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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부탁이라 덜컥 손주를 맡았다간 몸도 마음도 먼저 무너진다. 처음엔 기쁨이던 일이 몇 달 만에 서운함과 피로로 바뀌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이 부족해서 생기는 일이 아니다. 처음에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족 사이일수록 말로 꺼내기 어려운 조건을 시작 전에 정리해 두어야 오래간다. 손주를 맡기 전 확인할 것들을 순서대로 짚어본다.
4위. 수고비 금액과 주는 날 정하기
돈 이야기를 꺼내면 정 없어 보일까 망설이는 부모가 많다. 그러나 금액이 모호하면 주는 쪽도 받는 쪽도 눈치를 보게 된다. 형편에 맞는 액수와 날짜를 정해 두는 편이 서로 편하다.
수고비는 노동의 값이라기보다 부모의 시간을 존중한다는 표시다. 받은 돈을 다시 손주에게 쓰게 되더라도 약속만큼은 분명히 해 두는 것이 좋다.
3위. 간식과 영상, 훈육은 부모 방식에 맞추기
조부모는 아이가 원하면 들어주고 싶어진다. 사탕 하나, 영상 한 편이 쌓이다 보면 아들 내외와 부딪히는 씨앗이 된다.
아이를 키우는 주체는 부모다. 무엇을 먹이고 얼마나 보여주며 어떻게 꾸짖을지 미리 묻고 그 기준을 따르면 괜한 말다툼을 줄일 수 있다.
2위. 돌보는 시간과 아플 때의 역할 나누기
몇 요일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돌보는지, 어느 날 쉬는지 분명히 정해야 한다. 경계가 흐리면 잠깐만 봐 달라는 부탁이 주말까지 이어지기 쉽다.
아이가 아플 때 병원에 누가 데려갈지도 미리 정한다. 진료 내용을 직접 들어야 하는 부모가 맡을지, 급할 때만 조부모가 나설지 정해 두면 당황할 일이 줄어든다.
1위. 힘들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는 약속
가장 중요하지만 가장 꺼내기 어려운 조건이다. 체력은 해마다 달라지고, 무릎이나 허리가 버티지 못하는 날도 온다. 그때 그만두겠다는 말이 배신처럼 들리지 않으려면 시작할 때 미리 합의해 두어야 한다.
이 약속은 손주를 덜 사랑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돌보는 사람이 쓰러지면 돌봄도 함께 무너진다. 물러설 자리가 있어야 오히려 마음 편히 오래 도울 수 있다.
황혼육아는 자식을 돕는 일이지 노후를 통째로 내어주는 일이 아니다. 서운함은 대개 정하지 않고 넘어간 빈자리에서 자란다.
손주를 안기 전에 시간, 돈, 기준, 병원, 그만둘 권리 다섯 가지를 먼저 말로 정해 두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