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2 16:22

“남동생 빚 갚으라고 3500만원 줬는데..” 아버지 유산 나누던 날 벌어진 일

친정 형제가 어렵다는 말을 들으면 시집간 딸의 마음은 편할 날이 없습니다. 남편 앞에서는 차마 꺼내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다가, 결국 모아 둔 쌈짓돈을 몰래 건네기도 합니다.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는 한참 뒤에야 알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울 변두리 동네에 사는 최 씨는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서른 해 동안 안방 한쪽에 재봉틀을 놓고 부업을 해 왔습니다. 동네 봉제공장에서 커튼 단이며 앞치마 끈 같은 일감을 받아 와 한 장에 몇백 원씩 받고 박았습니다. 남편은 시내버스를 35년 몰다 정년퇴직했고, 아들과 딸은 모두 결혼해 따로 삽니다.

최 씨에게는 네 살 아래 남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뒤 최 씨는 열다섯 살 때부터 남동생 도시락을 싸고 교복을 다려 입혔습니다. 남동생이 군대에 가던 날, 훈련소 앞에서 가장 오래 손을 흔든 사람도 아버지가 아니라 누나였습니다.

남동생은 결혼한 뒤 고향 읍내에서 작은 식당을 차렸다가 몇 번이나 문을 닫았습니다. 그때마다 최 씨는 부업으로 번 돈에서 몇십만 원씩 떼어 보냈습니다. 남편은 처가 일에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지만, 최 씨는 남편 볼 낯이 없어 늘 조용히 보냈습니다.

6년 전 겨울, 남동생이 밤늦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누나, 이번에 못 갚으면 가게고 집이고 다 넘어가. 3500만 원만 어떻게 안 될까. 아버지한테는 말하지 마. 쓰러지셔.”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습니다.

최 씨에게는 남편도 모르는 적금 통장이 하나 있었습니다. 재봉틀 앞에서 번 돈 가운데 생활비에 보태고 남은 것을 30년 동안 조금씩 부어 온 것이었습니다. 손주들 대학 갈 때 보태 주려던 돈이었습니다. 최 씨는 이튿날 은행에 가서 적금을 깨고 3500만 원을 남동생에게 보냈습니다.

“이게 누나가 가진 전부다. 빚 정리하고 다시는 이런 전화 하지 마라.” 남동생은 울먹이며 “고마워, 누나. 꼭 갚을게”라고 했습니다. 최 씨는 은행에서 받은 송금 확인증을 재봉틀 서랍 깊숙이 넣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몇 달 뒤 찾아보니 종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디서 흘렸으려니 하고 잊었습니다.

그 뒤로 남동생의 연락은 뜸해졌습니다. 명절에 친정에 가도 남동생은 누나와 눈을 잘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것은 아버지였습니다. 딸이 찾아가면 반가워하면서도 어딘지 서운한 얼굴이었습니다. “너도 사는 게 바쁘지.” 그 말끝이 늘 쓸쓸했습니다.

올해 늦여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한 달쯤 지난 토요일, 남동생이 유산 이야기를 하자며 식구들을 친정집으로 불렀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것은 시골 기와집 한 채와 논 몇 마지기였습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렸습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낡은 서류봉투 하나를 옆구리에 끼고 따라나섰습니다. 친정집 안방에는 고모와 작은아버지, 남동생 내외가 둘러앉아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쓰던 앉은뱅이책상 위에 서류 몇 장과 인주가 놓여 있었습니다.

남동생이 종이 한 장을 누나 앞으로 밀었습니다. “누나, 여기 도장 좀 찍어. 상속 포기한다는 각서야. 누나는 시집가서 친정에 한 푼도 안 했잖아. 아버지 아플 때도 내가 다 했고.”

최 씨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작은아버지가 혀를 찼습니다. “형님이 생전에 그러시더라. 아들이 빚에 몰려 누나한테 손을 벌렸는데 모른 척했다고. 그 얘기를 하시면서 눈물까지 보이셨다.” 고모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최 씨는 그제야 아버지의 쓸쓸한 말끝이 무슨 뜻이었는지 알았습니다.

입술이 떨렸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남편 앞에서 그 돈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남편이 서류봉투를 열었습니다. 누렇게 바랜 종이 한 장이 책상 위에 놓였습니다. 6년 전 날짜와 3500만 원, 받는 사람 칸에 남동생 이름이 찍힌 송금 확인증이었습니다.

“처남, 이게 한 푼도 안 한 사람의 영수증인가.” 남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단했습니다.

최 씨가 남편을 돌아보았습니다. “여보, 이걸 어떻게…….” 남편이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6년 전에 재봉틀 벨트 갈다가 서랍에서 봤어. 당신이 얼마나 고민하고 보냈을지 아니까 모른 척했지. 그래도 언젠가 당신을 지켜 줄 종이 같아서 내가 챙겨 뒀어.”

안방이 조용해졌습니다. 그때 구석에 앉아 있던 올케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형님, 죄송해요. 그 돈 빚 갚는 데 안 썼어요. 그 빚부터가 도박 빚이었고, 형님이 보내 주신 돈까지 한 달 만에 다 날렸어요. 아버님한테는 형님이 안 빌려줬다고 둘러대고요. 저도 무서워서 말을 못 했어요.”

남동생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작은아버지가 책상을 내리쳤습니다. “누나 돈을 날리고, 형님 눈 감을 때까지 그 누나를 인정머리 없는 딸로 만들어 놨어?” 고모는 최 씨의 손을 잡고 “얘야, 그동안 얼마나 억울했니” 하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최 씨는 각서를 천천히 반으로 접었습니다. “이건 못 쓴다. 유산은 법에서 정한 대로 나누되, 네 몫에서 그 3500만 원은 빼고 계산하자. 그리고 아버지 산소에 가서 사실대로 말씀드려라.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전부다.” 남동생은 한참 만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누나, 미안해. 매형, 죄송합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최 씨가 물었습니다. “6년 동안 왜 한마디도 안 했어요?” 남편은 와이퍼 너머를 보며 웃었습니다. “당신이 30년 재봉틀 돌려 번 돈인데 내가 뭐라 그래. 동생 아끼는 마음까지 탓하면 당신이 얼마나 외롭겠어.” 최 씨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형제를 돕는 마음이 때로는 배우자에게도 말 못 할 비밀이 됩니다. 그러나 비밀로 건넨 돈일수록 그 기록만큼은 남겨 두어야 합니다. 받은 사람이 고마움을 잊고 사실을 비틀 때, 그 종이 한 장이 나를 지켜 줍니다.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을 조금 더 믿어 보아도 좋습니다. 말하지 못한 내 사정을 이미 알고, 말없이 기다려 준 사람이 가장 가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올가을 최 씨는 남편과 함께 동네 하천 둑길을 걸었습니다. 억새가 바람에 하얗게 흔들렸고, 물가에는 해 질 녘 햇살이 길게 누웠습니다. 최 씨는 남편의 팔짱을 끼고 둑길 끝 다리까지 천천히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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