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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친구 사이에는 셈을 하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그래도 마음이 한쪽으로만 기운다고 느끼면 서운함이 쌓이게 됩니다. 그 서운함은 대개 말 한마디에 터지고, 한번 돌아선 발길은 좀처럼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충청도의 작은 읍내에 사는 한 씨는 올해 예순둘입니다. 장터 골목 어귀에서 35년째 철물점을 하고 있습니다. 아침 일곱 시에 셔터를 올리고, 손님 손에 못과 경첩, 수도꼭지와 전선을 쥐여 주며 하루를 보냅니다. 아내와 함께 아들 둘, 딸 하나를 키워 모두 출가시켰습니다.
한 씨에게는 고등학교 시절 단짝 정 씨가 있었습니다. 정 씨는 공부를 잘해 서울로 대학을 갔고, 한 씨는 졸업하자마자 읍내 철물점 점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걷는 길은 달랐지만 둘은 방학마다 냇가에서 만나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정 씨의 낡은 자전거 체인이 빠질 때마다 고쳐 준 사람도 한 씨였습니다.
서른두 해 전 정 씨가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한 씨는 새벽 첫 버스를 타고 올라가 흰 봉투를 건넸습니다. 점원 월급이 빠듯하던 때라 10만 원은 큰돈이었습니다. “친구야, 이게 내 전부다. 잘 살아라.” 정 씨는 봉투를 받아 들고 한참 동안 한 씨의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한 씨는 정 씨네 경조사를 한 번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정 씨 아버님 회갑, 아이들 돌잔치, 장인 장례, 큰아들 결혼식까지 매번 10만 원씩 봉투에 넣었습니다. 철물점 금고 맨 아래 칸에는 정 씨 몫으로 떼어 둔 돈이 늘 들어 있었습니다. 아내가 “또 서울 가요?” 하고 물으면 한 씨는 “그놈 일인데 가야지” 하며 작업복을 벗었습니다.
정 씨는 대기업에서 임원까지 올랐고, 연락은 해가 갈수록 뜸해졌습니다. 그사이 한 씨에게도 고비가 있었습니다. 6년 전 장터 일대가 재개발에 들어가며 손님이 뚝 끊긴 것입니다. 가게를 접을까 고민하던 무렵, 새로 들어선 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에서 공구 납품 계약을 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한 씨는 그저 운이 좋았다고만 여겼습니다.
일이 틀어진 것은 3년 전 봄 동창회에서였습니다. 읍내 한식당에 동창 서른 명 가까이가 모였고, 정 씨도 오랜만에 얼굴을 비쳤습니다. 술잔이 몇 번 돌자 정 씨가 한 씨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습니다. “얘는 고등학교 때부터 공구나 만지더니….” 좌중에 웃음이 터졌습니다. 귀가 화끈 달아오른 한 씨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해 늦가을 한 씨의 어머니가 아흔둘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 씨를 아들처럼 아끼던 어머니였습니다. 사흘 내내 빈소 입구만 바라보았지만 정 씨는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화환도 전화도 없었습니다. 발인을 마친 밤, 한 씨는 휴대전화에서 정 씨의 번호를 지웠습니다. “30년 정이 고작 이거였구나.” 아내는 말없이 남편의 등을 쓸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올가을, 모르는 번호로 부고 문자가 왔습니다. 정 씨였습니다. 한 씨는 가게 계산대에 앉아 한참 동안 휴대전화만 내려다보았습니다. 아내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래도 가 봐요. 안 가면 당신이 두고두고 걸려 할 거예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한 씨는 서울의 한 병원 장례식장을 찾았습니다. 영정 속 정 씨는 몰라보게 야위어 있었습니다. 절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상복 차림의 정 씨 아내가 한 씨를 알아보았습니다. “철물점 하시는 분 맞으시죠? 기다렸어요.” 그녀는 가방에서 표지가 누렇게 바랜 가계부 한 권을 꺼냈습니다.
첫 장에는 정 씨의 반듯한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1994년 4월, 결혼식. 한 씨 10만 원. 첫 버스 타고 옴.’ 장을 넘길 때마다 날짜와 함께 같은 이름, 같은 금액이 이어졌습니다. 맨 마지막 줄은 떨리는 글씨였습니다. ‘어머님 상. 수술 날이라 못 감. 퇴원하면 무릎 꿇고 사죄할 것.’
정 씨 아내가 말을 이었습니다. “그날 남편은 대장암 수술을 받고 있었어요. 그 뒤로 항암 치료를 받느라 기운이 없었고, 전화를 하려다가도 면목이 없다며 매번 내려놓았어요.”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 덧붙였습니다. “동창회 날도 집에 와서 속상해했어요. ‘공구 하나로 자식 셋 다 키운 놈, 우리 중에 제일 잘 산 놈’이라고 하려던 건데, 웃음소리에 친구가 먼저 나가 버렸다고요.”
그때 검은 양복을 입은 낯선 남자가 다가왔습니다. 아파트 단지 관리소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철물점 사장님이시죠? 그 단지 시공을 고인의 회사가 맡았습니다. 그분이 사장님 가게를 꼭 써 달라고 부탁하셨어요. 사장님께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하셨고요.”
한 씨는 가계부를 두 손으로 붙든 채 의자에 주저앉았습니다. 앞부분만 듣고 돌아선 그날의 웃음소리, 지워 버린 전화번호가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 소리 죽여 울던 한 씨는 봉투에 10만 원을 넣어 부의함에 넣고, 그날 밤 빈소를 지켰습니다. 정 씨 아내는 가계부를 한 씨에게 건넸습니다. “이건 이제 그쪽이 가지고 계세요.”
사람의 말은 앞부분만 남고 뒷부분은 흩어지기 쉽습니다. 서운한 마음이 들 때 한 번만 더 물어보았다면 두 친구는 마지막 2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정을 끊기 전에 끝까지 들어 보세요. 오래 쌓아 온 마음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고, 말없이 나를 지켜 준 사람이 곁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늦가을 어느 오후, 한 씨는 아내와 함께 고향 냇가 둑길을 걸었습니다. 둑을 따라 억새가 하얗게 흔들렸고, 냇물 위로 낙엽이 천천히 떠내려갔습니다. 한 씨는 두 소년이 자전거를 세워 두던 바위 앞에서 오래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