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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돈은 가깝고도 어려운 사이입니다. 자식을 사이에 두고 맺어진 인연이라 고마운 일도 서운한 일도 쉽게 입 밖에 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돈 사이에 오간 마음은 생각보다 오래 걸려 돌아오기도 합니다.
김 씨는 올해 예순넷입니다. 수도권의 오래된 주택가 골목에서 32년째 작은 세탁소를 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6년 전 세상을 떠났고, 외동딸은 결혼해 버스로 네 정거장 떨어진 동네에 삽니다. 김 씨는 새벽 여섯 시 반이면 어김없이 셔터를 올립니다.
딸의 시어머니는 남편을 일찍 여의고 학교 급식실에서 25년을 일하며 외아들을 키웠습니다. 상견례 날, 사돈은 굽이 닳은 구두를 신고 와서 보자기에 싼 김치 한 통을 내밀었습니다. “해 드릴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 면목이 없습니다.” 김 씨는 그 손을 잡았습니다. “사돈, 없는 살림끼리 형식은 차리지 맙시다.”
사돈은 여름이면 직접 담근 매실청을 들고 세탁소에 들렀습니다. 다리미 열기에 땀 흘리는 김 씨를 보고는 말없이 선풍기 방향을 돌려 주고 갔습니다. 손주 돌잔치에서는 구석 의자에 앉아 무릎을 주무르며 진통제를 삼켰습니다. 급식실의 젖은 바닥에 종일 서 있던 세월이 두 무릎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4년 전 봄, 사돈은 양쪽 무릎에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습니다. 문병을 갔던 김 씨는 원무과 창구 앞에서 사돈을 보았습니다. 사돈은 직원에게 작은 목소리로 묻고 있었습니다. “혹시 나눠서 내도 될까요? 아들한테는 말하지 말아 주세요.”
그 무렵 딸은 둘째를 가졌고, 사위는 회사가 어려워 월급이 몇 달째 밀려 있었습니다. 김 씨는 사돈의 사정을 단번에 알아차렸습니다. 그날 밤 김 씨는 장롱 속 적금 통장을 꺼냈습니다. 낡은 드라이클리닝 기계를 바꾸려고 3년 동안 매달 20만 원씩 부어 온 돈이었습니다.
다음 날 김 씨는 적금을 깨서 원무과를 찾아가 사돈 앞으로 나온 병원비 700만 원을 냈습니다. 직원이 물었습니다. “환자분과 어떤 관계세요?” “사돈입니다. 그분한테는 다 정리됐다고만 해 주세요. 우리 애들한테도 비밀이고요.” 덜컹거리는 기계는 그 뒤로도 3년을 더 썼습니다.
수술은 잘 끝났고, 사돈은 석 달 재활 끝에 지팡이 없이 걷게 되었습니다. 딸이 “어머님이 병원비를 어떻게 마련하셨나 몰라” 하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김 씨는 모른 척했습니다.
그 뒤로 4년이 흘렀습니다. 사돈은 명절마다 김치를 보내왔지만 병원비 이야기는 한 번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김 씨는 가끔 서운했습니다. ‘모르는 걸까, 알면서 모른 척하는 걸까.’ 그럴 때마다 김 씨는 스스로를 나무랐습니다. 몰래 낸 돈에 인사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었습니다.
그사이 이상한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김 씨가 새벽에 나오면 가게 앞이 늘 깨끗이 쓸려 있었습니다. 밤새 떨어진 은행잎도, 바람에 날려 온 전단지도 없었습니다. 셔터 옆 제라늄 화분 세 개에는 언제나 물이 촉촉했습니다. 일요일에 쉬고 나온 월요일 아침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 씨는 맞은편 떡집 박 씨가 해 준 일이라 여겼습니다. 떡집은 새벽 네 시면 불을 켰기 때문입니다. “박 씨, 매일 우리 가게 앞까지 쓸어 줘서 고마워요.” 박 씨는 허허 웃기만 했습니다. “제가 뭘요. 부지런한 분이 따로 계신가 봅니다.” 김 씨는 그 말을 인사치레로만 들었습니다.
올가을, 김 씨는 허리 통증이 심해져 병원을 찾았습니다. 척추관 협착증이었습니다. 의사는 수술을 권하며 입원은 이틀이면 된다고 했습니다. 32년 동안 명절 말고는 쉬어 본 적 없는 세탁소 셔터에 처음으로 ‘사흘간 쉽니다’라는 쪽지가 붙었습니다.
입원하기로 한 날 새벽, 김 씨는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사흘 동안 아무도 오지 않을 가게 앞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화분이 마를까 싶어 다섯 시를 조금 넘겨 집을 나섰습니다. 밤새 내린 비가 막 그쳐 골목이 젖어 있었고, 가로등 아래 노란 은행잎이 수북했습니다.
세탁소 앞에 다다른 김 씨는 걸음을 멈췄습니다. 내려진 셔터 앞에서 누군가 몸을 숙이고 젖은 은행잎을 쓸고 있었습니다. 싸리 빗자루가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사락사락 들렸고, 발치에는 물을 채운 페트병 두 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사돈이었습니다.
“사돈, 여기서 뭐 하세요?” 사돈은 들킨 아이처럼 빗자루를 등 뒤로 감추려다 그만두었습니다. “오늘 수술 들어가신다면서요. 왜 나오셨어요.” 김 씨는 사돈의 젖은 운동화와 페트병을 번갈아 보았습니다. 그제야 4년 동안의 깨끗한 새벽이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
“설마, 그동안 매일 사돈이….” 사돈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퇴원하던 날 원무과에서 들었어요. 병원비가 벌써 다 정리됐다고요. 누가 냈는지는 끝내 말을 안 해 주는데, 그럴 사람이 사돈 말고 누가 있겠어요.” 사돈은 빗자루를 두 손으로 꼭 쥐었습니다. “돈으로 갚으면 사돈이 안 받으실 거잖아요.”
사돈은 김 씨의 손을 잡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매일 걸으라고 하셨어요. 새 무릎으로 처음 혼자 집을 나선 날, 어디로 갈까 하다가 발이 이리로 왔어요. 이 다리로 제일 먼저 걸어온 곳이 여기였어요. 그날부터 하루도 안 빠졌습니다.” 사돈 집에서 세탁소까지는 걸어서 40분 거리였습니다.
김 씨는 셔터에 기댄 채 펑펑 울었습니다. 4년 동안 서운해했던 마음이 부끄러웠습니다. 사돈은 말 한마디 대신 날마다 두 무릎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돈도 따라 울며 김 씨의 등을 쓸었습니다. “허리 조심하세요. 사흘 동안 가게 앞은 제가 지킬게요.”
떡집 문이 열리고 박 씨가 나왔습니다. 박 씨는 두 사람을 보고 빙그레 웃었습니다. “이제야 만나셨네요. 4년 동안 입이 근질거려 혼났습니다.” 사돈이 절대 말하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김 씨의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퇴원해 다시 가게에 나온 날, 세탁소 앞은 여느 때처럼 말끔했고 제라늄은 붉은 꽃을 달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이야기를 들은 사위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장모님, 그 빚은 저희가 평생 갚겠습니다.” 김 씨는 손을 내저었습니다. “빚은 무슨. 너희 어머니가 4년 동안 다 갚으셨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꼭 돈으로 갚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봉투 대신 발걸음으로, 말 대신 시간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내가 건넨 정이 돌아오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할 때, 그 마음은 어쩌면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자리에서 날마다 돌아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돈 사이일수록 셈은 접어 두고 마음을 먼저 건네 보세요. 그 마음은 생각보다 오래, 생각보다 깊게 서로를 지켜 줍니다.
첫눈이 내린 지난주 새벽, 사돈은 세탁소 앞 눈을 쓸었고 김 씨는 화분에 물을 주었습니다. 하얀 골목 위로 두 사람의 발자국이 나란히 찍혔고, 떡집 굴뚝에서는 김이 피어올랐습니다. 두 사람은 셔터 앞 나무 의자에 앉아 박 씨가 건넨 따끈한 시루떡을 나눠 먹으며 동이 트는 골목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