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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혼자 살다 보면 곁에서 살갑게 챙겨 주는 사람 하나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습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자식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면 돈 몇 푼은 아깝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이 깊을수록 지켜야 할 것은 분명히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늘 일이 터진 뒤에야 깨닫습니다.
충청도의 한 작은 읍내에 사는 정 씨는 올해 일흔둘입니다. 남편과 함께 장터 골목에서 35년 동안 방앗간을 했습니다. 명절 대목이면 새벽 네 시부터 떡쌀을 불리고 고춧가루를 빻느라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였고, 기름 짜는 날이면 머리카락에 참기름 냄새가 며칠씩 배어 있었습니다.
부부는 그렇게 모은 돈으로 버스터미널 뒤편에 3층짜리 원룸 건물을 지었습니다. 방 여덟 칸에서 나오는 월세가 두 사람의 노후 대책이었습니다. 남편은 8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났고, 외아들은 수도권 공장에 다니느라 명절에나 얼굴을 비쳤습니다. 정 씨는 건물 1층 주인 세대에서 혼자 지냈습니다.
2년 전 봄, 서른넷 된 남자가 2층 빈방을 보러 왔습니다. 세입자 강 씨였습니다. 강 씨는 방을 둘러보기도 전에 현관 앞에 쌓인 택배 상자부터 정 씨 집 안으로 들여 주었습니다. “어머님, 이런 건 무거우니까 저 부르세요.”
강 씨는 읍내 물류창고에서 일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계약서를 쓰려던 날, 머뭇거리며 사정을 털어놓았습니다. “사실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투석을 받으셔서 병원비 대느라 보증금을 못 모았습니다. 몇 달만 시간을 주시면…”
정 씨는 남편이 병원에 다니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보증금 500만 원은 없는 셈 치고 들어와요. 월세도 형편 필 때까지는 두고.” 강 씨는 그 자리에서 고개를 깊이 숙였습니다. “어머님, 제가 앞으로 아들처럼 모시겠습니다.”
그 말은 빈말이 아닌 듯했습니다. 겨울이면 강 씨가 새벽같이 건물 앞 눈을 치웠고, 보일러가 멈추면 공구를 들고 내려왔습니다. 장날이면 정 씨의 장바구니를 들어 주었고, 나간 계단 등도 손수 갈아 끼웠습니다.
작년 가을 정 씨가 무릎 인공관절 수술로 보름 동안 입원했을 때도 강 씨가 집 열쇠를 맡아 우편물을 챙기고 화분에 물을 주었습니다. 병문안을 올 때마다 귤 한 봉지를 들고 와서 “어머님 안 계시니까 건물이 텅 빈 것 같아요” 하고 웃었습니다.
월세 30만 원이 들어오지 않으니 정 씨의 살림은 그만큼 빠듯해졌습니다. 방앗간 시절 부어 둔 적금 하나를 깨서 생활비에 보탰고, 겨울에는 난방을 줄였습니다. 그래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멀리 사는 아들 대신 곁에서 어머님 하고 불러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든든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 아주 없지는 않았습니다. 어머니 병원비 때문에 힘들다던 강 씨가 올봄에는 새 차를 몰고 들어왔습니다. 밤늦게 누군가와 전화로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계단을 타고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정 씨는 젊은 사람 사정이 다 있겠거니 하고 넘겼습니다.
올가을 들어 정 씨의 무릎이 다시 시큰거렸습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건물을 돌보는 일이 버거워졌습니다. 아들은 전화할 때마다 “엄마, 이제 건물 정리하고 우리 집 근처로 오세요” 하고 졸랐습니다. 정 씨는 오랜 고민 끝에 건물을 내놓기로 했습니다.
시월 말,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정 씨는 우산을 쓰고 장터 입구의 오래된 부동산 사무실 문을 밀었습니다. 30년 가까이 그 자리를 지킨 중개사 윤 씨가 석유난로 옆에서 일어나 정 씨를 맞았습니다.
정 씨가 건물 주소를 말하자 윤 씨가 장부를 넘기다 말고 고개를 들었습니다. “아, 그 건물이요. 혹시 지난달에 위임장 들고 오셨던 분 어머님이세요?”
정 씨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위임장이라니요. 나는 오늘 처음 왔는데요.”
윤 씨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그는 서랍에서 파란 서류철을 꺼내 탁자 위에 펼쳤습니다. 맨 위에 위임장 사본 한 장이 있었습니다. 소유자 칸에는 정 씨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적혀 있었고, 그 옆에 정 씨의 인감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습니다.
위임받는 사람 칸을 보는 순간 정 씨의 손이 떨렸습니다. 강 씨의 이름이었습니다. 관계 칸에는 ‘아들’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인감증명서와 등기권리증을 복사한 종이가 함께 끼워져 있었습니다.
윤 씨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젊은 분이 와서 어머님이 거동이 불편하시니 대신 급매로 팔아 달라고 했습니다. 시세보다 한참 싸게 내놓을 테니 계약금만 빨리 받게 해 달라고요. 그런데 서류가 전부 복사본이었습니다. 원본을 가져오고 소유자분과 직접 통화하게 해 달라고 했더니, 어머님이 귀가 어두우시다며 얼버무리고는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이상해서 사본을 남겨 두었지요.”
정 씨는 그제야 작년 가을을 떠올렸습니다. 입원해 있던 보름 동안 집 열쇠는 강 씨 손에 있었습니다. 안방 장롱 서랍에는 인감도장과 등기권리증, 은행 일로 떼어 둔 인감증명서가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어머님, 경찰에 꼭 알리셔야 합니다. 인감도 오늘 바로 바꾸시고요.” 윤 씨가 사본을 한 장 더 복사해 정 씨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정 씨는 그 종이를 접지도 못한 채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첫차로 아들이 내려왔습니다. 두 사람은 경찰서에 위임장 사본을 내고 신고했고, 주민센터에서 인감을 새로 신고했습니다. 장롱 속 서류는 모두 은행 대여금고로 옮겼습니다.
그날 저녁, 강 씨가 여느 때처럼 귤 봉지를 들고 1층 문을 두드렸습니다. “어머님, 비 오는데 무릎 괜찮으세요?” 정 씨는 대답 대신 위임장 사본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습니다. 강 씨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습니다.
“코인으로 진 빚이 있어서… 잠깐 쓰고 돌려놓으려고 했습니다.” 강 씨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정 씨는 한참 그를 내려다보다 입을 열었습니다.
“여기 아들이라고 썼더구먼. 내 아들은 어미 장롱을 뒤지지 않네. 이달 말까지 방 빼고, 나머지는 경찰에서 정할 걸세.” 강 씨가 무어라 더 말하려 하자 아들이 조용히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정 씨는 2년 치 월세와 보증금은 따지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돈은 자신이 좋아서 내어 준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정을 이용해 남편과 35년 방앗간을 돌려 일군 건물에 손을 댄 일만큼은 덮어 줄 수 없었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정을 나누는 일은 귀하지만, 도장과 집 서류만큼은 누구에게도 함부로 맡겨서는 안 됩니다. 마음은 열어 두되 서랍은 잠가 두어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살가운 말 한마디에 마음이 쉽게 기웁니다. 그러나 정말 나를 위하는 사람은 내 재산이 아니라 내 안부를 궁금해합니다. 고마운 사람에게는 고맙다고 하되, 중요한 일은 반드시 내 눈으로 확인하세요.
십일월 첫 주, 정 씨는 아들과 함께 읍내 냇가 둑길에 나섰습니다. 둑을 따라 억새가 은빛으로 흔들렸고, 장터 쪽에서는 문 닫은 지 오래된 방앗간 굴뚝이 저녁 햇살을 받고 서 있었습니다. 아들이 엄마의 팔짱을 끼었고, 정 씨는 오랜만에 무릎 아픈 것도 잊은 채 둑길 끝까지 걸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