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는 자식이 잘 지낸다는 말 한마디면 세상 근심을 다 내려놓습니다. 그래서 자식은 힘든 일일수록 부모 앞에서 입을 다물기도 합니다. 잘된다는 소문에 모이는 사람과 넘어졌을 때 곁에 남는 사람이 다르다는 것도 한참 뒤에야 알게 됩니다.
장 씨는 올해 예순여덟입니다. 경상도 내륙의 한 소도시 외곽에서 40년째 고물상을 하고 있습니다. 고철과 폐지가 쌓인 마당에서 아내와 둘이 새벽부터 저울을 봅니다. 외아들은 마흔둘로, 며느리와 초등학생 손자 둘을 데리고 같은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장 씨가 처음부터 마당 넓은 고물상을 했던 것은 아닙니다. 젊은 시절에는 리어카 한 대로 골목을 돌며 고철과 폐지를 주웠습니다. 아들이 어릴 때는 짐칸에 아들을 태우고 다녔습니다. 폐지 더미 위에 앉은 아들이 “아버지, 저기 냄비 있어요!” 하고 소리치면, 장 씨는 웃으며 리어카를 세웠습니다.
아들이 대학 기계공학과에 들어간 뒤에도 장 씨는 리어카를 놓지 않았습니다. 트럭 살 돈을 아껴 등록금을 냈기 때문입니다. 방학이면 아들은 친구들이 놀러 간 사이 아버지 리어카 뒤를 밀었습니다. 장 씨가 “창피하면 들어가 있어라” 하자 아들은 손잡이에 감긴 검정 테이프를 만지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이게 제 등록금 버는 기계잖아요.” 장 씨는 땀을 닦는 척 눈가를 훔쳤습니다.
아들은 졸업 후 금속가공 공장에서 10년 동안 선반 앞에 섰습니다. 8년 전 봄, 아들이 고물상 사무실로 찾아와 도면 한 장을 펼쳤습니다. “아버지, 이제 제 공장을 해 보고 싶습니다. 거래처도 몇 곳 약속받았습니다. 기계 살 돈만 있으면 됩니다.” 필요한 돈은 1억5천만 원이었습니다.
장 씨에게 그런 현금은 없었습니다. 가진 것은 40년 땀으로 일군 고물상 부지뿐이었습니다. 아내가 말렸습니다. “여보, 그 땅 넘어가면 우리는 길바닥이에요.” 장 씨는 담배 한 대를 다 태우고 대답했습니다. “리어카 끌던 놈도 땅을 샀는데, 기계 만지는 놈이 공장 하나 못 하겠나.”
장 씨는 그 주에 은행을 찾아가 고물상 부지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습니다. 통장을 건네며 한마디만 했습니다. “이자는 내가 낼 테니, 니는 기계만 잘 돌려라.” 아들은 통장을 두 손으로 받아 들고 한참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첫해 아들은 “일감이 밀려요”라며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몇 달 뒤부터는 이자는 자기가 내겠다며 매달 장 씨 통장으로 돈을 부쳤습니다. 장 씨는 그 돈이 공장에서 나는 이문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2년 전에는 대출을 다 갚았다며 근저당이 말소된 등기 서류를 들고 왔습니다.
‘장 씨네 아들 공장이 잘된다’는 소문은 금세 친척들 사이에 퍼졌습니다. 장 씨의 남동생이 가게 보증금이 모자란다며 2천만 원을 빌려 갔고, 처남은 차를 바꾼다며 1천만 원을 가져갔습니다. “형님은 아들 덕에 이제 걱정 없잖소.” 장 씨는 아들 자랑하는 마음에 별말 없이 돈을 내주었습니다.
서운한 일도 있었습니다. 공장 구경을 가겠다고 하면 아들은 늘 “요즘 납품 때문에 정신이 없어요” 하며 미뤘습니다. 명절에 온 아들은 눈이 퀭했고 손등에는 생채기가 가실 날이 없었습니다. 장 씨는 끝내 아버지를 공장에 들이지 않는 아들이 야속했습니다.
올봄에는 마당 구석에 세워 둔 낡은 리어카가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일꾼 최 씨에게 물었지만 최 씨는 “고철 줍는 사람이 끌고 갔나 봅니다” 하며 딴청을 피웠습니다. 장 씨는 한동안 빈자리를 보며 허전해했습니다.
지난달, 아들이 새 공장 준공식에 부모를 초대했습니다. 도시 외곽 산업단지에 들어선 회색 공장 앞마당에는 화환이 줄지어 섰고, 맑은 시월 하늘 아래 흰 천막이 바람에 펄럭였습니다. 장 씨 부부는 내빈석 맨 앞줄에 앉았고, 뒷줄에는 남동생과 처남 내외가 양복을 차려입고 앉았습니다.
공장 로비 한가운데에는 사람 키만 한 무언가가 흰 가림막에 덮여 있었습니다. 처남이 장 씨 어깨 너머로 속삭였습니다. “새로 들인 기계인가 보오. 몇억은 하겠는데.” 남동생은 “조카가 이리 잘될 줄 알았지” 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회자가 대표 인사를 청하자 아들이 단상에 올랐습니다. 원고를 내려놓은 아들은 마이크를 두 손으로 잡았습니다. “오늘은 인사말 대신 아버지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8년 전 아버지가 땅을 잡히고 마련해 주신 돈으로 차린 첫 공장은, 1년 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마당이 조용해졌습니다. 큰 거래처가 부도나면서 납품 대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고, 기계를 헐값에 넘기고도 빚이 남았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땅이 걸린 돈이었습니다. 망했다고 말씀드리면 아버지 허리부터 꺾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7년 동안 남의 공장 야간조로 일했습니다. 집사람도 식당 일을 다녔고요. 아버지께 부친 이자도, 대출 갚은 돈도 다 야간 수당이었습니다.”
아들은 숨을 고르고 뒷줄을 바라보았습니다. “3년째 되던 겨울, 이자 낼 돈이 모자라 작은아버지와 외삼촌을 찾아갔습니다. 아버지께 빌려 가신 돈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석 달만 쓰고 갚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들은 말이 ‘공장 말아먹은 놈한테 줄 돈은 없다’였습니다.” 남동생과 처남은 고개를 들지 못했고, 처남댁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렸습니다.
아들이 단상에서 내려와 가림막 끈을 당겼습니다. 흰 천이 흘러내리자 바퀴살이 휘고 붉게 녹슨 리어카 한 대가 드러났습니다. 손잡이에는 장 씨가 수십 번 덧감은 검정 테이프가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 앞에 작은 동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 공장의 첫 번째 기계.’
“최 씨 아저씨께 부탁해 고물상에서 몰래 가져왔습니다. 저를 대학 보낸 기계, 쓰러질 때마다 저를 일으킨 기계가 이것입니다. 아버지, 이제 공장 구경 오셔도 됩니다.”
장 씨는 천천히 일어나 리어카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거친 손바닥으로 손잡이를 쓸어 보다가 아들의 어깨를 붙잡았습니다. “이 미련한 놈아, 아비가 땅 하나 날아간다고 죽나. 혼자 그 밤들을 우째 버텼노.” 아들은 아버지 품에서 어린아이처럼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식이 끝나자 남동생과 처남이 쭈뼛거리며 다가왔습니다. “형님, 빌린 돈은 곧 정리하겠소.” 장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돈은 됐다. 갚을 마음이 있거든 내 아들한테 그 겨울 일부터 사과해라. 돈은 다시 벌면 되지만, 등 돌린 건 갚을 길이 없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조카에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자식이 “괜찮다”고 할 때, 그 말 뒤에 무엇이 있는지 한 번쯤 들여다볼 일입니다. 사람의 진심은 잘될 때가 아니라 넘어졌을 때 드러납니다. 소문 듣고 찾아오는 발길보다 어려울 때 열어 주는 문 하나가 더 귀합니다.
올가을 장 씨는 주말마다 아들 공장에 들러 리어카를 마른 걸레로 닦습니다. 산업단지 둘레 길에는 은행잎이 노랗게 깔렸고, 늦은 오후 햇살이 공장 유리창마다 따뜻하게 번졌습니다. 장 씨는 손자 둘을 리어카 짐칸에 태우고, 해가 질 때까지 공장 마당을 천천히 돌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