들은 역시 교장 출신은 다르다며 박수를 쳤습니다.

신 씨는 국그릇을 나르다가 그 말을 들었습니다. 가게 문을 닫고 아내가 분을 참지 못하자 신 씨는 행주를 짜며 말했습니다. “누가 냈든 아이들이 받으면 그만이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날 밤 신 씨는 오래 잠들지 못했습니다. 최 씨는 그 뒤로도 장학금 이야기를 자랑처럼 꺼냈고, 이번에는 그 공을 앞세워 동창회장 선거에 나섰습니다.

10년째 되던 올가을, 동창회 정기총회가 모교 강당에서 열렸습니다.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리던 토요일이었습니다. 신 씨는 새벽에 끓인 순대국을 큰 솥 두 개에 담아 트럭에 싣고 갔습니다. 점심을 대접하는 일은 올해도 신 씨 몫이었습니다. 신 씨는 앞치마를 두른 채 강당 맨 뒷자리 솥 옆에 섰습니다.

선거 연설이 시작되었습니다. 감색 양복을 입은 최 씨가 연단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여러분, 저는 지난 10년 동안 모교에 장학금을 주선해 왔습니다. 그동안 후배 백 명이 그 혜택을 받았습니다. 이름도 밝히지 않는 독지가를 설득한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동창회장이 되면 이 장학금을 더 키우겠습니다.”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때 강당 뒷문이 열렸습니다. 우산을 접은 모교 현직 교장이 나무 감사패 하나를 안고 들어섰습니다. 최 씨가 반색하며 말했습니다. “아, 교장 선생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이리 올라오시지요.”

교장은 연단에 올라 마이크를 건네받았습니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오늘 총회가 여기서 열린다기에 꼭 전해 드릴 것이 있어 왔습니다. 열 해 동안 해마다 천만 원을 보내 주신 분이 계십니다. 매년 겨울 행정실 창구에 직접 오셔서 이름은 빼 달라고만 하셨지요. 행정실장이 그분 손에서 늘 국 냄새가 났다고 기억합니다.”

강당이 조용해졌습니다. 교장이 감사패를 들어 올렸습니다.

“스물아홉 회 졸업생, 시장에서 순대국집을 하시는 신 선배님. 앞으로 나와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저희 학교는 이 장학금을 누가 주선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백여 명의 눈이 일제히 뒷자리 솥 옆으로 향했습니다. 신 씨는 국자를 내려놓고 앞치마에 손을 닦았습니다. 연단 위 최 씨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감사패에는 ‘이름 없이 십 년, 후배들의 내일을 데워 주신 선배님께’라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신 씨는 감사패를 받아 들고 잠시 머뭇거리다 마이크 앞에 섰습니다. “나는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께 진 빚을 갚았을 뿐이오. 이 패는 학교에 걸어 두고, 내년부터는 장학금을 그 선생님을 기리는 이름으로 불러 주시오.”

최 씨는 그날 후보에서 물러났습니다. 동창들이 신 씨를 회장으로 세우려 하자 신 씨는 손을 저었습니다. “나는 국 끓이는 게 제일 잘하는 일이오. 다들 식기 전에 드시오.” 그날 두 솥의 순대국은 국물 한 방울 남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뒤 저녁, 최 씨가 가게에 혼자 찾아왔습니다. 소주 한 병을 탁자에 올려놓고 한참 만에 입을 열었습니다. “미안하네. 나는 평생 내가 자네보다 낫다고 믿고 살았어.” 신 씨는 말없이 뚝배기에 국을 가득 말아 친구 앞에 놓았습니다.

공을 말로 쌓는 사람이 있고, 손으로 쌓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로 쌓은 공은 그럴듯해 보여도 한순간에 무너지고, 손으로 쌓은 공은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아도 언젠가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옛말이 그래서 오래 남았을 것입니다.

동창 사이에서 결국 남는 것은 직함이 아니라 사람됨입니다. 누가 앞자리에 앉았는지는 금방 잊혀도, 누가 묵묵히 국을 끓였는지는 오래 기억됩니다.

초겨울 들어 신 씨 부부는 가게 문을 조금 일찍 닫고 방파제 길을 걷습니다. 찬 바닷바람에 시장 골목의 국 냄새가 실려 오고, 방파제 끝 빨간 등대에 하나둘 불이 켜집니다. 두 사람은 장학금 통장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집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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