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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한다고 건넨 봉투가 손주 책상 서랍 속에서 서운함으로 남는다면 어떨까. 봉투 안의 돈보다 겉에 적힌 한 줄이 아이 마음에 먼저 닿는다.
입학식이나 졸업식이 끝나고 식당에서 밥을 먹은 뒤 할머니가 봉투를 쥐여 주는 장면은 집집마다 비슷하다. 아이는 그 자리에서 꾸벅 인사하지만, 집에 와서 봉투를 다시 읽다가 표정이 굳기도 한다. 손주가 겉으로는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서운해하는 문구 세 가지를 정리했다.
3위. 금액을 앞세우는 생색
봉투를 내밀며 “이거 할아버지가 큰맘 먹고 넣은 거다”라고 덧붙이거나 겉에 ‘거금’이라고 적는 경우가 있다. 아이는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축하를 받았다기보다 갚아야 할 무언가를 하나 받은 기분이 된다.
봉투의 크기를 말로 부풀리면 받는 쪽은 인사를 한 번 더 해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낀다. 옆에 있던 부모도 답례를 어떻게 해야 하나 신경을 쓰게 된다. 액수는 열어 봐야 아는 것으로 두고, ‘새 교복 입은 모습이 듬직하더라’처럼 그날의 아이를 담은 한마디를 적는 편이 오래 남는다.
2위. 훈계로 끝나는 당부
봉투를 건네면서 “중학생 됐으니 이제 엄마 말 잘 듣고 동생한테 양보해라”라고 하고, 겉에도 같은 말을 적는 어른이 적지 않다. 아이는 할머니 눈에 자기가 아직 말 안 듣는 아이로 보인다고 받아들이고, 봉투를 조용히 접어 넣는다.
축하받는 날은 아이가 한 단계 올라선 것을 인정받는 날이다. 그날 듣는 당부는 앞서 들은 칭찬까지 덮어 버리기 쉽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다른 날 따로 꺼내고, 봉투에는 ‘새 학교 생활이 기대된다’처럼 응원만 남기는 편이 무난하다.
1위. 성적이나 등수를 꺼내는 말
졸업 봉투를 주면서 “이번에 반에서 몇 등 했니, 중학교 가면 1등 해야지”라고 묻는 경우가 가장 흔하다. 아이는 웃으며 대답하지만, 축하 자리가 성적 확인 자리로 바뀌는 순간 봉투의 의미도 함께 달라진다.
성적은 아이마다 사정이 다르다. 형제나 사촌끼리 비교라도 붙으면 한 아이는 그날 내내 기가 죽어 있다. 공부 이야기가 빠진 축하를 받아야 아이는 자기가 있는 그대로 인정받았다고 느낀다. ‘여섯 해 동안 학교 잘 다녀 줘서 고맙다’처럼 지나온 시간을 칭찬하는 말이 등수보다 훨씬 깊이 남는다.
손주의 입학과 졸업은 한 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 날이다. 봉투 속 돈은 금방 쓰이지만, 겉에 적힌 글씨는 아이가 어른이 된 뒤에도 서랍 한쪽에 남아 있곤 한다.
그러니 길게 쓸 필요는 없다. 이름 한 번, 축하 한마디, 그날의 아이를 기억하는 한 줄이면 할머니·할아버지의 마음은 충분히 전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