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2 10:59

“둘째 딸 빚 6000만원 갚아줬는데..” 6년 뒤 유언장 쓰던 날 딸이 내민 봉투에 울었다

부모에게 자식은 모두 같은 손가락이라지만, 살다 보면 유독 더 아픈 손가락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 손가락을 감싸 주다 보면 다른 자식들에게 말하지 못한 일이 생깁니다. 그 비밀은 부모의 마음에 오래도록 무거운 돌로 남습니다.

충청도의 한 작은 도시에 사는 윤 씨는 올해 일흔넷입니다. 서른세 해 동안 우체국 집배원으로 일하다 정년퇴직했습니다. 빨간 오토바이에 우편 가방을 싣고 골목을 누비던 시절, 윤 씨는 어느 집 개가 사나운지, 어느 집 할머니가 아들 편지를 기다리는지까지 다 알았습니다. 아내는 8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났고, 슬하에 큰아들과 둘째 딸, 막내아들을 두었습니다.

셋 중 둘째 딸은 어려서부터 손이 덜 가는 아이였습니다. 큰아들이 몸이 약해 병원을 들락거릴 때도, 막내가 사춘기를 요란하게 치를 때도 둘째는 제 할 일을 알아서 했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장마철에 아버지가 우편물을 다 못 돌렸다는 말을 듣고 우산을 들고 나와 골목 끝까지 따라다녔습니다. “아빠, 이 집은 내가 넣을게.” 비에 젖은 딸의 단발머리를 윤 씨는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딸은 도시에서 결혼해 아이 둘을 낳았고, 마흔 무렵 오랜 꿈이던 작은 빵집을 열었습니다. 개업하던 날 윤 씨는 화환 옆에 서서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괜히 허리를 숙였습니다.

그러나 가게는 3년을 버티지 못했습니다. 근처에 큰 빵집이 두 곳이나 들어섰고, 밀가루며 버터값은 해마다 올랐습니다. 6년 전 겨울, 딸이 연락도 없이 친정에 내려왔습니다. 마루에 앉아 한참 말이 없던 딸이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아빠, 가게 정리하고도 빚이 6000만원 남았어요. 애들 아빠 월급으로는 이자 내기도 벅차요.”

“오빠랑 동생은 아냐?”

“몰라요. 말 못 하겠어요. 다들 사는 거 빠듯한데.”

그날 밤 윤 씨는 장롱 깊숙이 넣어 둔 통장 두 개를 꺼냈습니다. 하나는 퇴직금 일부를 넣어 둔 정기예금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내가 생전에 매달 10만원, 20만원씩 부어 온 적금이었습니다. 아내는 그 통장을 “애들 급할 때 쓸 돈”이라고 불렀습니다. 두 통장을 합치니 6000만원이 조금 넘었습니다.

다음 날 윤 씨는 은행에서 돈을 찾아 딸에게 건넸습니다. “이건 우리 둘만 아는 걸로 하자. 네 엄마가 모아 둔 돈이니 엄마가 준 거라고 생각해라.” 딸은 아버지 손을 붙잡고 소리 없이 울었습니다.

그 뒤로 윤 씨는 연금으로 소박하게 살았습니다. 돈은 아깝지 않았습니다. 다만 해가 갈수록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 이 일이 어떻게 드러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같은 집배원 출신 친구 정 씨가 막걸리를 기울이며 한 말도 귀에 맴돌았습니다. “형님, 살아서 자식 하나한테 준 돈도 나중에 상속 때 다 따진다더라. 우리 동네 누구네는 그걸로 형제들이 남남 됐어.”

명절에 삼 남매가 모여 웃을 때도 윤 씨는 그 웃음이 언젠가 깨질까 봐 조마조마했습니다. 빵집을 접은 딸은 학교 급식실에서 일한다고 했는데, 내려올 때마다 손이 더 거칠어져 있었습니다.

올해 가을, 윤 씨는 마음을 정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유언장을 써 두고, 숨겨 온 돈 이야기도 그 자리에서 털어놓기로 했습니다. 자식들에게 전화를 돌려 시월 마지막 토요일에 모이라고 했습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렸습니다. 마당 감나무에는 까치밥 몇 개만 남아 있었고, 마루 벽에는 퇴직하며 받아 온 낡은 우편 가방이 걸려 있었습니다. 상 위에는 볼펜과 하얀 종이, 도장이 놓였습니다. 유언장은 손으로 직접 쓰고 날짜와 주소, 이름을 적은 뒤 도장을 찍어야 한다는 것도 미리 알아 두었습니다.

점심상을 물리고 삼 남매가 둘러앉자 윤 씨가 헛기침을 했습니다. “오늘 너희를 부른 건 할 말이 있어서다. 6년 전에…”

그때 둘째 딸이 아버지의 말을 막았습니다. “아빠, 그 얘기 하시기 전에 이것부터 보세요.”

딸이 꺼낸 것은 누런 서류 봉투 하나였습니다. 윤 씨는 평생 수만 통의 봉투를 손에 쥐어 보았지만, 그날 받은 봉투만큼 무거운 것은 없었습니다.

봉투 안에는 적금통장과 접힌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통장 마지막 장에는 6000만원이 넘는 잔액이 찍혀 있었습니다. 매달 들어간 돈은 70만원, 85만원, 어떤 달은 50만원이었습니다. 종이는 딸이 손으로 쓴 각서였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제 몫을 이미 받았습니다. 나중에 상속할 때 제 몫은 빼 주세요. 오빠와 동생에게도 다 말했습니다.]

윤 씨가 고개를 들자 큰아들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아버지, 저희 작년에 다 들었어요. 얘가 혼자 찾아와서 얘기하더라고요. 아버지가 이 일로 속 끓이실 거라고, 자기가 먼저 정리해야 한다고요.”

막내도 거들었습니다. “누나가 급식실 끝나고 저녁엔 식당 설거지까지 했대요. 6년 동안요. 저희는 서운한 거 하나도 없어요.”

윤 씨는 딸의 손을 붙잡았습니다. 마디마디 굳은살이 박인 손이었습니다. “이걸… 네가 어떻게…”

“아빠가 엄마 돈이라고 하셨잖아요. 엄마 돈이면 돌려드려야죠. 아빠가 저 때문에 형제들 사이 걱정하시는 거, 명절마다 다 보였어요.”

그 말에 윤 씨는 끝내 참지 못했습니다. 일흔넷 노인이 딸의 손을 붙든 채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습니다. 6년 동안 가슴에 얹혀 있던 돌이 한꺼번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날 오후 윤 씨는 천천히 유언장을 썼습니다. 부모가 살아 있을 때 미리 써 둔 각서만으로는 상속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윤 씨도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정리는 아버지가 해야 할 몫이었습니다. 윤 씨는 집과 남은 예금을 삼 남매에게 똑같이 나눈다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딸이 내민 통장을 다시 봉투에 넣어 딸의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이건 네 엄마가 너한테 다시 주는 거다. 이번엔 형제들 다 보는 앞에서 주니까 비밀도 아니다.” 큰아들과 막내가 고개를 끄덕였고, 딸은 봉투를 가슴에 안고 오래 울었습니다.

부모가 자식 하나에게 몰래 건넨 돈은 사랑이지만, 남은 형제들 사이에 금이 갈 수도 있는 씨앗이 됩니다. 그 씨앗을 꽃으로 피우는 것은 돈을 받은 자식의 몫입니다. 고마움을 숨기지 않고 먼저 털어놓는 용기가 형제를 지킵니다.

부모 혼자 끙끙 앓던 걱정은 생각보다 자식들이 먼저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혼자 짊어지지 말고 한 번쯤 자식들을 믿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해 늦가을, 윤 씨는 삼 남매와 함께 아내가 잠든 뒷산에 올랐습니다. 산자락은 노랗고 붉게 물들어 있었고, 읍내 지붕들 위로 저녁연기가 낮게 깔렸습니다. 윤 씨는 아내 무덤 앞에 서서 오래도록 그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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