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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사이의 돈은 남의 돈보다 주기도 받기도 어렵습니다. 핏줄이라 차용증 한 장 없이 내주고, 핏줄이라 갚으라는 말 한마디를 못 합니다. 그렇게 묻어 둔 돈은 세월이 흐르면 고마움이 아니라 없었던 일이 되기도 합니다.
충청도 어느 소도시에 사는 서 씨는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법인택시를 8년 몰다 개인택시 면허를 받은 지 스물네 해가 되었습니다. 아들과 딸은 결혼해 수도권으로 나갔고, 지금은 아내와 단둘이 삽니다. 서 씨는 지금도 새벽 다섯 시면 차를 닦고 시외버스터미널 앞 승강장에 줄을 섭니다.
서 씨는 삼 형제 가운데 둘째입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뒤 다섯 살 위 큰형이 집안의 기둥 노릇을 했습니다. 서 씨가 중학교 3학년 때 수학여행비가 없어 울고 있자, 큰형은 공사장에서 받은 일당을 그대로 내밀었습니다. “가서 바다 구경 실컷 하고 와라. 형은 나중에 보면 된다.”
서 씨가 장가갈 때도 큰형은 셋방 얻는 데 보태라며 꼬깃꼬깃한 돈뭉치를 쥐여 주었습니다. 서 씨는 그 일을 평생 잊지 않았습니다. 형이 무언가 부탁하면 이유를 묻지 않는 동생이 된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10년 전 겨울밤, 큰형이 소주 한 병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큰형은 공단 근처에서 작은 공장을 하며 부품 업체에 포장 상자를 납품하고 있었습니다. “원자재 대 주는 업체에서 6000만 원을 빌려준단다. 보증인 하나만 세우래. 납품 물량만 늘면 일 년 안에 갚는다.” 부엌에 있던 아내가 고개를 저었지만, 서 씨는 도장을 꺼냈습니다. “형님이 나 키운 거나 마찬가지야.”
이듬해 봄, 큰 거래처가 납품처를 바꾸면서 큰형의 공장은 부도가 났습니다. 독촉장은 보증인인 서 씨 집으로 날아왔습니다. 서 씨는 적금 1800만 원을 깨고, 아내가 딸 혼수 자금으로 모아 둔 통장까지 털었습니다. 그래도 2000만 원이 모자랐습니다.
서 씨는 결국 택시 면허를 팔려고 중개인을 만났습니다. 계약서를 앞에 두고 펜을 쥐었을 때, 아내가 들어와 그 손을 붙잡았습니다. 아내는 친정 오빠에게서 빌려 온 돈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면허는 못 팝니다. 당신 손에서 핸들 놓으면 우리 집도 끝이에요.” 그 뒤 4년 동안 서 씨는 하루 열네 시간씩 택시를 몰아 처가 빚을 갚았습니다.
업체에 마지막 돈을 넣던 날, 서 씨는 ‘보증채무 6000만 원 완납’이라고 적힌 영수증을 받았습니다. 그날 큰형은 서 씨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내 죽기 전에 이 돈은 꼭 갚는다.” 서 씨는 영수증을 네 번 접어 지갑 안쪽에 넣었습니다. 받을 날을 세려는 것이 아니라 형의 그 말을 지니고 다니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 9년이 흘렀습니다. 큰형은 다른 일을 시작했고 차도 바꿨지만, 명절에 만나면 늘 한숨부터 쉬었습니다. “아직 바닥이다, 바닥.” 아내가 서운한 기색을 보이면 서 씨는 오히려 형 편을 들었습니다. “형님도 사정이 있겠지. 갚을 때 되면 갚겠지.”
지난달, 큰형의 장남이 장가를 갔습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토요일이었습니다. 서 씨는 몇 해 묵은 양복을 꺼내 입고, 조카에게 줄 100만 원을 흰 봉투에 넣었습니다. 예식장에 도착한 서 씨는 혼주석 바로 뒤 친척석에 앉았습니다.
식이 시작되기 전, 큰형이 사돈과 악수를 나누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우리 집안은 남한테 손 한번 안 벌리고 일어섰습니다. 시내에 상가 두 칸 사 둔 것도 있으니 애들 걱정은 마십시오.” 사돈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이고, 대단하십니다.”
서 씨는 그 말을 한 걸음 뒤에서 고스란히 들었습니다. 상가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이었습니다. 옆자리의 막냇동생이 작게 속삭였습니다. “작은형, 몰랐어요? 3년 전에 한 칸, 작년에 또 한 칸 샀대요.”
서 씨는 지갑을 꺼냈습니다. 영수증은 접힌 자리가 닳아 글씨가 흐려져 있었습니다. 종이를 펼치는 손이 떨렸습니다. 손을 벌린 적 없다는 집안의 장남이, 아내가 처가에서 빌려 온 돈으로 면허를 지킨 동생 바로 앞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서 씨는 조용히 로비로 나갔습니다. 축의금 봉투에서 현금을 꺼내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그 자리에 영수증을 잘게 찢어 넣었습니다. 봉투 겉면에 ‘둘째’라고만 적어 접수대에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신랑 대기실로 가 조카를 불렀습니다. 서 씨는 현금 100만 원을 조카 손에 직접 쥐여 주었습니다. “네 아버지와 나는 오늘로 끝났다. 너는 잘 살아라.” 조카가 놀라 물었습니다. “작은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서 씨는 대답하지 않고 빗속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며칠 뒤, 터미널 승강장에 조카가 찾아왔습니다. 축의금을 정리하다 찢어진 종잇조각을 맞춰 보고, 어머니를 붙잡고 사연을 다 들었다고 했습니다. 조카는 흰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올봄 회사 들어가서 받은 첫 월급이에요. 아버지는 모르세요. 제가 조금씩이라도 갚겠습니다.”
서 씨는 봉투를 조카의 외투 주머니에 도로 넣어 주었습니다. “그 돈은 네 신혼에 써라. 아비 빚을 자식이 지는 법은 없다.” 옆 차의 동료 기사 정 씨가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날 밤 서 씨는 큰형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형님, 그 돈은 이제 받지 않겠습니다. 받을 돈이 없으니 형님과 나 사이에 남은 것도 없습니다. 아버지 산소는 제가 따로 다니겠습니다.” 큰형에게서 전화가 몇 번 왔지만 서 씨는 받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물었습니다. “후련해요?” 서 씨가 대답했습니다. “후련하지는 않아. 그런데 가볍네.”
가족의 보증은 거절하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하지만 도장을 찍는 순간, 그 빚은 내 식구의 밥상까지 함께 짊어지게 됩니다. 보증을 서야 한다면 내가 대신 갚아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만 서고, 오간 돈은 반드시 글로 남겨 두십시오.
그리고 고마움을 잊은 사람에게 끝까지 매달릴 필요는 없습니다. 받지 못한 돈보다 무거운 것은 ‘언젠가는’이라는 기다림입니다. 놓을 때를 아는 것도 나를 지키는 일입니다.
늦가을 쉬는 날, 서 씨는 아내를 조수석에 태우고 강변 둑길을 천천히 달렸습니다. 길가의 은행나무가 노란 잎을 차창 위로 흩뿌렸고, 강물 위로 낮은 햇살이 반짝였습니다. 서 씨는 처음으로 지갑 안쪽이 비어 있는 것을 느끼며, 아내의 손을 잡고 오래도록 그 길을 달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