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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를 보낸 뒤 집에 들어앉으면 마음보다 몸이 먼저 무너진다. 끼니를 거르고 텔레비전 소리만 집 안을 채우는데도 본인은 “이제 괜찮다”고 말한다. 장례를 치르고 몇 주가 지나면 자녀들은 각자의 생활로 돌아간다. 그 뒤로는 두 사람 몫이던 하루를 혼자 메우는 일만 남는다.
그런데 같은 일을 겪고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웃는 얼굴로 사람들 앞에 나오는 이들이 있다. 사별 상담가들은 이들이 유난히 강해서가 아니라 생활을 다시 짜는 방식이 달랐다고 말한다. 그 공통점을 정리했다.
3위. 배우자 물건 정리를 서두르지 않았다
장례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녀가 “아버지 옷은 이번 주말에 저희가 싹 치워 드릴게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자식은 짐을 덜어 드리려는 마음이지만, 어머니는 그 말을 남편의 흔적을 서둘러 지우자는 소리로 듣는다. 고맙다고 대답하면서도 아직 그 옷장 앞에 혼자 서 볼 틈도 없었다는 생각에 서운함이 남는다.
한꺼번에 비우면 슬픔을 마주할 시간이 사라지고, 버린 물건을 두고 오래 후회하기도 한다. 다시 웃게 된 사람들은 정리를 여러 번에 나눠 했다. 계절이 바뀔 때 옷 한 칸, 기일 무렵 서랍 하나를 정리하는 식이다. 자녀라면 날짜를 정하기보다 “준비되시면 같이 해요” 정도로 말해 두는 편이 무난하다.
2위. 배우자가 맡던 역할과 대화를 새 관계로 채웠다
혼자 남은 남편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집사람이 다 해서 나는 공과금 내는 법도 모르네”라고 웃으며 털어놓는 일이 있다. 친구는 따라 웃으면서도 속으로는 저 사람이 한동안 고생하겠다고 걱정한다. 은행 일과 친척 경조사 챙기기, 저녁상에서 하루 얘기를 들어 주던 일까지 생각하면 한 사람이 맡던 몫은 생각보다 넓다.
빈자리를 그대로 두면 생활이 막히고 말할 상대도 사라진다. 회복한 사람들은 역할마다 새로운 사람을 찾았다. 서류 일은 자녀나 주민센터 창구에 묻고, 저녁 대화는 형제나 비슷한 처지의 친구와 전화로 나눴다. 배우자를 대신할 한 사람을 찾기보다 여러 사람에게 조금씩 기대는 쪽이 오래간다.
1위. 요일마다 정해둔 외출 일정이 있다
자녀가 안부 전화를 걸 때마다 “오늘도 그냥 집에 있었다, 나가 봐야 뭐 하나”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집이 있다. 그러면 자식은 별일 없다는 말보다 가라앉은 목소리를 먼저 듣는다. 부모는 걱정을 끼치기 싫어 담담하게 말한 것이지만, 듣는 쪽은 전화를 끊고 나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나갈 이유가 없는 날이 이어지면 식사와 잠이 흐트러지고 걷는 양이 줄어든다. 기분이 내킬 때 나가겠다고 마음먹으면 그런 날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다시 웃게 된 사람들은 화요일은 복지관 강좌, 목요일은 동네 산책 모임, 토요일은 시장 보기처럼 요일마다 일정을 정해 두었다. 정해진 일정이 있으면 기분과 상관없이 문밖으로 나서게 된다. 처음에는 한 주에 하루면 충분하다.
배우자를 보낸 슬픔은 시간이 지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슬픔을 안고도 하루가 굴러가게 만드는 장치는 만들 수 있다. 이번 주 달력에 나갈 날 하루를 적고, 오래 연락하지 못한 사람에게 먼저 전화를 거는 것으로 시작하면 된다. 옷장 정리는 그다음이어도 늦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