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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했는데 상대의 표정이 더 굳어졌다면 말이 잘못 나간 것이다.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고 사과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나 오랜 친구와 다투고 나면 먼저 손을 내미는 쪽이 어른스럽다고들 한다. 그런데 용기를 내서 건넨 사과가 오히려 두 번째 다툼의 불씨가 되는 일이 적지 않다. 사과를 망치는 말에는 몇 가지 정해진 모양이 있다.
3위. ‘미안한데’로 시작해 변명을 붙이는 말
“미안한데, 그날은 나도 몸이 안 좋아서 그랬어.” 앞의 미안함은 짧고 뒤의 사정은 길다. 듣는 사람은 앞말보다 뒷말을 기억한다. 결국 상대에게 남는 것은 사과가 아니라 해명이다.
사정이 있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 사정은 상대의 마음이 풀린 뒤에 꺼내도 늦지 않다. 사과하는 자리에서 먼저 할 일은 내 형편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무엇에 다쳤는지 알아주는 것이다.
2위.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하다’처럼 책임을 넘기는 말
이 말은 겉으로는 정중하다. 그러나 잘 들어 보면 사과의 대상이 내 행동이 아니라 상대의 느낌이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당신이 예민하게 받아들였다는 뜻이 은근히 깔려 있다.
들은 사람은 사과를 받고도 어딘가 억울해진다. 그 억울함은 오래 남는다. 제대로 된 사과는 “내가 그 말을 해서 미안하다”처럼 주어가 나여야 한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짚을수록 사과는 무게를 얻는다.
1위. 사과 뒤에 ‘그래도 너도 잘못했다’를 덧붙이는 말
어렵게 사과를 꺼내 놓고 끝에 “근데 너도 그때 그러면 안 됐지”를 붙인다. 이 한마디가 나오는 순간 사과는 사라지고 다툼이 다시 시작된다. 상대는 방금 들은 미안하다는 말보다 새로 받은 비난에 대답하게 된다.
다툼에서 잘못이 한쪽에만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더욱 공평하게 따지고 싶어진다. 하지만 사과는 잘잘못의 몫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다. 상대의 잘못이 마음에 걸린다면 날을 달리해 차분히 꺼내는 편이 낫다. 한자리에 섞으면 사과도 서운함도 함께 묻힌다.
좋은 사과는 짧고 구체적이며 조건이 없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말하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린 뒤 거기서 멈추면 된다. 사과를 받아줄지는 상대의 몫으로 남겨 두는 것까지가 사과다.
오늘 누군가에게 미안한 일이 있다면 ‘그런데’와 ‘그래도’를 빼고 말해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