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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아이에게 밥 한 끼 챙겨 주는 일은 대단한 선행이 아닙니다. 눈에 밟히고 배고플까 봐 하는 일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쌓인 정이 어느 날 인사 한마디 없이 끊기면, 준 사람 마음에는 오래도록 빈자리가 남습니다.
경기도 변두리 도시의 오래된 시장 골목에서 분식집을 하는 강 씨는 올해 예순셋입니다. 서른넷에 문을 연 가게는 올해로 스물아홉 해째입니다. 남편은 열다섯 해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하나뿐인 아들은 결혼해 지방에서 삽니다. 강 씨는 새벽 여섯 시에 가래떡을 받아 오고 밤 아홉 시에 철판을 닦는 일을 수십 년 되풀이해 왔습니다.
열여덟 해 전 봄, 가게 옆 건물에 부자가 이사를 왔습니다. 아버지 윤 씨는 시장 입구에서 작은 인쇄소를 했고, 아들은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였습니다. 아이 엄마는 몇 해 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비 오는 어느 오후, 강 씨는 옆 건물 계단에 쪼그려 앉은 아이를 보았습니다. 열쇠를 잃어버려 두 시간째 그러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강 씨는 아이를 가게로 데려와 젖은 머리를 닦아 주고, 고춧가루를 빼고 간장으로 볶은 떡볶이를 내주었습니다. 아이는 접시를 깨끗이 비우고서야 작게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줌마.”
저녁에 아이를 데리러 온 윤 씨가 지갑을 꺼내자 강 씨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애 먹은 걸로 돈 받으면 내가 벌 받아요. 일 늦게 끝나는 날은 그냥 여기로 보내요.”
그날부터 아이의 방과 후 자리는 분식집 구석 탁자가 되었습니다. 강 씨는 떡볶이에 삶은 달걀을 하나 얹어 주고 받아쓰기 공책을 펼치게 했습니다. 손님이 뜸한 틈에는 구구단을 외우게 하고 틀린 글자를 고쳐 주었습니다.
한번은 아이가 쭈뼛거리며 물었습니다. “아줌마, 할머니라고 불러도 돼요? 저는 할머니가 없어서요.” 마흔다섯 강 씨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래, 오늘부터 내가 네 할머니다.” 그 뒤로 아이는 시장 사람들 앞에서도 강 씨를 ‘분식집 할머니’라고 불렀습니다.
윤 씨는 달마다 봉투를 들고 왔고, 강 씨는 그때마다 도로 밀어냈습니다. “정 그러면 애한테 일기나 꼬박꼬박 쓰라고 해요. 그게 내 떡볶이 값이에요.” 그 뒤로 아이는 날마다 구석 탁자에서 그림일기를 썼습니다. 강 씨는 장사가 끝나면 동전통에 따로 모아 둔 돈으로 공책과 크레파스를 사다 놓았고, 장 볼 때마다 아이 몫의 떡과 어묵을 한 줌씩 더 담았습니다.
3학년 운동회 날, 윤 씨가 납품 때문에 못 온다는 말을 듣고 강 씨는 가게 문에 ‘오늘 하루 쉽니다’를 써 붙였습니다. 김밥을 싸 들고 운동장에 가자, 이어달리기를 마친 아이가 땀범벅이 되어 달려와 안겼습니다.
그렇게 여섯 해가 흘렀습니다. 졸업을 한 달 앞둔 겨울 아침, 강 씨는 셔터를 올리다 이상한 기운을 느꼈습니다. 옆 건물 창문에 커튼이 없었고, 인쇄소 셔터에는 낯선 종이가 붙어 있었습니다. 부자는 밤사이 짐을 싸서 떠난 뒤였습니다.
며칠 뒤 험상궂은 남자들이 찾아와 윤 씨 행방을 물었지만, 강 씨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할머니라고 부르던 녀석이 어떻게 인사 한마디 없이 가나.” 강 씨는 구석 탁자에 남은 크레파스 상자를 오래도록 버리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동네에 재개발이 결정되었습니다. 골목마다 이주 안내 현수막이 걸렸고, 분식집도 올가을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영업 날은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렸습니다. 강 씨는 평소의 두 배나 떡을 불려 놓고 철판에 불을 올렸습니다. 단골들이 줄을 이었고, 점심 무렵 그 줄 끝에 군복 차림의 청년 넷이 섰습니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한 시간 가까이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차례가 되자 맨 앞의 청년이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할머니, 떡볶이 네 개요. 하나는 고춧가루 빼고 간장으로요.”
강 씨의 국자가 멈췄습니다. 간장 떡볶이를 찾던 손님은 여태 단 한 명뿐이었습니다. 청년은 비닐에 싸인 공책 한 권을 꺼내 철판 옆에 내려놓았습니다. 귀퉁이가 닳은 그림일기였습니다.
강 씨는 앞치마에 손을 닦고 일기장을 펼쳤습니다. 삐뚤빼뚤한 크레파스 그림마다 빨간 앞치마를 두른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계란을 두 개 주셨다.’ ‘받아쓰기 100점. 할머니가 박수를 쳤다.’ ‘운동회에 할머니가 왔다. 아빠 대신 왔다.’ 몇 장을 넘겨도 그림 속에는 늘 같은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마지막 장에는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글씨가 있었습니다. ‘할머니 미안해요. 아빠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된대요. 꼭 다시 올게요.’
“그날 아버지 인쇄소가 부도가 났어요. 빚 받으러 오는 사람들 때문에 아무 데도 연락하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할머니한테 인사 못 하고 간 게 제일 마음에 걸렸어요.”
청년은 지방 소도시 단칸방에서 아버지와 함께 살며 컸다고 했습니다. 대학을 휴학하고 공장에서 일해 빚을 갚느라 입대도 늦어졌다고 했습니다. “다 갚고 떳떳하게 오려고 했는데 재개발 소식을 들었어요. 이번 휴가는 무조건 여기 와야겠다 싶었습니다.”
곁의 동기가 웃으며 거들었습니다. “할머니, 이 친구가 부대에서 맨날 할머니 떡볶이 자랑만 했어요.”
강 씨는 일기장을 가슴에 안은 채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이 녀석아, 나는 네가 나를 잊은 줄 알았다.” 청년이 강 씨의 손을 잡았습니다. “이 일기장은 할머니 드리려고 가져왔어요. 제 어릴 때가 다 여기 있어요.”
그때 처마 밑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윤 씨가 쭈뼛거리며 들어섰습니다. “사장님, 염치가 없어 차마 못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맡겨 놓고 인사도 없이 떠나서 죄송합니다.” 강 씨는 윤 씨의 손을 맞잡았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애를 이렇게 키워 오셨으면 된 거예요.”
마지막 손님이 돌아가자 청년은 남은 떡볶이를 전부 사겠다고 했습니다. 강 씨가 돈을 마다하자 청년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할머니, 이제는 제가 떡볶이 값 낼 수 있어요.” 강 씨는 마지막 봉지에 삶은 달걀 두 개를 몰래 넣었습니다.
말없이 떠난 사람을 오래 원망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떠난 사람에게도 차마 꺼내지 못한 사정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대가 없이 건넨 정은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속에 그림처럼 남아 있다가, 가장 필요한 날 돌아옵니다.
내 가게 앞, 내 집 옆을 서성이는 아이가 있다면 따뜻한 한 접시를 건네 보세요. 그 한 접시가 한 아이의 어린 시절 전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올가을 강 씨는 새로 옮긴 집 근처 하천 산책로를 천천히 걸었습니다. 억새가 바람에 흔들렸고, 노을이 물 위로 길게 번졌습니다. 강 씨는 벤치에 앉아 가방에서 그림일기를 꺼내 한 장씩 넘겨 보았습니다. 빨간 앞치마의 할머니가 페이지마다 웃고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