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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물건, 한번 내다 버리면 자식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치운 사람은 금세 잊어도 지켜본 사람은 두고두고 떠올립니다. 명절에 내려온 자녀가 말끔해진 다락방을 보고 한동안 말을 잃는 일이 드물지 않습니다. 부모는 짐을 덜어 주려고 정리했는데 자녀는 자기가 지나온 한 시절이 통째로 사라진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낡고 쓸모없는 물건이었을 뿐이라 서운해하는 자녀가 오히려 의아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부모님 집 정리를 지켜본 자녀들이 남겨 두시길 바랐던 물건 세 가지를 순서대로 짚어 보겠습니다.
3위. 어릴 적 상장과 통지표
오랜만에 친정에 들른 딸에게 어머니가 “누렇게 바랜 종이들은 진작 내놨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머니에게는 그저 서랍 정리였지만 딸은 속으로 내 어린 시절이 엄마에게는 짐이었나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상장이나 통지표는 종이 자체가 귀해서가 아니라 부모가 그것을 수십 년간 간직해 왔다는 사실이 자녀에게 의미가 됩니다. 버리기 전에 당사자인 자녀에게 한마디 물어보는 편이 무난합니다. 가져가겠다는 자녀에게는 넘겨주고, 보관이 부담스럽다면 사진으로 찍어 보내 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2위. 엄마 손글씨로 적은 반찬 레시피 노트
찬장을 비우던 어머니가 기름얼룩이 밴 공책을 내놓으며 “요즘은 휴대폰에 다 나오는데 이게 무슨 소용이니” 하시는 일이 많습니다. 그 말을 듣는 자녀는 그 공책에만 우리 집 김치 맛과 된장찌개 맛이 적혀 있다는 걸 압니다. 같은 이름의 반찬은 어디서든 찾을 수 있어도 엄마의 맛은 거기에만 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레시피 노트는 어머니가 곁에 계실 때는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훗날 그 맛을 되살릴 거의 유일한 단서가 되기 쉽습니다. 정리할 생각이 드신다면 그 전에 자녀에게 넘겨주시는 편이 좋습니다. 함께 반찬 하나를 만들면서 노트에 ‘적당히’, ‘조금’이라고만 적힌 양을 덧붙여 두면 더 쓸모 있는 기록이 됩니다.
1위. 오래된 가족사진 필름과 비디오테이프
아버지가 돌잔치 영상이 담긴 테이프 묶음을 내다 놓으며 “틀어 볼 기계도 없는데 뭐 하러 두냐”고 하시면 자녀는 그 자리에서 할 말을 찾지 못합니다. 이미 버린 뒤에 알게 되면 젊은 부모님의 얼굴과 목소리를 다시 볼 길이 막혔다는 생각에 속이 상합니다.
필름과 테이프에는 인화하지 않은 사진이나 부모님이 젊었을 때의 목소리와 몸짓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생할 기계가 없을 뿐 내용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세월이 지날수록 상태가 나빠질 수 있으니 사진관이나 변환 업체를 통해 디지털 파일로 옮겨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비용은 업체마다 차이가 있으니 자녀에게 맡겨 알아보게 하셔도 됩니다.
부모님이 집을 비우는 건 대개 자식에게 짐을 남기지 않으려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자녀도 그 마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다만 자녀가 남겨 두길 바라는 것은 값나가는 물건이 아니라 자기가 자라 온 흔적과 부모님의 손길이 밴 것들입니다.
정리를 시작하기 전에 자녀에게 “혹시 챙기고 싶은 거 있니” 하고 한 번만 물어보셔도 서운함은 크게 줄어듭니다. 버릴지 말지는 그 대답을 들은 뒤에 정하셔도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