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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제 가게를 차린다고 하면 부모는 가진 것을 털어서라도 보태고 싶어집니다. 그 돈이 장인이 사위에게 건넨 것이라면 마음은 더 조심스럽습니다. 생색은 내지 않되, 받은 사람이 정직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충청도 내륙의 한 산골 마을에 사는 신 씨는 올해 일흔입니다. 마흔 해 넘게 한우를 키웠습니다. 스물여섯에 송아지 두 마리로 시작한 축사는 한때 소가 마흔 마리까지 늘었습니다. 신 씨는 지금도 새벽 다섯 시면 축사 불을 켜고 여물을 줍니다. 아내와 둘이 살고, 출가한 딸이 둘 있습니다.
큰사위는 처음 인사 오던 날부터 신 씨 마음에 들었습니다. 양복을 입고 와서는 밥상을 물리자마자 장화를 빌려 신고 축사로 따라나섰습니다.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던 사위는 손이 야무졌습니다. 고장 난 경운기를 반나절 만에 살려 놓았고, 폭설에 축사 지붕이 내려앉을 뻔했을 때는 밤새 차를 몰고 와 눈을 퍼냈습니다. 신 씨 생일이면 흙투성이 1톤 트럭을 반짝반짝하게 닦아 놓고 가는 것도 사위의 몫이었습니다.
재작년 봄, 큰딸이 친정에 와서 한참 머뭇거리다 말을 꺼냈습니다. 사위가 정비소를 그만두고 손세차장을 차리고 싶어 하는데, 마땅한 자리는 났지만 대출이 막혔다는 것이었습니다. 보증금 3000만 원에 세차 장비 값이 2500만 원이었습니다.
그날 밤 신 씨는 축사 앞을 오래 서성였습니다. 출하를 앞둔 거세우 여섯 마리가 눈에 밟혔습니다. 두 해 가까이 공들여 키운 소들이었습니다. 이튿날 신 씨는 소 장수를 불렀습니다. 소 판 돈으로 모자란 몫은 아내가 십 년 동안 부어 온 적금을 깨서 채웠습니다.
계약하는 날 신 씨는 직접 부동산 사무실에 따라갔습니다. 보증금은 신 씨 통장에서 건물주 오 씨에게 곧장 보냈습니다. 신 씨는 오 씨의 손을 잡고 “우리 사위 잘 부탁합니다” 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사위는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장인어른, 자리 잡는 대로 이자부터 꼬박꼬박 드리겠습니다.” 신 씨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이자는 무슨. 장사가 먼저네. 자리 잡거든 그때 천천히 갚게.”
그렇게 2년이 흘렀습니다. 명절에 만나면 사위가 먼저 한숨을 쉬었습니다. “장비 할부에 인건비에 아직 적자입니다. 이자도 못 드려서 면목이 없습니다.” 신 씨는 그 말을 믿었습니다.
그사이 신 씨 형편은 빠듯해졌습니다. 사료값은 오르고 소값은 내려 축사를 지키기도 버거웠습니다. 아내는 빈 우리를 보며 “그 돈 반만 있어도 송아지를 들일 텐데” 하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한번은 읍내에 나갔다가 일부러 세차장 앞을 지났는데, 차들이 길가까지 줄을 서 있었습니다. 신 씨는 ‘주말이라 그렇겠지’ 하고 돌아섰습니다.
올가을, 사돈 내외의 금혼식이 열렸습니다. 부슬비가 내리는 토요일, 시 외곽 한정식집 연회실에는 ‘결혼 50주년을 축하합니다’라는 금빛 현수막이 걸렸고, 3단 케이크 옆에 한복 차림의 사돈 내외가 앉아 있었습니다. 신 씨 내외는 축사에서 키운 소로 한우 갈비 한 상자를 마련해 갔습니다.
사위가 부모님께 큰절을 올리고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번듯하게 사는 건 다 부모님 덕분입니다. 부모님이 차려 주신 세차장 덕에 이제 밥벌이 걱정은 안 합니다.” 박수가 터졌습니다. 사위의 누나, 큰딸에게는 시누이가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럼요. 엄마 아빠가 그 세차장 차려 주느라 얼마나 속을 끓이셨는데요.”
큰딸이 숟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신 씨 아내는 식탁 밑으로 남편의 손을 꽉 쥐었습니다. 그때 하객 사이에서 한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바깥사돈과 같은 계모임에 나간다는 건물주 오 씨였습니다.
“아이고, 계약서에 보증금 넣으신 장인어른도 오셨네요. 그때 손잡고 사위 잘 부탁한다시던 게 아직도 생생합니다.”
연회실이 조용해졌습니다. 얼굴이 붉어진 시누이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습니다. “아니, 처음엔 사돈어른이 좀 보태셨어도 지금은 동생이 다 하는 거예요. 장사가 잘돼서 매달 엄마 아빠 생활비로 200만 원씩 꼬박꼬박 보내는데….” 안사돈이 딸의 팔을 잡아당겼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큰딸이 남편을 바라보았습니다. “매달 200만 원이요? 적자라서 우리 아빠 이자도 못 드린다면서요.” 사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바깥사돈은 헛기침만 했습니다. 하객들 사이로 수군거림이 번졌습니다.
신 씨가 천천히 일어났습니다. “사돈어른, 좋은 날 언짢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자식이 부모 생활비 드리는 거, 나는 나무랄 생각 없습니다.” 신 씨는 사위를 보았습니다. “다만 자네가 적자라고 한 말이 제일 아프네. 나는 그 말을 믿고 소 판 자리를 2년째 비워 뒀어.”
사위가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장인어른, 죄송합니다. 본가 사정이 급해서… 장인어른은 기다려 주실 줄 알고 그만….” 안사돈이 일어나 신 씨에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사돈, 우리가 염치가 없었습니다.”
신 씨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이자는 필요 없네. 원금만 다음 달부터 형편 되는 대로 갚게. 그리고 내 딸한테 더는 숨기는 게 없어야 하네.” 그날 이후 사위는 매달 150만 원씩 돈을 보내왔고, 장부는 큰딸이 직접 챙겼습니다. 신 씨는 첫 돈으로 송아지 두 마리를 들였습니다.
도와준 사람은 대개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받은 사람은 더 정직해야 합니다. 형편이 어려운 건 흉이 아니지만, 그 형편을 핑계 삼아 고마운 사람을 속이는 순간 정은 금이 갑니다.
혹시 갚지 못한 신세가 있다면 돈보다 먼저 사실을 말해 주세요. “아직 못 갚습니다”보다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라는 한마디가 사람 사이를 지킵니다.
늦가을 저녁, 신 씨는 아내와 축사 앞에 나란히 섰습니다. 산마루로 해가 넘어가며 마른 볏짚 위에 붉은빛이 번졌고, 새로 들인 송아지 두 마리가 어미 곁에서 콧김을 뿜었습니다. 신 씨는 송아지 등을 한 번 쓸어 주고 축사 불을 켰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