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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짝지어 보내면 사돈이라는 어려운 인연이 생깁니다. 가깝게 지내자니 조심스럽고, 멀리하자니 자식 보기 미안한 사이입니다. 그래서 사돈의 딱한 형편을 알게 되어도 선뜻 손을 내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도와주고도 혹시 상대의 자존심을 다치게 할까 봐 마음을 졸이게 됩니다.
경상도의 한 항구 도시에 사는 이 씨는 올해 예순넷입니다. 수산시장 뒷골목에서 28년째 작은 국숫집을 하고 있습니다. 새벽 다섯 시면 가게 불을 켜고 멸치와 디포리를 우려 육수를 냅니다. 남편과 둘이 시작한 가게였지만, 남편이 7년 전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난 뒤로는 혼자 꾸려 왔습니다. 외아들은 조선소 협력업체에서 용접 일을 하고, 며느리는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며 초등학생 손녀를 키우고 있습니다.
사돈댁은 전라도 내륙의 작은 읍에 삽니다. 며느리의 친정어머니는 일찍 남편을 잃고 20년 가까이 읍내 식당 주방에서 일하며 두 딸을 키웠습니다. 상견례 날, 이 씨는 사돈이 식당 계단 앞에서 난간을 붙잡고 한참을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씨가 팔을 내밀자 사돈은 얼굴을 붉혔습니다. “사부인, 부끄럽게 이게 무슨 일이래요. 무릎이 말을 안 들어서요.”
그해 겨울 사돈댁에서 고춧가루 한 자루가 택배로 왔습니다. 상자 안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국수 양념에 쓰세요’라는 쪽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 씨는 그 고춧가루로 비빔국수 양념을 만들며 사돈의 굽은 무릎을 떠올렸습니다.
5년 전 봄, 가게에 들른 며느리가 국수를 반도 못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이 씨가 캐묻자 며느리는 눈물을 쏟았습니다. 친정엄마가 인공관절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돈 때문에 자꾸 미룬다는 것이었습니다. 며느리 내외도 아파트 대출에 손녀 유치원비로 빠듯했습니다.
이 씨는 그 주에 은행에 가서 가게 적금을 깼습니다. 남편이 떠난 뒤 가게 문 닫을 날을 대비해 하루 매상에서 조금씩 떼어 부어 온 돈이었습니다. 수술비와 입원비, 재활 치료비까지 셈해 700만 원을 찾았습니다.
이 씨는 봉투를 며느리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얘야, 이건 너희 부부가 모은 돈이라고 하고 엄마 갖다 드려라. 내가 줬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마라. 사돈어른 자존심 상하신다.” 며느리는 고개만 연신 숙였습니다. “어머님,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요.” “갚긴 뭘 갚아. 사돈 무릎이 성해야 너도 맘 편히 살지.”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로 며느리가 이상하게 데면데면해졌습니다. 가게에 와도 인사만 하고 서둘러 일어섰고, 사돈 안부를 물으면 “잘 지내세요” 한마디가 전부였습니다. 이 씨는 셔터를 내리며 혼잣말을 했습니다. “괜히 돈을 줘서 애가 나를 어려워하는구나.” 그렇게 5년이 흘렀습니다.
지난여름 장맛비가 사흘째 내리던 날, 이 씨는 육수 솥을 옮기다 젖은 가게 앞 바닥에서 미끄러졌습니다. 골반 뼈에 금이 가 시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저녁에 달려온 아들이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엄마, 저도 집사람도 도저히 휴가를 못 내요. 간병인 선생님을 한 분 모셨어요. 첫날 간병비는 엄마가 직접 드리세요.” 아들은 서랍에 하얀 봉투를 넣어 두고 갔습니다. 이 씨는 괜찮다고 웃었지만, 아들이 돌아간 뒤 천장만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이튿날 아침,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렸습니다. 여덟 시쯤 병실 문이 열리고 분홍색 간병 조끼를 입은 여자가 들어왔습니다. 한 손에는 보온병을, 다른 손에는 보자기에 싼 반찬통을 들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또박또박한 걸음으로 침대 앞까지 걸어왔습니다.
“사부인, 저 왔어요.”
사돈이었습니다. 5년 전 계단 앞에서 난간을 붙잡고 서 있던 그 사돈이 지팡이도 없이 꼿꼿하게 서 있었습니다.
“사돈어른이 여기를 어떻게…….”
사돈은 보온병에서 미역국을 덜어 내밀었습니다. “제가 간병인이에요. 걱정 마세요.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있어요.”
사돈은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수술 날 마취에서 깨어 보니 딸이 울고 있었고, 다그쳐 물었더니 수술비가 사부인 적금에서 나왔다고 털어놓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다짐했어요. 이 다리로 다시 걸으면, 사돈이 아프면 내가 간다고요.” 사돈은 매일 아침 읍내 둑길을 걸었습니다. 처음엔 백 걸음도 못 가 주저앉았지만 1년 뒤에는 한 시간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식당 일을 마친 저녁마다 교육원에 다녀 자격증을 땄습니다. “딸한테는 단단히 일러 뒀어요. 사부인 아프시면 나한테 먼저 연락하라고. 그전엔 내가 아는 것도 절대 말하지 말라고요.”
그날 저녁 퇴근한 며느리는 두 엄마가 나란히 앉은 모습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어머님, 죄송해요. 제가 엄마한테 다 말해 버렸어요. 그 뒤로는 어머님 얼굴만 보면 그 얘기가 튀어나올 것 같아서 입을 못 열겠더라고요.” 간병인을 부른 것도 아들 내외가 사돈과 미리 짜 둔 일이었습니다.
이 씨는 서랍에서 봉투를 꺼내 사돈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사돈, 이건 받으셔야 해요. 일은 일이잖아요.” 사돈은 봉투를 도로 이 씨 손에 밀어 넣었습니다. “사부인, 이 돈은 5년 전에 미리 받았어요. 제 무릎이 이제야 그 값을 하러 온 거예요.” 이 씨는 봉투를 쥔 채 아이처럼 울었고, 사돈도 이 씨의 손등에 제 손을 포개고 함께 울었습니다.
사돈은 3주 동안 이 씨를 돌봤습니다. 퇴원하던 날에는 이 씨를 부축해 병원 계단을 내려갔습니다. 5년 전 상견례 날과 꼭 반대였습니다.
『흥부전』에서 흥부는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정성껏 고쳐 주고, 이듬해 봄 그 제비는 박씨를 물고 돌아옵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은 정성이었기에 돌아온 것이 더 귀했습니다.
누군가를 도울 때 그 마음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건넨 정은 오래 걸려서라도 제 길을 찾아옵니다. 사돈이라는 어려운 자리일수록 계산보다 진심을 먼저 건네 보세요.
올가을 이 씨는 사돈과 함께 항구 앞 방파제 산책로를 걸었습니다. 갈매기가 물 위로 낮게 날았고, 저녁 해가 등대 너머로 붉게 번졌습니다. 두 사람은 팔짱을 낀 채 천천히, 그러나 한 번도 쉬지 않고 방파제 끝까지 걸어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