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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오래 장사를 한 사람에게 이웃은 식구나 다름없습니다. 밥때가 되면 반찬을 나누고, 형편이 어려운 집 아이에게는 일거리를 주며 용돈을 쥐여 줍니다. 그렇게 건넨 정은 언젠가 돌아오리라 믿지만, 모든 정이 같은 마음으로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경남 진주에 사는 배영숙 씨는 올해 예순넷입니다. 진주 시내 전통시장 한복판에서 25년째 이불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택시 운전을 하다 은퇴한 남편은 허리가 좋지 않아 오후에만 가게에 나와 배달을 거듭니다. 아들은 창원에서 회사에 다니고, 딸은 서울로 시집갔습니다.
가게 뒤 골목 연립주택 아래층에는 윤지혜라는 아이가 엄마와 단둘이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지혜가 열 살 때 공사장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엄마는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며 딸을 키웠습니다. 영숙 씨는 지혜가 고등학생이 되던 해부터 방학마다 가게 일을 맡겼습니다. 이불을 개고 먼지를 털면 하루 3만 원씩 쥐여 주었습니다.
지혜는 손이 야무졌습니다. 처음엔 이불 모서리도 못 맞추던 아이가 한 달 만에 솜이불과 극세사 이불을 척척 구분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엄마가 식당 일을 빠질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영숙 씨는 가게 문을 닫고 꽃다발을 사 들고 갔습니다. 지혜는 운동장에서 영숙 씨를 보자마자 달려와 안겼습니다. “이모, 이모가 우리 엄마 같아요.”
졸업 뒤 지혜는 아예 가게 직원이 되었습니다. 전화 응대도, 장부 정리도 영숙 씨보다 깔끔했습니다. 대구와 경기도 거래처 공장에 주문을 넣는 일도 어느새 지혜 몫이 되었습니다. 지혜는 늘 작은 수첩을 들고 다니며 무언가를 적었습니다. 영숙 씨는 남편에게 자랑했습니다. “저 봐라, 일을 저렇게 배우는 아가 어디 있노.”
지혜가 스물일곱이 되던 해 봄, 가구 배달 일을 하는 청년과 결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표정이 밝지 않았습니다. 영숙 씨가 캐묻자 지혜는 고개를 숙였습니다. “엄마가 모아 둔 돈이 없어요. 시댁에 이불 한 채 해 갈 형편도 안 돼요.”
그날 밤 영숙 씨는 장롱 속 통장을 꺼냈습니다. 손주 돌잔치 때 금반지를 해 주려고 3년 동안 부어 온 적금 500만 원이었습니다. 거기에 가게 한 달 매상에서 200만 원을 보탰습니다. 남편은 잠시 말이 없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우리 가게에서 큰 아인데, 빈손으로 시집보낼 수야 없지.”
영숙 씨는 가장 좋은 목화솜 이불과 원앙 베개, 시댁 어른들께 드릴 차렵이불까지 손수 골라 혼수함을 꾸렸습니다. 남은 돈은 봉투에 넣어 지혜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이불값 빼고 남은 거다. 냄비라도 사라. 갚을 생각 말고 잘 살기만 해라.” 지혜는 펑펑 울었습니다. “이모, 이 은혜 평생 안 잊을게요.”
결혼 뒤 지혜는 남편 직장이 있는 사천으로 간다며 가게를 그만두었습니다. 처음 몇 달은 안부 전화가 왔지만 점점 뜸해졌습니다. 명절에 보낸 문자에도 답이 늦었습니다. 영숙 씨는 서운했지만 신혼살림에 바쁘겠거니 했습니다. 그사이 가게 맞은편 그릇가게가 문을 닫았고, 그 자리는 1년 넘게 빈 점포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올해 시월 초, 아침부터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20년 넘게 이불을 사 가던 단골 할머니가 우산을 털며 들어섰습니다. “배 사장, 맞은편에 이불가게 새로 여는 거 아나? 근데 화환 리본에 적힌 이름이 낯이 익데. 그 집에서 일하던 지혜 아이가?”
영숙 씨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우산도 없이 가게 밖으로 나갔습니다. 늘 닫혀 있던 맞은편 셔터가 올라가 있었고, 새 간판에는 ‘지혜침구’라는 글자가 반짝였습니다. 빗물에 젖은 화환 리본에는 ‘축 개업 윤지혜 대표님’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 옆 화환을 보낸 곳은 다름 아닌 대구의 거래처 공장이었습니다.
가게 안에서는 앞치마를 두른 지혜가 손님에게 이불을 펼쳐 보이고 있었습니다. 진열된 이불은 영숙 씨 가게와 똑같은 공장의, 똑같은 무늬였습니다. 지혜는 창밖의 영숙 씨와 눈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등을 돌렸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단골들의 발길이 하나둘 줄었습니다. 혼수 이불을 맞추기로 했던 손님은 전화로 예약을 취소했습니다. 이불 솜을 갈러 온 아주머니가 머뭇거리다 털어놓았습니다. “사장님, 그 집 아가씨가 문자를 보냈더라고요. 원래 이 집 물건은 자기가 다 골랐다고, 같은 물건을 만 원씩 싸게 준다고요.”
단골 연락처는 가게 장부에만 적혀 있었고, 그 장부를 정리하던 사람은 지혜뿐이었습니다. 영숙 씨는 그제야 지혜가 늘 들고 다니던 작은 수첩을 떠올렸습니다. 일을 배우려고 적는 줄 알았던 그 수첩에는 손님 이름과 전화번호, 거래처 단가가 빼곡히 적혀 있었던 것입니다.
대구 공장 사장에게 전화를 걸자 사장은 오히려 놀랐습니다. “배 사장님이 소개해서 분점 내는 거라던데요. 단가도 똑같이 해 달라고 해서 그렇게 해 줬습니다.” 영숙 씨는 수화기를 든 채 한참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영숙 씨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졸업식 날 안겨 오던 아이, 혼수 봉투를 받고 울던 아이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남편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정은 줬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건 정을 갚은 게 아이고 가게를 훔쳐 간 기다. 선은 그어야 한다.”
다음 날 영숙 씨는 거래처 세 곳에 차례로 전화를 걸어, 소개한 적이 없다는 것과 지혜가 장부를 몰래 옮겨 적었다는 사정을 담담하게 설명했습니다. 대구 공장 사장은 “알았으면 안 받았을 겁니다. 그쪽과는 따로 이야기하겠습니다” 하고 사과했습니다. 단골들에게도 일일이 전화해, 문자를 보낸 사람은 이제 가게와 상관이 없다고 알렸습니다.
일주일 뒤 저녁, 지혜가 떡 상자를 들고 가게 문을 열었습니다. “이모, 인사가 늦었어요. 같은 시장에서 서로 도우면서 하면 좋잖아요.” 영숙 씨는 상자를 받지 않았습니다. “지혜야, 내가 니한테 준 건 이불하고 돈이 아이라 믿음이었다. 니가 그 믿음을 수첩에 적어 갔으면, 우리 인연도 거기서 끝난 기다. 다시는 오지 마라.” 지혜는 입술을 깨물다 돌아섰고, 영숙 씨는 그 뒷모습을 끝까지 보지 않고 셔터를 내렸습니다.
이솝 우화 속 농부는 겨울 길에서 얼어 죽어 가는 뱀을 품에 넣어 녹여 줍니다. 그러나 몸이 따뜻해진 뱀은 가장 먼저 자신을 살린 농부를 뭅니다. 베푼 정이 크다고 해서 받은 사람이 그만큼의 마음을 품는 것은 아닙니다.
정을 베푸는 일은 아름답지만, 장부와 거래처 정보만큼은 아무리 가까운 사람에게도 통째로 맡기지 마세요. 그리고 믿음을 배신당했다면 혼자 앓지 말고, 알려야 할 사람에게 사실을 차분히 알리세요. 정을 지키는 일과 선을 긋는 일은 다르지 않습니다.
늦가을 어느 저녁, 영숙 씨는 남편과 함께 남강 둑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진주성 성벽 위로 단풍이 붉게 물들었고, 강물 위로 저녁 햇살이 잔잔하게 부서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영숙 씨는 평소처럼 셔터를 올리고, 새로 들어온 목화솜 이불을 가장 앞자리에 정성껏 펼쳐 놓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