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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첫해를 ‘그동안 고생했으니 좀 쉬자’며 흘려보내고 계십니까? 그 1년 동안 붙은 습관이 그대로 굳어 남은 노후의 모양이 됩니다. 아침에 눈을 떠도 갈 곳이 없고, 누가 “요즘 뭐 하세요?” 하고 물으면 말문이 막힙니다. 명함이 사라지자 나를 설명할 말까지 함께 사라진 것이지요.
노후 설계 상담 현장에서 듣는 고민도 대개 이 첫해에 시작됩니다. 은퇴 직후 가장 먼저 손봐야 할 생활 습관을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3위. 직함 대신 이름으로 불리는 데 익숙해지기
동네 산책 모임이나 문화센터 강좌에서 처음 인사를 나눌 때 “제가 예전에 회사에서 상무까지 하다 나왔습니다”라는 말로 소개를 시작하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본인은 자기소개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듣는 사람은 속으로 ‘그래서 지금은 어떤 분인데요?’ 하며 한 걸음 물러섭니다. 지나간 직함을 앞세우는 순간 대화는 그 사람의 과거에 머물러 버립니다.
새로 만난 사람들은 지금의 나와 관계를 맺고 싶어 합니다. 처음 몇 번은 어색하더라도 “박○○입니다. 요즘 수영을 배우고 있어요”처럼 이름과 지금 하는 일로 소개해 보십시오. 누가 “○○ 씨” 하고 부를 때 서운함보다 홀가분함이 먼저 느껴진다면 은퇴의 첫 고비를 넘긴 것입니다.
2위. 출근 대신 스스로 하루 일과표 만들기
아침상을 물린 뒤 배우자가 “오늘은 뭐 하실 거예요?” 하고 물으면 “뭘 하긴, 그냥 쉬지” 하며 소파로 향하는 날이 이어집니다. 그 말을 들은 배우자는 속으로 ‘오늘도 하루 종일 같이 있겠구나’ 싶어 괜히 숨이 막힙니다. 나는 쉬겠다고 한 말인데, 상대에게는 자기 하루까지 묶이는 말로 들리는 것이지요.
회사는 출근 시간과 회의로 하루를 대신 짜 주었지만 이제는 그 일을 스스로 해야 합니다. 기상 시간을 정하고, 오전에 한 번은 집 밖으로 나갈 일을 만들고, 오후에는 배우거나 손을 쓰는 일 하나를 넣어 두면 충분합니다. 종이에 적어 냉장고에 붙여 두면 배우자도 내 하루를 짐작할 수 있어 서로 편해집니다.
1위. 집안일 하나는 온전히 내가 맡기
설거지하는 배우자 뒤에서 “뭐 좀 도와줄 거 없어?” 하고 묻는 분이 많습니다. 마음은 고맙지만 배우자는 속으로 ‘도와준다는 말부터가 이 집 일은 남의 일이라는 뜻이네’ 하고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할 일을 하나하나 찾아 일러 줘야 하니 오히려 일이 하나 더 늘어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거드는 것과 맡는 것은 다릅니다. 분리수거든 저녁 설거지든 장보기든 하나를 정해 처음부터 끝까지 내 일로 가져오십시오. 처음 한 번은 집안의 방식을 묻되, 그다음부터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챙기는 편이 무난합니다. 집 안에 내 몫이 생기면 집은 그냥 머무는 곳이 아니라 내가 꾸려 가는 곳이 되고, 그것이 명함을 대신할 새 자리가 됩니다.
은퇴 첫해는 쉬는 해라기보다 새 생활의 틀을 짜는 해에 가깝습니다. 오늘 저녁 식탁에서 배우자에게 “내일부터 분리수거는 내가 할게” 한마디만 건네 보십시오. 거창한 계획보다 그 한마디가 첫해를 바꿔 놓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