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의 집 자식이라도 한 지붕 아래 오래 살면 정이 듭니다. 끼니를 거르는 것 같으면 반찬을 챙기게 되고, 형편이 빠듯해 보이면 셋돈을 올리지 못합니다. 그런데 정으로 맺은 사이일수록 약속이 흐릿해지기 쉽고, 그 틈으로 엉뚱한 일이 끼어들기도 합니다.
대전 유성구에 사는 문옥순 씨는 올해 일흔하나입니다. 남편과 함께 동네 시장 어귀에서 28년 동안 칼국숫집을 했고, 남편이 7년 전 세상을 떠나자 가게를 접었습니다. 아들은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고, 딸은 청주에서 아이 둘을 키웁니다. 옥순 씨는 남편이 남긴 25평 단독주택 1층에 살면서, 바깥 계단으로 오르는 2층 방을 세놓고 있습니다.
6년 전 봄, 그 방에 전남 고흥에서 올라온 대학 신입생 강태민이 들어왔습니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이었습니다. 이삿날 태민이는 아버지가 잡아 말렸다는 서대 한 묶음을 내밀며 꾸벅 인사했습니다. “할머니, 조용히 살겠습니다.”
태민이는 정말 싹싹한 학생이었습니다. 겨울에 수도가 얼면 새벽같이 내려와 뜨거운 물을 부어 녹였고, 옥순 씨가 장바구니를 들고 골목을 오르면 어디선가 달려와 받아 들었습니다. 옥순 씨가 장독대 앞에서 넘어져 손목을 삐었을 때는 부축해서 정형외과까지 데려갔습니다. 옥순 씨는 그날 밤 아들에게 “2층 학생이 너보다 낫다”며 웃었습니다.
그때부터 옥순 씨는 반찬을 넉넉히 만들어 2층 문 앞에 두었습니다. 멸치볶음과 깻잎장아찌를 챙겼고, 김장철에는 겉절이 한 통을 올렸습니다. 빈 통은 늘 깨끗이 씻겨 계단 손잡이에 걸려 있었습니다.
이듬해 계약을 다시 할 때 동네 사람들은 월세를 50만 원은 받으라고 했습니다. 학교 근처 방값이 해마다 오르던 때였습니다. 옥순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태민아, 너 졸업할 때까지 40만 원 그대로 가자. 시골에서 보내 주는 돈 뻔히 아는데 내가 어떻게 올리냐.” 태민이는 눈가가 붉어졌습니다. “할머니, 취직하면 꼭 갚을게요.”
옥순 씨는 기초연금과 얼마 안 되는 예금, 그리고 그 월세로 살림을 꾸렸습니다. 재산세 고지서가 날아오는 달에는 셈이 빠듯했지만 아쉬운 소리는 하지 않았습니다. 40만 원은 그렇게 6년 동안 한 번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2년 전 여름, 태민이는 후기 졸업을 하고 세종에 있는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버스로 다니면 되니까 당분간 여기 그대로 살게요.” 월세도 매달 태민이 이름으로 꼬박꼬박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태민이 얼굴을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계단에서 마주치는 사람은 낯선 청년이었습니다. 옥순 씨가 묻자 태민이는 “학교 후배가 시험 준비하느라 같이 지내요. 저는 야근이 많아서요” 하고 말했습니다. 옥순 씨는 회사 일이 고된가 보다 하고 반찬을 두 사람 몫으로 늘렸습니다. 태민이는 명절 앞에 과일 상자를 들고 잠깐 들를 뿐이었습니다.
올해 11월 초, 옥순 씨는 지독한 감기로 보름 넘게 앓아누웠습니다. 찬비가 마당 감나무 잎을 다 떨어뜨리던 저녁,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습니다. 계단에서 몇 번 마주쳤던 그 청년이 우산을 접으며 서 있었습니다. 한 손에는 죽 봉투를, 다른 손에는 씻은 반찬통 세 개를 들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2층 사는 이도윤입니다. 요즘 반찬이 안 올라와서 편찮으신가 했어요.” 거실에 들어온 도윤이는 죽을 내려놓으며 머뭇거렸습니다. “그리고 반찬은 안 주셔도 괜찮아요. 태민 형이 월세에 반찬값이 들어 있다고 했는데, 편찮으시면 빼셔도 돼요.”
옥순 씨는 눈을 끔벅였습니다. “반찬값이라니. 그건 내가 그냥 주는 거다. 월세 40만 원 받으면서 무슨 반찬값이냐.”
도윤이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40만 원이요? 할머니, 저는 매달 60만 원 드렸는데요?”
도윤이가 휴대폰을 내밀었습니다. 꼭 2년 전 이맘때부터 지난달까지, 매달 60만 원씩 빠져나간 계좌이체 내역이 화면에 있었습니다. 받는 사람은 강태민이었습니다. “형이 그랬어요. 할머니가 통장 보시는 걸 어려워하셔서 자기가 받아서 전해 드린다고요. 이 집은 원래 집주인이 반찬도 챙겨 주니 그 값까지 친 거라고요.”
옥순 씨는 소파 팔걸이를 붙잡았습니다. 태민이는 졸업하던 해 가을에 이미 세종으로 방을 옮겼던 것입니다. 계약은 그대로 둔 채 후배에게 방을 60만 원에 넘기고, 옥순 씨에게는 40만 원만 보냈습니다. 매달 20만 원씩, 2년 동안 480만 원이었습니다. 6년 동안 묶어 둔 월세와 문 앞에 두었던 반찬이 남의 장사 밑천이 되어 있었습니다.
“죄송해요. 진작 할머니께 직접 여쭤볼 걸 그랬어요.” 도윤이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날 밤 옥순 씨는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서대 묶음을 내밀던 아이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날이 밝자 마음을 정했습니다. 정은 정이고, 셈은 셈이었습니다.
주말에 서울 아들이 내려왔고, 옥순 씨는 태민이를 불렀습니다. 태민이는 처음에 후배를 도와주려 했다고 둘러댔지만, 이체 내역 앞에서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세종 방값이 생각보다 비싸서요. 잠깐만 하려고 했는데….”
옥순 씨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태민아, 나는 네가 어려울 때 월세를 안 올렸다. 그런데 너는 그걸 남한테 팔았구나. 집주인 몰래 세를 다시 놓는 건 계약을 깨는 일이다. 오늘로 너하고 맺은 계약은 끝내자.”
옥순 씨는 도윤이에게 더 받은 480만 원부터 돌려주라고 했습니다. 태민이가 그 자리에서 돈을 보냈고, 옥순 씨는 입금을 확인한 뒤 보증금 500만 원을 태민이에게 돌려주었습니다. 태민이는 현관을 나서며 오래 허리를 굽혔지만, 옥순 씨는 붙잡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옥순 씨는 도윤이와 동네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가서 새 계약서를 썼습니다. 계약자는 이도윤, 월세는 40만 원이었습니다. “대신 반찬통은 네가 직접 들고 내려와라. 얼굴 보고 살자.” 도윤이는 그제야 웃었습니다.
정을 베푸는 일과 약속을 흐리게 두는 일은 다릅니다. 세를 놓고 있다면 내 집에 누가 사는지, 월세가 누구 손을 거쳐 오는지 가끔은 직접 확인해 보세요. 집주인 동의 없이 남에게 다시 세를 놓는 것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사유가 됩니다. 사람을 믿는 마음을 지켜 주는 것은 분명한 계약서 한 장입니다.
11월이 저물 무렵, 감기가 나은 옥순 씨는 마당에서 늦게까지 남은 감을 땄습니다. 도윤이가 사다리를 붙잡았고, 옥순 씨가 장대를 들었습니다. 까치밥 몇 개를 가지 끝에 남겨 둔 두 사람은 평상에 앉아 홍시를 나눠 먹었습니다. 2층 창에 저녁 불이 켜졌고, 계단 손잡이에는 씻은 반찬통이 나란히 걸려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