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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밥 한 그릇, 반찬 한 통으로 시작한 정이 어느새 내 살림을 떼어 주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정을 받은 사람이 고마움 대신 다른 것을 챙겨 갈 때, 베푼 사람의 마음에는 오래 아물지 않는 자국이 남습니다.
권 씨는 올해 쉰여덟입니다. 경기도 남쪽의 작은 도시, 오래된 재래시장 골목에서 20년째 반찬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새벽 다섯 시면 셔터를 올리고 깻잎을 절이고 멸치를 볶습니다. 시내버스 기사로 일하다 퇴직한 남편이 새벽 장보기와 배달을 맡고, 아들과 딸은 결혼해 각자 다른 도시에 삽니다. 부부는 가게에서 걸어서 3분 거리인 낡은 3층 다가구 주택의 2층에 살고 있습니다.
지난해 봄, 비어 있던 3층에 한 여자가 이사를 왔습니다. 마흔셋의 윤 씨였습니다. 짐은 1톤 트럭 한 대로 충분했고, 초등학교 4학년 딸이 엄마 손을 꼭 잡고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그날 밤 천장 너머로 한참 동안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혼하고 맨손으로 나왔다는 이야기는 나중에 들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권 씨는 미역국 한 냄비와 장조림 한 통을 들고 3층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사 떡은 못 돌려도 밥은 먹어야지. 아래층 반찬가게 하는 사람이에요.” 냄비를 받아 든 윤 씨는 한참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 권 씨는 하루도 빠짐없이 윗집 몫을 챙겼습니다. 장사를 마치면 반찬 서너 가지를 통에 담아 3층 문고리에 걸어 두었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윤 씨의 딸은 곧장 가게로 와서 평상에 앉아 숙제를 했고, 권 씨는 갓 부친 동그랑땡을 접시에 담아 주었습니다. 아이는 권 씨를 “가게 할머니”라고 부르며 따랐습니다.
석 달쯤 지났을 때 윤 씨가 가게로 찾아왔습니다. “언니, 저 여기서 일 좀 배우면 안 될까요? 식당 일은 애 혼자 두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요. 일당은 언니 주고 싶은 만큼만 주세요.”
남편은 반찬가게 벌이로 사람 하나 더 쓰기는 빠듯하다며 걱정했습니다. 권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여보, 우리 처음 시작할 때 생각해 봐요. 누가 손 한 번 잡아 줬으면 덜 울었을 거야.” 권 씨는 자기 몫의 수입을 줄여 윤 씨에게 일당을 챙겨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던 것들을 가르쳤습니다. 깻잎장아찌 간장은 세 번 끓여 식혀야 비린 맛이 빠진다는 것, 멸치볶음에는 물엿 대신 조청을 써야 다음 날까지 딱딱해지지 않는다는 것, 겉절이 양념에는 배와 함께 사과를 반 개 갈아 넣는다는 것. 돌아가신 시어머니에게 배워 20년 동안 손으로 다듬어 온 맛이었습니다. 윤 씨는 작은 수첩에 빠짐없이 받아 적었습니다. “언니 덕분에 제가 사람 노릇 하겠어요.” 권 씨는 그 말이 그저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1년이 흘렀습니다. 윤 씨의 손은 몰라보게 빨라졌고, 단골들 이름과 입맛까지 외웠습니다. 그런데 올봄, 윤 씨가 앞치마를 접어 놓으며 말했습니다. “언니, 이제 혼자 서 보려고요. 친정 쪽에 일자리가 났어요.” 권 씨는 서운했지만 웃으며 보내 주었습니다. 이삿날에는 20년 묵힌 씨간장을 한 병 덜어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아이는 가게 할머니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습니다.
윤 씨가 떠난 뒤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매주 반찬을 주문하던 단골 몇 집이 연락을 끊었습니다. 전화를 걸면 “요즘 좀 바빠서요” 하고 말을 흐렸습니다. 윤 씨에게 보낸 안부 문자에도 답이 없었습니다.
지난달,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새벽이었습니다. 권 씨가 셔터를 올리자 문틈에서 빳빳한 전단지 한 장이 떨어졌습니다. ‘개업 기념, 첫 주 반찬 세 가지 만 원.’ 주소는 바로 길 건너 상가 1층이었습니다.
전단지를 넘기던 권 씨의 손이 멈췄습니다. 깻잎장아찌 4천 원, 조청 멸치볶음 5천 원, 사과 겉절이 6천 원. 메뉴 이름도, 가격도 가게 칠판에 분필로 써 둔 그대로였습니다. 맨 아래에는 굵은 글씨가 박혀 있었습니다. ‘원조 손맛 20년 비법.’
권 씨는 우산도 없이 길을 건넜습니다. 새 간판 아래 유리문 안에서 낯익은 사람이 반찬통을 진열하고 있었습니다. 윤 씨였습니다. 윤 씨는 잠시 얼어붙었다가 이내 문을 열었습니다.
“친정 쪽에 일자리 났다면서요.” 권 씨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윤 씨는 눈을 피했습니다. “언니, 장사는 장사잖아요. 배운 걸 써먹는 게 잘못은 아니죠.”
“배운 거 쓰는 건 탓 안 해요. 그런데 그 20년은 누구 20년이에요?” 윤 씨는 끝내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오후, 15년 단골인 박 씨가 가게에 와서 조심스럽게 털어놓았습니다. “말할까 말까 했는데요. 저 사람이 몇 달 전부터 우리한테 전화를 돌렸어요. 이 집 반찬, 사실 다 자기가 만든 거라고. 사장님은 손목이 안 좋아서 이제 간도 못 본다고요.”
그제야 권 씨는 알았습니다. 윤 씨가 수첩에 적던 것은 양념 비율만이 아니었습니다. 배달 장부에 있던 단골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누가 어떤 반찬을 좋아하는지까지 하나하나 옮겨 적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밤 권 씨는 식탁에 앉아 오래 생각했습니다. 따지러 가 봐야 시장 골목에 말만 무성해질 것이었습니다. 권 씨는 휴대전화에서 윤 씨의 번호를 지웠습니다. “여보, 정은 여기서 끝이에요. 대신 내 반찬은 다시 내 이름으로 시작할래요.”
다음 날 권 씨는 칠판의 메뉴를 모두 지웠습니다. 깻잎장아찌는 ‘시어머니 간장 깻잎’, 멸치볶음은 ‘새벽 조청 멸치’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가게 앞에는 남편이 붓펜으로 쓴 종이를 붙였습니다. ‘20년 이 자리, 오늘도 직접 만듭니다.’ 배달 장부는 서랍에 넣고 열쇠를 채웠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떠났던 단골들이 하나둘 돌아왔습니다. 박 씨를 따라온 손님이 깻잎을 한 장 맛보더니 말했습니다. “길 건너 거랑 똑같은 줄 알았는데, 간장 맛이 달라요.” 권 씨는 대답 대신 웃었습니다. 비법은 받아 적어 갈 수 있어도, 20년 동안 간장을 달여 온 손은 적어 갈 수 없었습니다.
이솝 우화 「농부와 뱀」에서 농부는 얼어 죽어 가는 뱀을 품에 안아 녹여 줍니다. 그러나 몸이 따뜻해진 뱀은 농부를 뭅니다. 베푼 정이 독이 되어 돌아오는 일은 옛이야기 속에만 있지 않습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일은 여전히 옳습니다. 다만 정을 주는 것과 내 삶의 뿌리를 통째로 내어 주는 것은 다릅니다. 그 정이 배신으로 돌아왔을 때 미련 없이 끊어 내는 것도 나를 지키는 일입니다. 끊어 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힘은 결국 내가 쌓아 온 시간에서 나옵니다.
지난주 권 씨 부부는 시장 골목 끝 공터에서 올해 첫 김장을 했습니다. 늦가을 햇살 아래 절인 배추가 산처럼 쌓였고, 이웃 상인들이 고무장갑을 끼고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권 씨는 갓 버무린 겉절이 한 쌈을 남편 입에 넣어 주며 오랜만에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