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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말이 쉬워진다. 겪은 일이 많아지니 웬만한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것 같지 않고, 젊은 사람의 고민도 이미 지나온 길처럼 보인다. 그래서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결론부터 꺼내게 된다. 말하는 쪽은 도와준다고 여기지만, 듣는 쪽은 한 발씩 물러선다. 어느 날 돌아보면 곁에 남은 사람이 줄어 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짚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김수환 추기경은 2007년 자신의 자화상에 ‘바보야’라는 글을 적었다. 그 그림을 두고 그는 “내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겠어요. 다 같은 인간인데, 안다고 나대는 것이 바보지”라고 말했다. 추기경이라는 자리에 있던 사람이 스스로를 바보라 부른 것이다. 이 말은 겸손을 꾸민 것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모자라고, 그 사실을 잊는 순간 말이 거칠어진다는 관찰에 가깝다. 그의 말에 비추어 보면, 나이 들수록 삶을 조금씩 갉아먹는 말버릇이 보인다.
4위 – 남과 견주는 말
“우리 애는 벌써 자리 잡았는데”, “그 집은 아직도 그렇게 사나”. 이런 말은 대개 별 뜻 없이 나온다. 대화의 실마리로 꺼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비교는 언제나 누군가를 아래에 둔다. 듣는 사람은 그 아래 자리가 자기 것이 될까 봐 경계하게 된다.
다 같은 인간이라는 말 앞에서 비교는 힘을 잃는다. 조금 앞서거나 조금 뒤처진 것은 한때의 사정일 뿐이다. 남과 견주는 말을 줄이면 대화가 가벼워지고, 마음도 덜 흔들린다.
3위 – 나이를 앞세우는 말
“내가 몇 살인데”, “살아보면 다 알게 돼”. 나이는 시간이 쌓인 것이지 옳음이 쌓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말이 막힐 때 나이를 꺼내면 대화는 거기서 끝난다. 상대는 반박할 길이 없으니 입을 닫을 수밖에 없다.
나이를 앞세우는 말은 이긴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진 것이다. 설득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덮는 말이기 때문이다. 오래 산 사람의 말이 무게를 갖는 것은 나이를 내세울 때가 아니라 나이를 내려놓을 때다.
2위 – 남을 깎아내리는 말
“그 사람이 뭘 알아”, “그 정도는 나도 하겠다”. 다른 사람을 낮추면 잠시 내가 높아진 것처럼 느껴진다. 그 기분이 습관이 되면 칭찬은 줄고 흠잡기는 늘어난다. 주변 사람들은 자기도 어디선가 그렇게 불릴 것을 안다.
추기경이 말한 “내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겠어요”는 이 버릇을 정면으로 비춘다. 남을 깎아내릴 만큼 내가 높은 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 말은 저절로 순해진다. 깎아내리는 말을 멈추는 것만으로도 관계의 온도는 달라진다.
1위 – 다 안다고 단정하는 말
“그건 내가 잘 알지”, “뻔하지 뭐”. 앞의 세 가지 말버릇은 모두 이 한마디에서 자란다. 다 안다고 믿으면 비교하게 되고, 나이를 내세우게 되고, 남을 낮추게 된다. 안다는 확신은 듣는 귀부터 닫는다.
추기경은 바로 이것을 바보라고 했다. 안다고 나대는 것.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안다고 착각하며 앞에 나서는 것이 어리석다는 뜻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빨리 바뀌고, 사람의 속사정은 생각보다 깊다. 다 안다고 단정하는 순간 배움도, 사람도 멀어진다. 그의 말에 비추어 보면 나이 들수록 가장 먼저 내려놓아야 할 말버릇이 이것이다.
말버릇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다만 한마디를 바꾸는 일은 오늘도 할 수 있다.
오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 한 번만 “그건 몰랐네요”라고 말해본다. 정말 몰랐던 것이 아니어도 괜찮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 그 한마디를 건네면, 상대의 얼굴이 조금 달라지는 것이 보인다. 스스로를 바보라 불렀던 한 사람의 마음은 그런 작은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