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1 15:33

“사위에게 은혼식비 600만원 줬는데..” 8개월 뒤 식당 사장의 한마디에 주저앉았다

가족 사이의 돈은 따지지 않는 것이 정이라고들 합니다. 자식이 “제가 알아서 할게요” 하고 나서면 부모는 고마운 마음에 영수증 한 장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확인하지 않은 믿음은 때로 엉뚱한 곳으로 새어 나가기도 합니다.

경남 김해시에 사는 배정숙 씨는 올해 예순입니다. 식당 주방 일을 하다가 마흔아홉에 자격증을 따서 11년째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하루 세 시간씩 두 집을 돌며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식사와 목욕을 돕습니다. 남편 한상철 씨는 예순셋으로, 30년 넘게 시내버스를 몰다 지난해 정년을 맞았습니다. 늦게 결혼해 얻은 외동딸 은비는 스물다섯입니다. 재작년 가을 서른한 살 강태호와 결혼해 창원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위 태호는 자동차 부품 회사 영업직이었습니다. 처음 인사를 오던 날, 태호는 과일 상자와 함께 핸드크림 세 통을 내밀었습니다. “은비한테 들었어요. 어머님이 어르신들 씻겨 드리느라 손이 많이 트신다고요.” 정숙 씨는 그 자리에서 마음을 열었습니다.

결혼 뒤에도 태호는 싹싹했습니다. 김장하는 날이면 소매를 걷어붙이고 절인 배추 마흔 포기를 혼자 날랐습니다. 장인이 마지막 운행을 마치던 날에는 꽃다발을 들고 차고지까지 찾아왔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아들 없는 집에 아들이 들어왔네” 하며 부러워했습니다.

지난해 겨울, 은비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엄마, 내년 2월이면 엄마 아빠 결혼 25주년이잖아. 은혼식 해 드리고 싶어.” 며칠 뒤 태호가 직접 찾아와 말을 보탰습니다. “어머님, 식당 예약이랑 현수막, 답례떡까지 제가 다 맡을게요. 손님 마흔 분쯤이면 600만 원은 들 것 같습니다. 저희가 보태야 하는데 형편이 빠듯해서 죄송해요.”

정숙 씨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너희 돈은 넣지 마라. 우리 잔치니까 우리가 낸다.” 정숙 씨는 월급에서 매달 25만 원씩 2년 동안 부어 온 적금을 깼습니다. 남편 무릎 수술 때 쓰려고 모은 돈이었지만, 평생 한 번뿐인 은혼식이라 아깝지 않았습니다. 600만 원은 그날 사위 통장으로 보냈습니다.

2월 말 토요일, 김해 시내 한 한정식집에서 잔치가 열렸습니다. 친척과 교회 식구, 요양센터 동료들까지 마흔두 명이 모였습니다. 잔치가 끝나자 태호는 방명록과 봉투 꾸러미를 챙기며 말했습니다. “어머님 피곤하시죠. 축의금은 제가 정리해서 드릴게요.”

일주일 뒤 태호는 손글씨 영수증 두 장과 봉투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식당 480만 원, 떡과 현수막 120만 원이었습니다. 봉투에는 150만 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축의금은 이게 전부예요. 요즘 다들 어렵잖아요.” 정숙 씨는 생각보다 적다 싶었지만, 사위 얼굴을 보고 더 묻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하나둘 생겼습니다. 봄이 되자 태호는 차를 새것으로 바꿨습니다. 여름에는 은비가 “오빠가 요즘 카드값 때문에 예민해” 하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정숙 씨는 젊은 사람들 살림이 다 그렇겠거니 하고 넘겼습니다.

그리고 8개월이 지난 이달 초, 요양센터 동료들과 저녁 모임이 잡혔습니다. 장소는 공교롭게도 은혼식을 했던 그 한정식집이었습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우산을 접고 들어서는데, 계산대에 있던 사장이 반갑게 아는 체를 했습니다.

“아이고, 은혼식 하셨던 사모님 아니세요? 그때 사위분이 영수증을 두 장으로 끊어 가셨죠. 카드 영수증 말고 간이영수증을 빈칸으로 하나 더 달라고 하셔서요. 회사 경비로 처리하신다고요.”

정숙 씨의 손에서 우산이 미끄러졌습니다. “사장님, 그날 식대가 얼마였는지 기억하세요?” 사장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장부를 뒤져 카드 매출 내역을 보여 주었습니다. “떡이랑 현수막까지 저희가 묶어서 해 드렸어요. 전부 합쳐 300만 원이었습니다.”

정숙 씨는 계산대 옆 의자에 그대로 주저앉았습니다. 480만 원, 120만 원이라고 적힌 사위의 손글씨가 눈앞에 어른거렸습니다. 동료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정숙 씨는 “체했나 봐” 하고 얼버무렸습니다. 사장은 난처한 얼굴로 매출 내역을 한 장 뽑아 건넸습니다.

그날 밤 정숙 씨는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은비에게 은혼식 방명록을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방명록에는 손님 이름 옆에 은비가 적어 둔 금액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더해 보니 410만 원이었습니다. 정숙 씨가 받은 돈은 150만 원뿐이었습니다.

일요일 오후, 정숙 씨는 태호를 혼자 불렀습니다. 거실 상 위에 매출 내역과 방명록을 나란히 올려놓았습니다. 남편은 말없이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습니다.

“태호야, 잔치 비용은 300만 원이었더라. 축의금은 410만 원이었고. 내가 준 돈이랑 받은 돈을 맞춰 보니 560만 원이 비는구나.”

태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한참을 고개 숙이고 있던 태호가 입을 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머님. 작년에 주식으로 돈을 잃어서 카드 돌려막기를 하고 있었어요. 은비한테는 말도 못 하고…. 잠깐 쓰고 채워 넣으려고 했습니다.”

정숙 씨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습니다. “그 돈은 내가 어르신들 기저귀 갈고 목욕시켜 드리면서 2년 동안 모은 돈이다. 한 달 안에 560만 원 돌려다오. 은비한테는 네 입으로 직접 말해라. 그래야 너희가 앞으로 같이 살 수 있다.”

태호는 새로 산 차를 팔아 3주 만에 560만 원을 모두 보냈습니다. 은비는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 한바탕 울었지만, 둘이 함께 빚을 정리하기로 했다고 전해 왔습니다. 정숙 씨는 사위를 내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마음속에 분명히 정했습니다. 앞으로 집안 돈은 사위든 딸이든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고, 영수증은 반드시 자기 손으로 받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돌려받은 돈으로 정숙 씨는 식당 사장에게 떡 한 상자를 보냈습니다. “사장님 덕분에 늦게라도 알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솝 우화에서 여우는 까마귀의 목소리를 한껏 추어올려 물고 있던 고기를 떨어뜨리게 만듭니다. 다정한 말과 싹싹한 손길은 고마운 것이지만, 그것이 돈 계산을 대신해 주지는 않습니다.

가족끼리 영수증을 따지는 것이 야박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큰돈이 오갈 때는 처음부터 결제 내역을 함께 보고, 축의금은 받은 사람이 직접 세는 것이 서로를 지키는 길입니다. 확인은 의심이 아니라 오래 정을 나누기 위한 약속입니다.

지난 주말 정숙 씨는 남편과 함께 해반천 산책로를 걸었습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물길을 따라 흘러갔고, 낮게 기운 햇살이 둑길을 따뜻하게 비추었습니다. 남편이 정숙 씨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은혼식은 그날 한 게 아니라 오늘 하는 것 같네.” 정숙 씨는 웃으며 남편의 손을 꼭 맞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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