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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는 남의 집 딸로 와서 내 식구가 된 사람입니다. 시부모는 무엇을 해 줘도 조심스럽고, 며느리는 무엇을 받아도 미안한 사이입니다. 그래서 며느리에게 건네는 돈에는 늘 말로 다 하지 못한 마음이 함께 담깁니다.
충청도의 한 시골 마을에 사는 조 씨는 올해 예순여덟입니다. 열여덟에 목공소 견습생으로 들어가 40년 넘게 대패와 끌을 잡았습니다. 낡은 시골집 마루를 새로 깔고, 문짝을 고치고, 혼수 장롱을 짜며 아내와 외아들을 키웠습니다. 다섯 해 전 손목이 시원찮아지자 작업장을 정리했습니다.
아들은 이웃 도시의 작은 회사에 다니고, 며느리는 군청 공무원으로 일했습니다. 손주는 남매 둘입니다. 며느리는 처음 인사 오던 날부터 싹싹했습니다. 작업장 구석에 쌓인 대팻밥을 보더니 “아버님, 나무 냄새가 참 좋네요” 하며 한 줌을 봉지에 담아 갔습니다. 신발장에 넣어 두면 냄새가 잡힌다고 했습니다.
시댁에 오는 날이면 며느리는 꼭 시어머니와 읍내 장에 나갔습니다. 바닷가 마을에서 시집온 아내는 생선 좌판만 보면 고향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아들도 지겨워하던 그 이야기를 며느리는 “어머님, 그래서요?” 하며 끝까지 들었습니다. 아내는 “우리 며느리는 내 얘기 들어 주는 사람”이라며 좋아했습니다.
한번은 조 씨가 이웃집 툇마루를 고치다 끌에 손등을 깊이 베였습니다. 마침 주말에 와 있던 며느리가 수건으로 손을 감싸고 응급실까지 차를 몰았습니다. 일곱 바늘을 꿰매는 동안 며느리는 조 씨보다 더 하얗게 질린 얼굴이었습니다.
4년 전 가을, 며느리의 친정어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았습니다. 친정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오빠 둘은 멀리 살았습니다. 며느리는 결국 가족돌봄휴직을 냈습니다. 월급이 끊기는 휴직이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우리가 알아서 해요” 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었습니다.
조 씨는 장롱 서랍에서 통장을 꺼냈습니다. 목수 일로 모은 적금에, 작업장을 정리하며 기계와 공구를 넘기고 받은 돈을 보탠 것이었습니다. 늘그막에 아내와 바다 구경이라도 다니려던 돈이었습니다. 조 씨는 한 달에 150만 원씩, 1년치 생활비 1800만 원을 찾아 봉투에 담았습니다.
아내에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시어머니가 알면 며느리가 명절마다 그 돈을 마음에 지고 올 것 같았습니다. 조 씨는 며느리를 따로 불렀습니다. “얘야, 1년치 생활비다. 네 시어머니한테는 말하지 마라.” 며느리는 봉투를 밀어냈습니다. “아버님, 이건 못 받아요. 노후 돈이잖아요.” 조 씨는 봉투를 다시 쥐여 주었습니다. “네가 친정엄마 지키는 동안 우리는 너를 지키는 거다. 그게 식구다.”
그 뒤로 4년이 흘렀습니다. 며느리는 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뒤에도 퇴근하면 친정으로 달려갔습니다. 사돈어른의 병은 점점 깊어지다가 지난겨울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며느리는 많이 울지 않았습니다. 너무 오래 울어 온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
조 씨는 한 번도 그 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다만 며느리가 십 년 된 경차를 여전히 몰고, 명절마다 같은 외투를 입고 오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돈이 모자랐던 걸까, 더 줄 걸 그랬나 싶은 날도 있었습니다.
그 무렵 아내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냄비를 태우고, 방금 한 이야기를 다시 물었습니다. 눈감고도 담그던 깻잎장아찌 간을 두 번이나 망쳤습니다. 조 씨는 나이 탓이려니 넘겼습니다. 병원에 가 보자고 처음 말을 꺼낸 사람은 며느리였습니다.
올봄, 아내가 대학병원 신경과에서 검사 결과를 듣던 날은 바람이 찼습니다. 의사는 뇌 사진을 짚어 가며 치매 초기라고 했습니다. 약으로 진행을 늦출 수 있고, 일찍 알아낸 게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조 씨 귀에는 그 말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약국에 간 사이, 조 씨는 병원 앞 벤치에 넋을 놓고 앉아 있었습니다. 화단의 벚꽃이 바람에 우수수 지고 있었습니다. 40년 동안 대패를 밀던 손이 서류 봉투 하나를 이기지 못하고 떨렸습니다.
며느리가 옆에 와 앉더니 가방에서 수첩 한 권과 통장 하나를 꺼냈습니다. 수첩은 모서리가 닳아 둥글어졌고 표지는 손때로 반들거렸습니다. “아버님, 이거 한번 보세요.”
수첩에는 작은 글씨가 빼곡했습니다. [약은 아침상 국그릇 옆에. ‘영양제 드세요’ 하면 잘 드심.] [밤에 신발 신고 나가시면 막지 말 것. 같이 걷다가 ‘엄마, 나 다리 아파’ 하면 따라 들어오심.] [기분 안 좋으실 때는 처녀 때 부르던 노래 틀어 드리기.] 며느리가 4년 동안 친정어머니를 돌보며 적어 온 간병 수첩이었습니다.
뒷장부터는 제목이 달랐습니다. [어머님 좋아하시는 반찬] 아래에 조기구이, 호박잎쌈, 깻잎장아찌가 적혀 있었고, 장아찌 옆에는 간장과 물엿 비율까지 있었습니다. 다음 장은 [어머님 고향 이야기]였습니다. 열 살 때 갯벌에서 굴 따다 밀물에 갇힐 뻔한 이야기, 열일곱에 처음 기차를 탄 이야기가 날짜와 함께 적혀 있었습니다.
“작년 가을부터 어머님이 같은 얘기를 자꾸 하시더라고요. 엄마 처음 그러실 때랑 똑같아서 그때부터 적었어요. 어머님이 잊으시면 제가 대신 기억해 드리려고요.”
며느리가 통장을 조 씨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4년 전 날짜에 1800만 원이 들어와 있었고, 그 뒤로는 이자만 몇 줄 붙어 있었습니다. 한 푼도 빠져나가지 않았습니다.
“그해엔 그냥 아껴 살았어요. 오빠들이 병원비를 조금씩 보탰고요. 봉투 받은 날 엄마가 잠깐 정신이 맑으셨는데, 사돈 돈은 쓰지 말라고, 그 댁에도 꼭 필요한 날이 온다고 하셨어요.” 며느리는 숨을 고르고 말했습니다. “아버님, 이 돈은 어머님 차례에 쓰려고 아껴 뒀어요. 이번엔 제가 할게요.”
조 씨는 벤치 앞 땅바닥에 주저앉아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모자라서 입는 줄 알았던 며느리의 낡은 외투가 떠올랐습니다. 그 아이는 모자라서가 아니라 이날을 위해 아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며느리가 조 씨의 등을 가만히 쓸어 주었습니다.
약국에서 돌아온 아내가 물었습니다. “둘이 왜 그러고 있어요?” 며느리가 웃으며 시어머니 팔짱을 꼈습니다. “어머님, 굴 따던 얘기 마저 해 주세요. 밀물 들어와서 어떻게 됐어요?” 아내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습니다.
그날 저녁 조 씨는 처음으로 아내에게 그 돈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아내는 “그런 걸 왜 혼자 해요” 하고 눈을 흘기더니, 며느리 손을 잡고 한참을 놓지 않았습니다. 조 씨는 그 주부터 수첩을 펴 놓고 깻잎장아찌 담그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자식에게 건넨 돈은 대개 쓰이고 사라집니다. 그러나 어떤 돈은 고마움으로 지켜져, 가장 필요한 날 몇 배가 되어 돌아옵니다. 그 돈을 지킨 것은 통장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입니다.
며느리와 사위를 남의 자식이라 여기면 늘 한 뼘의 거리가 남습니다. 힘들 때 먼저 손을 내밀어 보세요. 그 손은 언젠가 내가 가장 힘든 날, 가장 가까이에서 나를 붙잡아 줍니다.
올가을 조 씨는 아내와 아들 내외를 태우고 아내의 고향 바닷가 마을을 찾았습니다. 물이 빠진 갯벌 위로 저녁 햇살이 붉게 번졌습니다. 아내는 며느리 손을 잡고 갯벌을 가리키며 굴 따던 이야기를 또 했고, 며느리는 처음 듣는 것처럼 “그래서요, 어머님?” 하고 물었습니다. 조 씨는 두 사람 뒤를 천천히 따라 걸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