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알면 삶을 안다..” 이어령 선생이 말한 죽음 앞에 남는 것 4가지

장례식장에 다녀온 날 밤에는 유난히 잠이 쉽게 오지 않습니다. 영정 사진 속 얼굴을 떠올리다 보면 ‘저분은 무엇을 남기고 가셨을까’, ‘나는 무엇을 남기게 될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오지요. 평소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 두던 질문이 그런 날에는 조용히 마음의 문을 두드립니다.

문학평론가이자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선생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죽음을 두려워하며 외면하라는 말이 아니지요. 끝이 있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지금 이 삶에서 무엇이 귀한지 또렷해진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의 가르침에 비추어, 삶의 끝에서 끝내 남는 것이 무엇인지 네 가지로 짚어 보려 합니다.

4위 – 손수 남긴 기록

사람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다 보면 뜻밖의 것이 가장 큰 울림을 줍니다. 값나가는 물건보다 수첩 귀퉁이에 적힌 메모, 달력에 동그라미 친 날짜,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짧은 편지가 오래 마음에 남지요. 그 사람이 어떤 하루를 살았는지가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거창한 자서전을 쓰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무엇을 보았고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몇 줄 적어 두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기록은 남는 이들에게는 선물이 되고, 쓰는 나에게는 하루를 한 번 더 살아 보는 시간이 되어 줍니다.

3위 – 건네 본 고마움

떠난 이를 떠올릴 때 가장 아프게 남는 것은 대개 하지 못한 말입니다. “그때 고맙다고 할 걸” 하는 아쉬움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옅어지지 않지요. 반대로 이미 건넨 고마움은 서로에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습니다.

고마움은 마음속에만 있을 때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입 밖으로 나오고, 상대에게 닿을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이지요. 끝이 있다는 것을 알면, 고맙다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귀한지도 함께 알게 됩니다.

2위 – 나다웠던 시간

남의 눈치를 보며 보낸 시간은 돌이켜 보면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반면 내가 좋아서 몰두했던 일, 내 생각대로 선택했던 순간은 세월이 흘러도 선명하게 남지요. 그 시간들이 모여 ‘나’라는 사람의 모양을 이룹니다.

삶에 끝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남은 시간을 누구의 기준으로 채우겠느냐고요. 하루 중 단 한 시간이라도 온전히 나답게 쓰는 사람은, 그 한 시간만큼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 셈입니다.

1위 – 온전히 살아 낸 오늘

결국 죽음 앞에 가장 크게 남는 것은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보다 ‘얼마나 깨어 있는 채로 살았는가’일 것입니다. 무심히 흘려보낸 십 년보다 마음을 다해 맛본 하루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지요. 창밖의 햇살, 밥 한 숟가락의 온기, 가족의 목소리 같은 평범한 장면이 사실은 삶의 전부일지도 모릅니다.

이어령 선생의 말처럼 죽음을 안다는 것은 결국 오늘을 안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일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면, 오늘은 그저 지나가는 하루가 아니라 다시 오지 않을 하루가 됩니다. 그 하루를 온전히 살아 내는 것, 그것이 끝에 가서 가장 든든하게 남는 것이지요.

오늘 저녁에는 작은 일 하나만 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휴대전화 사진첩 대신 종이 한 장을 꺼내, 오늘 가장 좋았던 장면을 딱 한 문장으로 적어 보는 것입니다. “점심에 먹은 된장국이 유난히 따뜻했다” 같은 짧은 문장이면 충분합니다.

그 한 줄이 쌓이면 손수 남긴 기록이 되고, 하루를 온전히 살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삶을 안다는 것은 생각보다 이렇게 작은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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