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3 10:15

“시동생 결혼에 2500만원 보탰는데..” 11년 뒤 동서가 던진 한마디에 손이 떨렸다

자식에게는 숨기지 못해도 배우자에게는 숨기는 돈이 있습니다. 시댁이나 친정에 몰래 보낸 돈이 그렇습니다. 말하면 다툼이 날까 봐, 누군가의 체면이 상할까 봐 입을 다뭅니다. 그러나 그렇게 묻어 둔 돈은 언젠가 뜻밖의 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내곤 합니다.

충청도 어느 소도시에 사는 장 씨는 올해 예순하나입니다. 시장 입구 상가 2층에서 28년째 작은 미용실을 하고 있습니다. 의자 세 개짜리 가게지만 동네 할머니들 파마는 거의 장 씨 손을 거쳤습니다. 남편은 예순넷으로, 30년 넘게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다 작년에 손을 놓았습니다. 딸은 시집가 수도권에 살고, 아들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닙니다.

장 씨가 시집왔을 때 막내 시동생은 중학생이었습니다. 남편과는 열두 살 터울이었습니다. 시골에서 읍내 학교까지 버스로 다니던 시동생은 주말이면 형네 단칸방에 와서 자고 갔습니다. 장 씨는 그때마다 계란말이를 부쳐 도시락을 싸 주었습니다. 시동생이 고등학교 수학여행비를 못 내 끙끙댈 때도 미용실 첫해 번 돈에서 몰래 봉투를 쥐여 준 사람이 장 씨였습니다.

“형수님, 나중에 내가 돈 벌면 형수님 가게 의자 제일 좋은 걸로 바꿔 드릴게요.” 까까머리 시동생이 하던 그 말을 장 씨는 오래 기억했습니다.

그런데 13년 전 시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일이 틀어졌습니다. 시아버지 병원비를 거의 다 댄 남편과, 조의금은 어머니 몫으로 남겨야 한다는 시동생이 언성을 높였습니다. 술기운에 오간 말이 서로의 가슴에 박혔습니다. 남편은 “이제부터 너는 내 동생 아니다”라며 상복을 벗어 던졌고, 그 뒤로 형제는 연락을 끊었습니다.

2년 뒤 겨울밤,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시어머니는 수화기 너머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에미야, 막내가 장가를 간다는데 돈 한 푼이 없다. 식장 잡을 돈도, 방 얻을 돈도 없어. 아범한테는 말도 못 꺼내겠고, 내가 너 말고 누구한테 이러겠니.”

장 씨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낡은 미용실 의자를 바꾸려고 3년 동안 부은 적금이 있었습니다. 장 씨는 다음 날 은행에 가서 적금을 깼습니다. 그리고 남편 몰래 두 번에 나눠 시어머니 계좌로 2,500만 원을 보냈습니다. 시동생 결혼식 비용과 신혼 전셋값에 보탤 돈이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전화로 신신당부했습니다. “이 돈 얘기는 아범한테도, 막내한테도 하지 마라. 형제 사이가 저 모양인데 괜히 일 커진다. 내가 다 알아서 하마.”

결혼식 날 남편은 식장 맨 뒤에 서 있다가 축의금 50만 원만 내고 돌아왔습니다. 장 씨는 그런 남편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미용실 의자는 그 뒤로도 끝내 바꾸지 못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상한 이야기가 장 씨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친척 결혼식에서 만난 큰고모가 혀를 찼습니다. “너희 시어머니가 그러더라. 큰집은 동생 장가가는데 한 푼도 안 보탰다고. 늙은 어미가 논 팔아 겨우 치렀다고.” 명절에 시골집에 가면 동서는 장 씨에게 인사만 하고 등을 돌렸습니다.

장 씨는 속이 끓었지만 시어머니와 한 약속을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어머님이 바로잡아 주시겠지. 그렇게 11년을 참았습니다.

올가을 시어머니가 여든여덟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식장에서 형제는 13년 만에 한자리에 섰지만 끝내 눈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사흘 뒤, 장 씨와 남편은 유품을 정리하러 시골집에 갔습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마당 감나무에는 따지 못한 감이 몇 개 매달려 있었고, 툇마루에는 시어머니가 신던 고무신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시동생 부부는 먼저 와서 안방 서랍을 열어 보고 있었습니다.

옷가지를 개던 동서가 불쑥 말을 꺼냈습니다. “형님, 이 집 문제는 오늘 정리하고 가요. 솔직히 형님네는 도련님 결혼 때 축의금 50만 원 하고 끝이었잖아요. 어머님 들여다본 것도 우리고요. 시골집은 저희가 받아야죠.”

동서는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습니다. 큰집은 시골집에 대해 아무 권리도 주장하지 않겠다는 각서였습니다. 법으로 따지면 며느리는 시어머니 재산을 물려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도 동서는 큰집 부부 도장을 모두 받아야 마음이 놓인다고 했습니다.

장 씨는 대꾸하지 않고 장롱 문을 열었습니다. 맨 아래 칸에 시어머니가 평생 쓰던 반짇고리가 있었습니다. 뚜껑을 열자 실패와 골무 아래 고무줄로 묶은 종이 뭉치가 보였습니다. 빛바랜 송금 확인증 두 장이었습니다. 보낸 사람 칸에는 장 씨의 이름이, 금액 칸에는 1,500만 원과 1,000만 원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 위에 누런 메모지 한 장이 붙어 있었습니다. 삐뚤빼뚤한 시어머니 글씨였습니다. [큰며느리 돈. 막내한텐 내가 논 팔아 준 걸로 했다.]

장 씨는 종이를 쥔 손이 떨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시어머니는 그 돈을 자기가 마련한 것처럼 꾸몄고, 그러고도 친척들 앞에서 큰집을 두고두고 원망했던 것입니다.

장 씨가 종이를 방바닥에 내려놓자 동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시동생은 확인증을 집어 들고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그대로 내려놓았습니다.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습니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남편이었습니다. 남편은 확인증을 접어 장 씨 손에 쥐여 주며 낮게 말했습니다. “엄마 욕보이지 말고 그냥 덮어. 그 돈도 결국 내 돈 아니냐.”

장 씨는 남편을 똑바로 바라보았습니다. “그 돈은 내가 미용실에서 남의 머리 감겨 가며 모은 돈이에요. 의자 바꾸려고 3년 부은 적금이었어요. 당신 돈이었으면 당신 동생한테 갔겠어요?”

남편은 고개를 돌렸습니다. 장 씨는 동서가 내민 각서를 끌어당겼습니다. 그리고 핸드백에서 도장을 꺼내 자기 이름 옆에 꾹 눌러 찍었습니다. “나는 이 집에서 받을 것도 없고, 이제 더 줄 것도 없어요. 당신 도장은 당신이 알아서 찍어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장 씨는 앞만 보며 말했습니다. “올해 제사부터 나는 안 가요. 명절에도 시골 안 내려가요. 그리고 여보, 우리 이제 따로 살아요. 이혼하자는 거 아니에요. 남은 날은 각자 편하게 살자는 거예요.”

남편은 운전대를 잡은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장 씨는 그 주에 미용실 안쪽 작은 방을 치우고 이불을 들여놓았습니다. 딸과 아들은 소식을 듣고 놀라 내려왔지만, 반짇고리 이야기를 듣고는 말없이 어머니 손을 잡았습니다.

가족 사이에 몰래 건넨 돈은 대개 착한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준 사람의 이름이 지워지면 그 돈은 엉뚱한 사람의 공이 되고, 엉뚱한 사람의 허물이 됩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오해는 사실처럼 굳어 버립니다.

돕는 마음은 귀하지만, 적어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알려 두는 편이 낫습니다. 그리고 오래 참아 온 사람이 이제 그만 내려놓겠다고 할 때, 그것은 모진 결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입니다.

11월 첫 주, 장 씨는 28년 만에 처음으로 미용실 의자를 새것으로 들였습니다. 상가 2층 창밖으로 시장 골목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장 씨는 아직 비닐도 벗기지 않은 새 의자에 앉아, 늦가을 햇살이 골목에 길게 눕는 것을 오래 내려다보았습니다.

OWN 뉴스

당신의 뉴스를 담습니다. 오늘의 건강부터 내일의 노후까지, 꼭 필요한 생활 정보를 전합니다. 하루에 엄청나게 많이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