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2 16:30

“손녀 화실비 1600만원 보냈는데..” 합격 축하 밥상에서 알게 된 비밀

손주의 앞날이 걸린 일이라면 조부모는 쌈짓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자식 내외가 맞벌이로 바쁘고 형편까지 빠듯해 보이면 더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 돈이 정말 손주에게 닿았는지는 생각보다 한참 뒤에야 알게 되기도 합니다.

경상도의 한 바닷가 공업 도시에 사는 박 씨는 올해 예순여덟입니다. 열아홉 살에 조선소 협력 공장에 들어가 37년 동안 선반과 밀링 기계를 돌렸습니다. 쇳가루 날리는 작업장에서 백분의 일 밀리미터를 맞추는 일이었고, 손등에는 그때 튄 쇳밥 자국이 아직도 점점이 남아 있습니다. 정년퇴직한 뒤로는 아내와 함께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에서 연금으로 살고 있습니다.

부부에게는 외아들이 있습니다. 아들은 같은 도시의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고, 며느리는 대형 마트 계산대에서 일합니다. 손녀는 그 집의 외동딸입니다.

손녀는 돌이 지나서부터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박 씨 부부 손에서 컸습니다. 아침마다 며느리가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면, 박 씨는 야간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손녀와 놀아 주었습니다. 손녀는 할아버지가 공장에서 가져온 낡은 도면 뒷면에 그림 그리는 것을 제일 좋아했습니다.

박 씨는 쇠자를 대고 직선 긋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선은 한 번에 진하게 긋는 게 아니다. 가볍게 여러 번 겹쳐서 진하게 만드는 거다.” 손녀는 혀를 빼물고 그 말대로 선을 겹쳤습니다.

박 씨가 퇴직하던 날, 열 살이던 손녀가 그림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파란 작업복 차림의 할아버지가 선반 앞에 서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박 씨는 그 그림을 액자에 넣어 지금도 거실 벽에 걸어 두었습니다.

2년 전 봄,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손녀 일로 아들이 찾아왔습니다. “아버지, 애가 미대를 가겠답니다. 실기는 화실 안 다니면 어림도 없다는데, 한 달에 60만 원씩 든답니다. 저희 형편에 그게 좀….”

박 씨는 거실의 액자를 한 번 올려다보았습니다. “그 아이 그림 솜씨는 내가 안다. 돈 걱정 말고 보내라.” 아내도 거들었습니다. “우리 손녀가 하고 싶다는 건데 해 줘야지요.”

부부는 퇴직금 일부로 들어 둔 정기예금을 깼습니다. 박 씨는 동네 철공소에 나가 일주일에 사흘씩 기계를 손봐 주는 일도 다시 시작했습니다. 매달 25일이면 아들 통장으로 60만 원을 보냈고, 방학마다 특강비라며 80만 원씩 따로 부쳤습니다. 2년 동안 보낸 돈은 꼭 1600만 원이었습니다.

그사이 손녀 얼굴을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명절에도 아들은 “애는 화실 갔다가 늦게 옵니다” 하고 혼자 왔습니다. 그림을 좀 보여 달라고 하면 손녀는 “아직 부족해서요” 하며 웃기만 했습니다. 박 씨는 가끔 마주치는 손녀의 손가락에 연필 굳은살이 박이고 운동화 뒤축이 닳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고생하는구나 싶어 마음이 짠했습니다.

아들의 얼굴도 점점 어두워졌습니다. 전화를 걸면 늘 바쁘다며 금방 끊었고, 어쩌다 집에 와도 휴대전화만 들여다보았습니다. 박 씨는 회사 일이 고된가 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올해 2월 초, 손녀가 서울의 한 미술대학 서양화과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박 씨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주말에 시내 한정식집에서 축하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바닷바람에 진눈깨비가 섞여 날리던 날이었습니다. 박 씨는 새로 산 나무 화구 상자를 보자기에 싸 들고 갔고, 아내는 축하금 봉투를 핸드백 깊숙이 넣었습니다.

상 위에 갈비찜과 잡채가 차려지자 박 씨가 잔을 들었습니다. “우리 손녀, 2년 동안 화실 다니느라 참 고생 많았다. 밤늦게까지 그 무거운 화판 들고 다니느라….”

손녀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할아버지, 저 화실 한 번도 안 다녔는데요?”

방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며느리의 손에서 숟가락이 떨어져 그릇에 부딪혔습니다. 아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박 씨가 천천히 물었습니다. “그럼 그동안 어디서 그렸느냐.”

“학교 미술실에서요. 아빠가 요즘 집에 돈이 없다고, 화실 대신 학교에서 해 보라고 하셔서요. 미술 선생님이 밤 아홉 시까지 미술실 문을 열어 주셨어요.”

손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 몇 장을 보여 주었습니다. 텅 빈 미술실에 이젤 하나만 불빛 아래 서 있었습니다. 다음 사진에는 소묘가 한 장 담겨 있었습니다. 박 씨가 퇴직하며 손녀에게 준 버니어캘리퍼스와 낡은 공구들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가르쳐 준 대로 선을 여러 번 겹쳐서 그렸어요. 실기 시험장에서도 그렇게 그렸고요.”

그제야 아들이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3년 전 담보대출을 끼고 넓은 집으로 옮겼는데 금리가 오르면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었고, 그 구멍을 주식으로 메우려다 오히려 반토막이 났다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보낸 화실비는 매달 대출 이자와 주식 계좌로 빠져나갔습니다. 며느리가 울먹였습니다. “아버님, 제가 말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박 씨는 한참 동안 손녀의 손만 바라보았습니다. 굳은살이 박인 가운뎃손가락이 눈에 밟혔습니다. 이윽고 아들을 향해 입을 열었습니다.

“네가 나를 속인 건 참겠다. 그런데 이 아이는 2년 동안 화실 다니는 친구들 틈에서 혼자 미술실 불 켜 놓고 버텼다. 그게 제일 마음 아프다.”

박 씨는 목소리를 가다듬었습니다. “그 돈 나한테는 갚지 마라. 이 아이 이름으로 통장을 하나 만들어서 매달 갚아라. 등록금이랑 재료비는 거기서 쓴다. 그리고 다음 주에 나랑 같이 학교에 가자. 미술 선생님께 인사는 드려야지.”

손녀가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할아버지, 저는 그 돈을 보내 주신 줄도 몰랐어요. 알았으면….”

“몰랐던 게 다행이다. 알았으면 그 마음고생까지 네가 짊어졌을 거 아니냐.” 박 씨는 보자기를 풀어 화구 상자를 손녀 앞에 놓아 주었습니다.

일주일 뒤, 박 씨는 아들과 함께 귤 한 상자를 들고 학교를 찾았습니다. 미술 선생님은 손녀가 늘 미술실 불을 제일 늦게 끄고 나가던 아이였다고 했습니다. 아들은 선생님 앞에서 오래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달 말부터 손녀 이름의 통장에 매달 40만 원씩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자식을 믿고 건넨 돈이라도 그 돈이 어디로 가는지는 한 번쯤 살펴야 합니다. 의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손주를 위한 돈이라면 손주의 얼굴과 손을 직접 보고, 이야기를 직접 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돈은 엉뚱한 곳으로 새어도, 어린 시절 가르쳐 준 것은 새지 않습니다. 박 씨의 손녀는 할아버지가 일러 준 대로 가벼운 선을 겹치고 또 겹쳐 제 길을 냈습니다. 정성은 결국 그렇게 남습니다.

3월 초, 서울로 떠나기 전날 손녀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바닷가 방파제를 걸었습니다. 길가에는 동백이 붉게 피어 있었고, 멀리 조선소 크레인 너머로 봄 햇살이 바다 위에 반짝였습니다. 손녀는 방파제 끝에 앉아 할아버지의 옆얼굴을 스케치북에 천천히 옮겨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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