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4 04:45

“사돈 수술비 1500만원 빌려줬는데..” 2년 뒤 집들이에서 딸 동서가 한 말에 말문이 막혔다

사돈은 가까우면서도 어려운 사이입니다. 자식을 사이에 두고 맺어진 인연이라 서운한 일이 생겨도 쉽게 입을 열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돈 사이에 오간 돈은 차용증보다 받은 사람의 양심에 기대게 됩니다.

충청도 작은 도시에 사는 김 씨는 올해 예순둘입니다. 시장 골목 어귀에서 28년째 미용실을 하고 있습니다. 의자 세 개짜리 작은 가게지만 단골 할머니들의 파마와 염색으로 하루가 빠듯하게 돌아갑니다. 화물차를 몰던 남편은 7년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외동딸은 6년 전 결혼해 차로 한 시간 거리에서 사위, 다섯 살 손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딸의 시댁은 시골에서 고추 농사를 짓는 집이었습니다. 상견례 날 바깥사돈은 김 씨에게 먼저 고개를 숙였습니다. “가진 건 없어도 며느리 서운하게는 안 하겠습니다. 혼자 키우신 귀한 딸, 우리가 잘 데리고 살겠습니다.” 김 씨는 그 말이 고마워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몰래 눈가를 훔쳤습니다.

그 뒤로 사돈은 해마다 늦가을이면 직접 말린 고춧가루를 한 포대씩 보내왔습니다. 김 씨는 그 답례로 사돈이 읍내 장에 나오는 날이면 미용실로 모셔 머리를 깎아 드렸습니다. 사돈이 돈을 내밀면 김 씨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바깥사돈은 거울 앞에서 웃으며 말하곤 했습니다. “사돈 가위 소리가 참 듣기 좋소. 우리 사돈은 손이 약손이오.”

2년 전 겨울, 바깥사돈이 비닐하우스에서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졌습니다. 심장 혈관이 좁아져 스텐트를 넣는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수술을 마치고 보름쯤 지난 어느 저녁이었습니다. 마지막 손님이 나간 뒤 사돈이 혼자 미용실 문을 밀고 들어왔습니다.

“사돈, 체면 없는 줄 압니다. 수술비에 입원비에 검사비까지 1,500만 원이 넘게 나왔소. 큰아들은 대출이 막혔고, 작은아들은 애 키우느라 빠듯하고요. 형편 풀리면 꼭 갚겠습니다. 애들한테는 말하지 말아 주시오. 아비가 사돈댁에 손 벌렸다고 하면 아들 체면이 뭐가 되겠소.”

김 씨는 가게 의자를 바꾸고 간판을 새로 달려고 5년 동안 부어 온 적금을 깼습니다. 모자라는 돈은 가게 통장에서 채웠습니다. 사돈이 차용증을 쓰겠다며 볼펜을 꺼내자 김 씨가 말렸습니다. “사돈 사이에 그런 걸 뭐 하러 씁니까. 몸이나 잘 추스르세요.” 김 씨는 약속대로 딸에게도 그 일을 입 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2년이 흘렀습니다. 사돈은 몰라보게 건강해졌지만 돈 이야기는 한 번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늦가을이면 고춧가루 포대만 변함없이 왔습니다. 그사이 가게 의자는 인조가죽이 갈라져 테이프로 덧대야 했고, 김 씨의 손목은 비 오는 날마다 시큰거렸습니다.

작년 봄에는 딸에게서 뜻밖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시아버지가 시골 땅에 새집을 짓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김 씨는 잠시 숟가락을 멈췄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원래 있던 땅에 짓는 거겠지. 형편 풀리면 갚겠다 하셨으니 기다리면 되겠지.’

올해 9월 마지막 토요일, 그 집의 집들이가 열렸습니다. 아침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고 산자락의 안개가 걷히던 오후였습니다. 김 씨는 오전 예약 손님만 받고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두루마리 휴지 한 묶음과 세제 상자를 양손에 들고 버스를 두 번 갈아탔습니다.

새집은 마을 끝 언덕 위에 있었습니다. 하얀 벽에 나무 데크가 깔려 있었고, 거실 한쪽 벽은 통째로 유리창이었습니다. 창밖으로 누렇게 익어 가는 들판이 한눈에 내려다보였습니다. 새 가죽 소파에서는 아직 비닐 냄새가 났고, 벽에는 커다란 텔레비전이 걸려 있었습니다.

“사돈 오셨소!” 바깥사돈이 반갑게 맞았습니다. 거실에는 딸 내외와 사돈댁 큰아들 내외, 동네 사람 몇이 모여 있었습니다. 상 위에는 수육과 잡채, 시루떡이 푸짐하게 올라 있었습니다. 누군가 집 짓는 데 얼마나 들었느냐고 묻자 바깥사돈이 너털웃음을 지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이 들었소. 저 유리창 하나에만 몇백이 들었다니까.”

과일 접시를 내오던 딸의 손윗동서가 말을 거들었습니다. 사돈댁 큰며느리였습니다. “그래도 아버님은 운이 좋으셨죠. 수술비는 실비보험으로 다 돌려받으셨잖아요. 거기에 사돈댁에서 그냥 주신 돈까지 보태서 저 창을 내신 거고요.”

거실이 순간 조용해졌습니다. 바깥사돈이 헛기침을 하며 리모컨을 집어 들었습니다. 김 씨는 손에 든 찻잔을 천천히 상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딸이 놀란 얼굴로 손윗동서를 돌아보았습니다. “형님, 보험금이요?”

큰며느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였습니다. “몰랐어? 보험금 나오고 나서 그 돈이랑 사돈어른이 주신 돈 다 이 집에 들어갔잖아.” 딸이 어머니를 바라보며 더듬거렸습니다. “엄마, 아버님이 엄마가 그냥 주신 돈이라고… 엄마가 민망해하실 테니 모른 척하라고 하셔서….”

김 씨의 머릿속에서 그제야 모든 일이 한 줄로 꿰어졌습니다. 2년 동안 사돈이 갚는다는 말을 한 번도 꺼내지 않은 까닭을 알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비밀로 해 달라던 부탁의 진짜 뜻도 알 것 같았습니다. 김 씨가 깬 적금은 수술비가 아니라 저 통유리창이 되어 있었습니다.

김 씨는 들고 온 휴지 묶음과 세제 상자를 현관 옆에 가지런히 내려놓았습니다. “사돈, 집이 참 좋습니다. 저는 저녁 손님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바깥사돈이 엉거주춤 일어섰지만 김 씨는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마당까지 따라 나온 사위는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 김 씨는 불 꺼진 미용실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들었습니다. 몇 번을 썼다 지운 끝에 문자를 보냈습니다. [사돈어른, 2년 전 빌려드린 1,500만 원은 올해 12월 31일까지 제 통장으로 보내 주십시오. 계좌번호 함께 적습니다. 오늘부로 사돈댁 일에는 제가 걸음하지 않겠습니다. 아이들 일은 아이들 내외에게 맡기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딸과 사위가 가게로 찾아왔습니다. 사위가 먼저 깊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장모님, 저도 그냥 주신 돈인 줄만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김 씨는 사위의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자네 내외랑은 달라질 거 하나 없네. 손녀 데리고 언제든 오게. 다만 사돈댁과는 여기까지 하려네.”

일주일 뒤 사돈에게서 짧은 답이 왔습니다. [미안하오. 연말까지 맞추겠소.] 그날 오후 김 씨의 통장에 500만 원이 먼저 들어왔습니다. 김 씨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올해 김장에 쓸 고춧가루는 처음으로 시장 방앗간에서 샀습니다.

박지원의 『허생전』에서 허생은 처음 보는 변 부자에게 만 냥을 빌리면서 증서 한 장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도 훗날 열 배로 갚으러 찾아갔습니다. 빌린 돈을 갚는 일은 종이가 아니라 사람의 됨됨이가 지키는 약속입니다.

정이 깊은 사이일수록 돈 이야기는 꺼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말없이 기다리기만 하면 내 정성은 남의 입에서 엉뚱한 모양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가족 사이라도 큰돈이 오갈 때는 날짜 하나라도 적어 두세요. 그것이 서로의 체면과 관계를 함께 지키는 길입니다.

11월 초 어느 일요일, 김 씨는 딸과 손녀와 함께 시장 뒤 냇가 둑길을 걸었습니다. 둑을 따라 늘어선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었고, 냇물 위로 오후 햇살이 잔잔하게 흔들렸습니다. 손녀가 낙엽을 한 움큼 쥐어 할머니 머리 위로 뿌리자 김 씨는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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