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2 10:04

“아들 결혼자금 6000만원 보탰는데..” 폐백상 앞에서 드러난 둘째 아들의 민낯

자식이 장가를 간다고 하면 부모는 제 형편부터 헤아립니다. 남들만큼은 못 해 줘도 자식이 처가에서 기죽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래 아껴 둔 돈을 내어 주면서도 부모는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 묻지 않습니다. 묻지 않는 것이 믿음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박 씨는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경기도 남쪽의 한 소도시에서 서른 해 넘게 택시를 몰았고, 개인택시 면허를 받은 지는 스물두 해가 되었습니다. 새벽 다섯 시면 어김없이 시동을 걸었고, 기사 식당에서 점심을 때우며 하루 열 시간 넘게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아내는 동네 세탁소에서 옷 수선 일을 합니다. 슬하에는 아들 둘을 두었는데, 큰아들은 몇 해 전 결혼해 지방에서 살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은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잘 따랐습니다. 일요일이면 택시 조수석에 올라타 미터기 숫자가 올라가는 것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습니다. 재수하던 해 겨울에는 박 씨가 밤 영업을 접고 독서실 앞에 차를 대 놓은 채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아들은 뒷좌석에 앉아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나중에 제가 새 차 뽑아 드릴게요.”

아들은 서울의 한 중견 회사에 들어갔고, 서른넷이 되던 해 결혼할 아가씨를 데려왔습니다. 말씨가 곱고 참한 아가씨였습니다. 처가는 지방 도시에서 건설 자재상을 하는 집이었습니다. 상견례 자리에서 바깥사돈은 예의를 갖추었지만, 말끝이 어딘지 모르게 차가웠습니다.

결혼을 넉 달 앞둔 지난해 초여름, 박 씨는 아들을 불러 앉혔습니다. 큰아들 결혼 때 형편이 어려워 2000만원밖에 보태지 못한 것이 늘 마음에 걸렸던 터였습니다. “신혼집 보증금에 보태라. 6000만원이다. 처가에 가서 기죽지 마라.” 아들은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버지, 이 돈 꼭 잘 쓰겠습니다.”

그 돈은 박 씨가 십 년 동안 부은 적금이었습니다. 원래는 낡은 택시를 바꾸려고 모으던 돈이었습니다. 차체가 덜컹거리고 시트가 다 해진 차였지만, 박 씨는 “몇 년 더 타면 된다”며 은행 창구에서 아들 통장으로 돈을 보냈습니다.

그 뒤로 아들은 이상하게 말을 아꼈습니다. 신혼집을 보여 달라고 하면 “정리 다 되면 모실게요” 하며 미뤘습니다. 한번은 전화로 이렇게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 사돈어른 앞에서는 돈 얘기 절대 꺼내지 마세요. 그쪽에서 부담스러워하세요.” 아내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박 씨는 자식 체면을 세워 주려니 하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결혼식은 시월 마지막 토요일에 열렸습니다. 아침부터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박 씨는 이십 년 만에 맞춘 양복을 입고 하객들에게 일일이 허리를 숙였습니다. 본식이 끝나고 폐백실에 들어서자 붉은 병풍 앞에 대추와 밤, 육포를 올린 폐백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한복으로 갈아입은 며느리가 수줍게 절을 올렸고, 박 씨는 떨리는 손으로 대추를 던져 주었습니다.

양가 어른이 함께 폐백을 받기로 해서 사돈 내외도 한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덕담이 오가던 중에 바깥사돈이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습니다.

“사돈어른, 고생 많으셨습니다. 하기야 빈손으로 장가보내셨더라고요. 집은 저희가 다 했습니다. 요즘 택시 벌이가 많이 어렵다고 들어서 이해는 합니다만.”

폐백실 안이 순간 얼어붙었습니다. 박 씨는 무슨 말인지 몰라 사돈의 얼굴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며느리가 놀란 눈으로 시아버지를 돌아보았습니다.

“아버님이 6000만원을요? 저는 아버님 형편이 어려우셔서 한 푼도 못 보태신다고만 들었는데요.”

모든 눈이 둘째 아들에게 쏠렸습니다. 사모관대 차림의 아들은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박 씨는 잠시 망설이다 양복 안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습니다. 택시 카드 결제 정산을 확인하라고 큰아들이 깔아 준 은행 앱이 있었습니다. 거래 내역을 내려가자 넉 달 전 날짜에 ‘60,000,000원 출금’이 찍혀 있었고, 받는 사람 칸에는 둘째 아들 이름 석 자가 또렷했습니다.

박 씨는 말없이 휴대전화를 폐백상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화면을 들여다본 바깥사돈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며느리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자기야, 그 돈 어디 있어?”

한참 만에 아들이 입을 열었습니다. “결혼 전에 주식을 하다가 빚을 졌습니다. 신용으로 끌어다 쓴 게 불어나서요. 아버지 돈으로 그걸 갚았습니다. 처가에는 아버지가 어려우시다고 둘러댔습니다. 죄송합니다.” 박 씨의 아내는 입을 틀어막았고, 안사돈은 고개를 돌렸습니다.

박 씨는 한동안 폐백상의 대추만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러다 천천히 일어나 사돈 내외 앞에 허리를 깊이 숙였습니다. “사돈어른, 자식을 잘못 가르친 제 불찰입니다. 집을 다 해 주신 줄도 모르고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못 드렸습니다.”

그러고는 아들을 내려다보며 낮게 말했습니다. “그 돈은 이미 네게 준 돈이니 돌려 달라 하지 않겠다. 대신 처가에서 해 주신 집값은 오늘부터 네 월급에서 다달이 갚아 나가라. 빚보다 무서운 게 거짓말이다. 다시는 네 아내 앞에서 아비 핑계 대지 마라.”

그날 밤 며느리가 박 씨에게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아버님, 아무것도 모르고 그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해요. 저희 둘이 같이 갚아 나갈게요.” 며칠 뒤에는 바깥사돈이 직접 전화를 걸어 그날 말이 지나쳤다고 사과했습니다.

아들은 지금도 월급날이면 처가 통장으로 돈을 보내고, 그 이체 내역을 아버지에게 문자로 보내옵니다. 박 씨는 답장 대신 그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시동을 겁니다.

이솝 우화 속 양치기 소년은 거짓말로 그 순간을 넘겼지만, 결국 정말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아무에게도 믿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한 번 감춘 빚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그 거짓말은 가장 가까운 사람의 얼굴에 그늘을 드리웁니다.

자식에게 돈을 건네면서 어디에 쓰는지 꼬치꼬치 묻기는 부모로서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큰돈이라면 그 돈이 제자리에 쓰였는지 한 번쯤 함께 확인하는 것이 서로를 지키는 길입니다. 믿음은 묻지 않는 데서가 아니라 숨기지 않는 데서 자랍니다.

올가을 박 씨는 아내를 조수석에 태우고 한적한 저수지 둑길을 천천히 달렸습니다. 둑을 따라 늘어선 억새가 바람에 은빛으로 흔들렸고, 낮게 기운 햇살이 물 위에 길게 번졌습니다. 낡은 택시는 여전히 덜컹거렸지만, 박 씨는 창문을 내리고 오래도록 가을 냄새를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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