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마음을 전할 길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돈으로 하기엔 형편이 넉넉지 않고, 말로 하기엔 어색합니다. 그래서 많은 시어머니가 밥상으로 마음을 건넵니다. 그런데 그 밥상이 오랫동안 한쪽으로만 차려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 날이 있습니다.
경북 바닷가 작은 도시에 사는 정 씨는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남편과 함께 시장 어귀에서 28년 동안 정육점을 했습니다. 새벽 여섯 시면 냉장 트럭에서 고기를 받아 뼈를 발랐고, 저녁이면 단골들이 주문한 갈비를 손질해 두었습니다. 남편은 3년 전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 씨는 가게를 세놓고 시장 뒤편 단층집에서 혼자 지냅니다. 외아들은 같은 도시에서 회사를 다니며 며느리, 열두 살 손녀와 함께 차로 20분 거리에 삽니다.
며느리가 시집온 첫해 봄이었습니다. 생일이 언제냐고 묻자 며느리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어머님, 저는 생일상을 받아 본 기억이 별로 없어요. 친정이 식당을 해서 제 생일이 늘 제일 바쁜 날이었거든요.” 그 말이 정 씨 마음에 오래 걸렸습니다.
그해부터 정 씨는 며느리 생일마다 상을 차렸습니다. 가게에서 제일 좋은 갈비를 골라 하룻밤 찬물에 핏물을 빼고, 배를 갈아 넣어 재웠습니다. 잡채는 당면을 따로 볶아야 불지 않는다며 아침부터 부엌을 지켰습니다. 며느리가 손녀를 가졌을 때는 밤 열한 시에 잡채가 먹고 싶다는 전화를 받고 시금치를 데쳤습니다. 남편이 병원에 누워 있던 해에도 갈비찜만은 거르지 않았습니다.
정 씨의 생일은 시월 스무이틀입니다. 그날이 오면 아들은 늘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엄마, 그날은 회사 일이 있어서. 다음 주말에 케이크 사 갈게.” 정 씨는 서운해하지 않았습니다. 생일이 일주일 늦는다고 나이가 덜 먹는 것도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남편이 있을 때는 둘이서 시장 국밥집에 가면 그만이었습니다.
올봄, 열다섯 번째 생일상을 받던 날 며느리가 말했습니다. “어머님, 이제 힘드실 텐데 그만하셔도 돼요.” 정 씨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내 손 움직일 때까지는 해야지.”
남편이 떠난 뒤 세 번째 맞는 생일이었습니다. 시월 중순,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이번 금요일 생일이지? 내가 그날 출장이 잡혀서. 다음 주에 챙기자.” 정 씨는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니 이상하게 쓸쓸했습니다. 올해만큼은 제 손으로 상을 차려 식구들을 불러 보고 싶었습니다. 정 씨는 아들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혹시 일찍 오면 들러라. 갈비 재워 놨다.’ 답은 짧았습니다. ‘늦을 것 같아, 엄마.’
금요일에는 바다 쪽에서 비바람이 몰려왔습니다. 정 씨는 아침부터 갈비찜을 안치고 잡채를 볶았습니다. 손녀가 좋아하는 동그랑땡도 부치고, 제 몫의 미역국은 스스로 끓였습니다. 일곱 시, 여덟 시가 지나도록 상 위의 그릇은 하나도 비지 않았습니다. 생선가게를 하는 이웃 한 씨가 가자미 두 마리를 들고 왔다가 상을 보고 물었습니다. “형님, 생일인데 왜 혼자 계세요?” 정 씨는 “애들이 바빠서” 하고 웃었습니다.
밤 아홉 시 사십 분,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우비를 입은 배달원이 커다란 꽃바구니를 안고 서 있었습니다. 정 씨는 아들이 출장지에서 꽃이라도 보냈구나 싶어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배달원이 주소를 확인하더니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사모님, 여기가 장모님 댁 맞으세요? 사위분이 장모님 생신 축하 꽃이라고 오늘 밤 안에 꼭 보내 달라셨거든요.”
정 씨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장모님이라니요. 꽃바구니에 달린 분홍 리본에는 ‘사랑하는 장모님 생신 축하드려요’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주문서의 보내는 사람 칸에는 아들의 휴대전화 번호가 찍혀 있었습니다. 몇 해 전 아들이 같은 꽃집 앱으로 정 씨에게 꽃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저장된 주소로 꽃이 잘못 온 것이었습니다.
정 씨는 젖은 꽃바구니를 식은 갈비찜 옆에 내려놓고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노랫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어, 어머님…” 며느리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저희 지금 친정에 와 있어요. 오늘이 저희 엄마 생신이라서요.”
그제야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습니다. 사돈의 생일도 시월 스무이틀이었습니다. 결혼한 첫해, 아들은 두 어머니의 생일이 겹친다는 걸 알고 아내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엄마는 알면 서운해하실 거야. 그냥 다음 주에 챙기자.” 그 거짓말이 열다섯 해 동안 이어졌습니다. 며느리는 몇 번이나 사실대로 말씀드리자고 했지만, 아들은 그때마다 괜히 일을 키우지 말자고 했다는 것입니다.
자정이 다 되어 아들 내외가 빗길을 달려왔습니다. 아들은 현관에 선 채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엄마, 서운하실까 봐 그랬어요.” 정 씨는 식은 미역국을 데우며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얘야, 엄마가 서운한 건 사돈댁 잔치에 간 게 아니다. 장모님 생신이니 거기 가는 게 도리지. 엄마가 서운한 건 열다섯 해 동안 엄마를 속여도 되는 사람으로 여긴 거다. 사실대로 말했으면 엄마는 웃으며 보냈을 거다.”
그리고 정 씨는 두 가지를 정했습니다. “며느리 생일상은 올봄 차린 것으로 끝내마. 미워서가 아니다. 이제는 너희가 서로 챙기는 걸 보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 엄마 생일은 미루지 마라. 못 오면 못 온다고 말하면 된다. 엄마는 그날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으마.” 며느리가 울먹이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어머님, 진작 말씀드렸어야 했어요.”
다음 날 아침, 정 씨는 잘못 온 꽃바구니와 갈비찜 한 통을 들고 손수 사돈댁을 찾았습니다. 사돈은 사부인 생일이 같은 날이었다는 말을 처음 듣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사부인, 내년부터는 우리 둘이 한 상에서 같이 먹읍시다.” 정 씨는 그 손을 꼭 잡았습니다.
정성은 받는 쪽이 알아야 비로소 정성이 됩니다. 부모를 배려한다며 둘러대는 거짓말은 배려가 아니라 부모를 어린아이처럼 대하는 일입니다. 서운한 진실이 다정한 거짓말보다 관계를 오래 지킵니다.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하다 보면 자식은 정말 괜찮은 줄 압니다. 받고 싶은 마음, 서운한 마음도 때로는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십일월 초, 정 씨는 손녀의 손을 잡고 바닷가 방파제를 걸었습니다. 등대 너머로 해가 붉게 지고, 갈매기들이 낮게 날며 파도 위를 스쳤습니다. 손녀가 “할머니, 내년 생일엔 내가 잡채 볶아 줄게” 하자, 정 씨는 바닷바람에 흩어진 손녀의 머리칼을 가만히 쓸어 넘겨 주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