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2 08:37

“남편 팔순 잔치비 1500만원 냈는데..” 잔칫날 큰며느리 마이크 앞에서 벌어진 일

부모의 잔칫날이 다가오면 자식들은 저마다 무언가를 해 드리겠다고 나섭니다. 부모는 그 말이 고마워서 모자란 비용을 뒤에서 조용히 메웁니다. 그러나 정성이 빠진 자리에는 생색만 남는다는 것을, 부모는 잔치가 끝날 무렵에야 알게 되기도 합니다.

경기도 변두리 도시에 사는 장 씨는 올해 일흔입니다. 열 살 위인 남편은 35년 동안 시내버스를 몰다 은퇴했습니다. 장 씨는 마흔다섯 해 동안 살림을 꾸리면서 집에서 한복 바느질 부업을 했습니다. 슬하에는 큰아들과 딸, 막내아들 삼 남매를 두었습니다.

바느질 일감은 명절과 혼사철에 몰렸습니다. 장 씨는 남편 도시락을 싸 보낸 뒤 안방에 재봉틀을 펴고 밤늦도록 동정을 달았습니다. 그렇게 받은 삯은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았습니다. 모두 ‘우리 둘 마지막 통장’이라고 이름 붙인 적금에 넣었습니다.

삼 남매 가운데 장 씨가 가장 마음을 쓴 쪽은 큰아들 내외였습니다. 큰아들이 장가갈 때 전셋값이 모자란다고 하자 장 씨는 바느질로 모은 2천만 원을 선뜻 보탰습니다. 김장철이면 큰아들 집 몫으로 배추 마흔 포기를 따로 절였습니다.

한번은 손녀가 휴대전화를 들고 와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었습니다. 장 씨가 담가 보낸 김치를 큰며느리가 찍어 올리고 ‘올해도 손수 담근 김장’이라고 적어 둔 것이었습니다. 장 씨는 웃고 넘겼습니다. 며느리가 남들 앞에서 체면을 세우고 싶었나 보다 했습니다.

10년 전 남편 칠순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큰아들 부부가 “아버지 칠순은 저희가 모실게요” 하며 한정식집을 예약했습니다. 그런데 계산대 앞에서 큰아들은 “카드 한도가 찼네요” 하며 머리를 긁었고, 결국 남편이 지갑을 열었습니다.

올봄, 남편 팔순을 의논하려고 삼 남매가 장 씨 집에 모였습니다. 큰며느리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어머님, 이번엔 제대로 해 드릴게요. 친척분들 다 모시고 연회장에서 크게 해요. 1500만 원쯤 들 텐데 셋이 500씩 나누고, 준비는 저희가 다 할게요. 어머님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마세요.”

딸과 막내아들은 그 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각자 500만 원씩 큰오빠 통장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잔치를 열흘 앞두고 연회장에서 장 씨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사모님, 예약만 걸려 있고 선결제가 안 되어 있습니다. 이번 주 안에 결제가 안 되면 날짜를 다른 분들께 넘겨야 합니다.”

장 씨가 전화를 걸자 큰아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습니다. “엄마, 지금 돈이 잠깐 묶여서 그래요. 엄마 카드로 먼저 해 두세요. 잔치 끝나면 바로 드릴게요.”

장 씨는 ‘우리 둘 마지막 통장’을 깨서 1500만 원을 선결제했습니다. 다른 자식들에게는 이 일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잔치를 앞두고 형제끼리 얼굴 붉히는 일만은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잔칫날은 10월 첫 토요일이었고, 아침부터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렸습니다. 연회장 입구에는 남편 사진이 들어간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분홍 한복을 차려입은 큰며느리가 문 앞에서 손님을 맞았습니다. 접수대 옆에는 금박 테두리를 두른 축의금 함이 놓여 있었습니다.

장 씨는 남편 옆 상석에 앉았습니다. 남편은 새로 맞춘 양복 깃을 자꾸 매만지며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하고 쑥스러워했습니다. 시댁 친척 서른여 명에 남편의 옛 버스 회사 동료들까지 와서 자리가 가득 찼습니다.

식사가 반쯤 지났을 무렵 큰며느리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저희 부부가 아버님 팔순을 위해 1년 동안 적금을 부어 마련했습니다. 부족하지만 맛있게 드시고, 아버님께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박수가 터졌습니다. 시누이가 장 씨 쪽으로 몸을 기울였습니다. “형님, 며느리 잘 뒀어요. 요즘 저런 며느리가 어디 있어요.” 장 씨는 대답 없이 물잔만 만지작거렸습니다. 건너편 테이블의 딸과 막내아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때 검은 조끼를 입은 지배인 윤 씨가 장 씨 곁으로 와서 허리를 숙였습니다.

“사모님, 추가 인원 열두 분과 음료 비용으로 잔금이 230만 원 나왔습니다. 선결제하신 사모님 카드로 잔금도 같이 결제해 드릴까요?”

박수가 막 잦아든 뒤라 그 말은 테이블 전체에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시누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선결제를 형님이 했어요? 방금 큰며느리는 적금 부었다고….”

딸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습니다. “엄마,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 500씩 오빠한테 보냈잖아.”

장 씨가 대답하기도 전에 남편의 사촌 동생이 접수대 쪽을 가리켰습니다. “그러고 보니 축의금 함은 어디 갔어요? 아까 봉투 넣으려니까 없던데.”

접수대를 거들던 막내며느리가 머뭇거리며 말했습니다. “아까 아주버님이 정리한다고 들고 나가셨어요. 주차장 쪽으로요.”

연회장이 조용해졌습니다. 마이크를 쥔 채 서 있던 큰며느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마침 주차장에서 들어오던 큰아들은 친척들의 눈길이 한꺼번에 쏠리자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습니다.

장 씨는 천천히 일어나 윤 씨에게 말했습니다. “잔금은 제 카드로 해 주세요. 우리 영감 잔치 마무리는 제가 해야지요.” 그리고 큰아들을 불렀습니다.

“얘야, 차에 둔 함 가지고 오너라. 오늘 오신 분들 정성은 아버지 앞에 놓여야 한다.”

큰아들은 아무 말 못 하고 주차장으로 나갔습니다. 잠시 뒤 축의금 함이 남편 앞 테이블에 놓였습니다. 친척들은 수군거렸고, 큰며느리는 마이크를 내려놓은 채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이튿날 장 씨는 삼 남매를 집으로 불렀습니다. 큰아들은 “형편이 어려워서 잠깐만 쓰려고 했어요” 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장 씨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습니다.

“동생들이 보낸 천만 원에 네 몫 500만 원을 보태서 이달 안에 아버지 통장으로 보내라. 축의금은 아버지가 받으신 정성이니 아버지 거다. 그리고 앞으로 생색은 네 돈으로 내거라.”

보름 뒤 남편 통장에 1500만 원이 들어왔습니다. 큰며느리는 따로 찾아와 시부모 앞에 무릎을 꿇고 오래 울었습니다.

자식이 하겠다고 나서면 부모는 믿고 맡기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말만 앞서고 돈은 부모가 메우는 일이 되풀이되면, 자식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됩니다. 조용히 덮어 주는 것만이 사랑은 아닙니다.

잔치 비용이든 김장 김치든, 누가 마련했는지는 분명히 해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성이 제 주인을 찾고, 가족 사이의 고마움도 오래 남습니다.

늦가을 어느 오후, 장 씨는 남편과 함께 동네 저수지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물가의 버드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어 바람에 흩날렸습니다. 남편은 팔순 잔치 때 입었던 양복 대신 장 씨가 손수 뜬 털조끼를 입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해가 저수지 너머로 넘어갈 때까지 천천히 걸었습니다.

OWN 뉴스

당신의 뉴스를 담습니다. 오늘의 건강부터 내일의 노후까지, 꼭 필요한 생활 정보를 전합니다. 하루에 엄청나게 많이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