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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붙이 사이에 오간 돈은 차용증 대신 믿음으로 남습니다. 그래서 그 돈이 돌아오지 않을 때 더 서운한 것은 액수가 아니라 끊어진 연락입니다. 하지만 소식이 없다고 해서 마음까지 끊어진 것은 아닐 때도 있습니다.
경기 수원시 권선구에 사는 박연화 씨는 올해 쉰여덟입니다. 서른 살 무렵 화장품 방문판매를 시작해 28년째 같은 동네를 돌고 있습니다. 바퀴 달린 가방에 샘플을 가득 싣고 미용실과 시장 상인들을 찾아다니는 것이 연화 씨의 일입니다. 남편 김상철 씨는 개인택시를 몰고, 외동딸은 몇 해 전 시집을 갔습니다.
연화 씨에게는 각별한 조카가 하나 있습니다. 친언니 순화 씨의 외아들 송재우입니다. 형부가 일찍 세상을 떠난 뒤 언니는 식당 주방 일을 하며 혼자 재우를 키웠습니다. 언니가 늦게까지 일하는 날이면 어린 재우는 이모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잠이 들곤 했습니다.
방학이면 연화 씨는 재우를 데리고 방문판매를 다녔습니다. 재우는 이모 가방을 끌어 주겠다며 앞장섰고, 단골 아주머니들은 “이모 따라다니는 기특한 녀석”이라며 사탕을 쥐여 주었습니다. 중학생 때는 이모 생일이라며 핫케이크를 구워 왔습니다. 겉은 새까맣게 탔고 속은 덜 익어 있었지만, 연화 씨는 남김없이 먹으며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하고 웃었습니다.
재우는 군대를 다녀와 동네 빵집에서 새벽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퇴근해도 얼굴은 늘 밝았습니다. 그러던 8년 전 봄, 스물다섯 살 재우가 이모 집 현관에 쭈뼛거리며 서 있었습니다.
“이모, 제빵 학교에 제대로 다녀 보고 싶어요. 그런데 학비가 1200만 원이래요. 엄마한테는 말도 못 꺼냈어요. 2년 안에 꼭 갚을게요.”
그 돈은 연화 씨가 5년 동안 부어 온 적금이었습니다. 남편 환갑에 둘이 제주도 여행을 가려고 화장품 한 통 팔 때마다 조금씩 떼어 모은 돈이었습니다. 그날 밤 연화 씨가 털어놓자 남편은 “여행은 나중에 가도 돼. 애 앞길이 먼저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다음 날 연화 씨는 적금을 깨 재우 통장으로 보냈습니다. “갚는 건 천천히 해. 대신 나중에 이모 먹을 빵은 네가 구워야 한다.” 재우는 고개를 깊이 숙이고 한참을 들지 못했습니다.
처음 1년은 소식이 잦았습니다. 실습 시간에 만든 식빵 사진을 보내오기도 하고, 자격증을 땄다며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졸업할 무렵부터 연락이 뜸해지더니, 어느 날부터는 전화번호마저 바뀌어 있었습니다.
언니에게 물어도 “지방 어디서 일한다더라” 하고 말끝을 흐렸습니다. 명절에도 재우는 오지 않았습니다. 친척 모임에서 누군가 “조카한테 돈 빌려주면 그걸로 끝이야” 하고 혀를 찰 때마다 연화 씨는 웃어넘겼지만, 집에 오는 길에는 속이 쓰렸습니다. 돈보다 재우가 자신을 피한다는 사실이 더 아팠습니다. ‘그 녀석도 결국 떼먹고 숨는구나.’ 그런 생각이 드는 자신이 또 싫었습니다.
그렇게 8년이 흘렀습니다. 올가을 남편이 환갑을 맞았습니다. 잔치는 따로 하지 않고 동네 한정식집에서 가족끼리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늦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아침상을 치우는데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택배 기사가 커다란 아이스박스 하나를 내려놓고 갔습니다. 보낸 곳은 전남 순천시였습니다. 순천에 아는 사람이 없던 연화 씨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아이스박스를 열자 하얀 케이크 상자가 나왔고, 뚜껑에는 연분홍 글씨로 가게 이름이 찍혀 있었습니다. ‘연화당’.
연화 씨는 그 세 글자를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자기 이름이었습니다. 상자를 여니 밤과 단호박을 올린 케이크 위에 “이모부 환갑 축하드립니다”라는 초콜릿 글씨가 쓰여 있었습니다. 케이크 옆에는 두툼한 흰 봉투가 끼워져 있었습니다.
봉투 안에는 1200만 원짜리 수표 한 장과 손으로 쓴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모, 재우예요. 연락 끊고 숨어서 죄송해요. 학교를 마치고 들어간 빵집이 1년 만에 문을 닫았어요. 갚겠다던 2년이 지나 버리니 이모 얼굴을 볼 낯이 없었어요. 그래서 한 푼도 빠짐없이 모으기 전에는 연락하지 않겠다고 혼자 정했어요. 3년 전 순천에 작은 빵집을 열었어요. 가게 이름은 처음부터 정해 두었어요. 제 빵은 이모 돈으로 시작했으니까요. 이제야 다 모았어요. 평생 이모 빵은 제가 굽겠습니다.”
편지를 읽는 연화 씨의 손이 떨렸습니다. 글씨가 번져 보일 만큼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옆에서 함께 읽던 남편도 안경을 벗어 눈가를 훔쳤습니다. 연화 씨는 그 자리에서 소리 내어 펑펑 울었습니다. 8년 동안 떼먹었다고 원망했던 조카가 실은 이모 이름을 간판에 걸고 매일 새벽 반죽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연화 씨는 곧장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언니는 한참 말이 없다가 울먹였습니다. “미안하다. 재우가 다 갚기 전엔 절대 말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빌더라. 걔 그동안 새벽 세 시에 일어나서 하루도 안 쉬었다.”
그날 점심, 한정식집 상 한가운데에 ‘연화당’ 케이크가 놓였습니다. 촛불을 붙이려는데 식당 문이 열리고 낯익은 얼굴이 들어섰습니다. 서른셋이 된 재우가 비에 젖은 점퍼 차림으로 서 있었습니다. “이모, 이모부, 너무 늦었어요.”
연화 씨는 재우의 손을 잡았습니다. 손등 곳곳에 오븐에 덴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 녀석아, 돈은 못 갚아도 얼굴은 보여 줬어야지.” 재우는 “빈손으로는 못 오겠더라고요” 하며 고개를 떨궜습니다. 연화 씨는 수표를 남편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원래 당신 환갑 여행 가려던 돈이에요. 이제 진짜 가요.” 남편이 웃었습니다. “제주도 말고 순천부터 가자. 조카 빵집 구경 좀 하게.”
이솝 우화 속 생쥐는 자신을 놓아준 사자에게 은혜를 갚겠다고 약속하고, 훗날 그물에 걸린 사자를 이빨로 구해 냅니다. 갚는 날이 늦어진다고 해서 은혜를 잊은 것은 아닙니다.
빌려준 돈의 소식이 끊기면 서운함이 먼저 자라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상대의 침묵 뒤에는 염치가 숨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원망을 굳히기 전에 기다려 줄 여유를 조금만 남겨 두세요. 돈을 주고받을 때는 액수보다 “형편이 어려워도 얼굴은 보자”는 약속을 먼저 나누면 좋겠습니다.
지난주 연화 씨 부부는 순천에 내려갔습니다. 재우의 가게에서 갓 구운 단팥빵을 받아 들고 순천만 갈대밭을 걸었습니다. 은빛 갈대가 바람에 흔들렸고, 노을이 갯벌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연화 씨는 남편 팔짱을 끼고 해가 질 때까지 천천히 걸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