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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늙고 병들면 형제자매 사이에 가장 먼저 오가는 것이 병원비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똑같이 나누자고 말하지만, 막상 돈을 내는 사람은 늘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묵묵히 낸 사람은 말을 아끼고, 내지 않은 사람은 오히려 말이 많아지기도 합니다.
임 씨는 올해 예순둘입니다. 경상도의 한 읍내 한식당 주방에서 23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새벽 여섯 시에 나가 육수를 올리고, 점심 장사가 끝나면 산더미 같은 그릇을 닦습니다. 남편은 화물차를 몰다 몇 해 전 일을 놓았고, 외아들은 도시에서 회사에 다닙니다.
임 씨 위로는 오빠가 둘 있고, 아래로는 먼 데 시집간 여동생이 하나 있습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뒤, 열여섯 살 임 씨는 학교를 그만두고 집안 부엌을 맡았습니다. 큰오빠가 도시로 대학을 갈 때 하숙비는 아버지가 정미소에서 번 돈과 임 씨가 봉제 공장에서 받은 월급으로 댔습니다. 작은오빠가 군대에 갔을 때 면회 보따리를 이고 간 것도 임 씨였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시골집 지붕이 새면 임 씨가 사람을 불렀고, 김장철이면 아버지 몫까지 배추를 절였습니다. 큰오빠는 수도권에서 작은 인테리어 사업을 했고, 작은오빠는 인근 도시 공장에서 정년까지 일했습니다. 두 오빠는 명절에 하루 들렀다 가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4년 전 봄, 아버지가 마당에서 주저앉았습니다. 병원에서는 양쪽 무릎 연골이 다 닳았다며 인공관절 수술을 권했습니다. 검사를 하다 보니 백내장도 심해 눈 수술까지 해야 했습니다. 임 씨는 그날 밤 두 오빠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오빠, 아버지 수술비가 입원비랑 간병비까지 치면 천만 원이 훌쩍 넘는대. 셋이 나눠야겠어.”
큰오빠는 한숨부터 쉬었습니다. “요새 현장이 다 끊겨서 당장은 어렵다. 일단 네가 좀 내 놔라. 나중에 정산해서 나누자.” 작은오빠도 비슷했습니다. “나도 퇴직하고 손에 쥔 게 없다. 나중에 꼭 나누자.”
임 씨는 더 묻지 않았습니다. 아들 결혼 자금으로 7년을 부은 적금을 깼습니다. 모자란 돈은 식당 사장 정 씨에게 석 달 치 월급을 미리 당겨 받아 채웠습니다. 양쪽 무릎 수술과 한 달 입원, 재활 치료와 간병비, 두 눈 백내장 수술까지 모두 1600만 원이었습니다.
수술 동의서와 입원 서류마다 보호자 칸이 있었고, 임 씨는 그 칸에 하나하나 자기 이름을 적었습니다. 퇴근하면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병원에 가서 아버지 다리를 주물렀고, 주말이면 보조침대에서 쪽잠을 잤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딸을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아버지가 퇴원해 시골집으로 돌아오자 큰오빠가 내려와 말했습니다. “아버지 연금 통장은 제가 관리해 드릴게요. 요즘 노인들 상대로 사기가 많잖아요.” 아버지는 잠자코 체크카드를 내주었습니다.
그 뒤로 4년이 흘렀습니다. 나중에 나누자던 병원비 이야기는 다시 나오지 않았습니다. 임 씨가 한 번 말을 꺼냈을 때 큰오빠는 “가족끼리 무슨 돈 얘기냐”며 웃어넘겼습니다. 그사이 아버지의 쌀과 반찬, 약값은 늘 임 씨가 챙겼습니다. 서운했지만 아버지 앞에서 싸우기 싫어 입을 닫았습니다.
올봄, 아버지가 여든여덟 미수를 맞았습니다. 잔치는 큰오빠가 읍내 한정식집 연회장을 빌려 열었습니다. 밤새 내린 비가 그친 4월 오후였고, 주차장 바닥에는 젖은 벚꽃잎이 하얗게 깔려 있었습니다. 친척과 아버지 옛 친구들까지 마흔 명 가까이 모였습니다.
아버지는 손자 결혼식 때 맞춘 남색 양복을 꺼내 입었습니다. 임 씨는 새벽부터 식당 주방을 빌려 아버지가 좋아하는 수수부꾸미와 식혜를 만들어 왔습니다. 떡 케이크에 초가 켜지자 큰오빠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렇게 건강하게 미수를 맞으신 건 다 여러분 덕분입니다. 4년 전 아버지 무릎 수술, 눈 수술할 때 제가 서울에서 오르내리며 다 챙겼습니다. 장남으로서 당연한 일이었지요.”
박수가 터졌습니다. 큰고모가 “역시 장남이 든든하다”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식혜 주전자를 든 채 연회장 구석에 서 있던 임 씨는 손끝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 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일어났습니다. “그 마이크, 나 좀 다오.”
큰오빠가 웃으며 마이크를 건넸습니다. 아버지는 양복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노란 고무줄로 묶은 종이 뭉치를 꺼냈습니다. 귀퉁이가 닳은 병원 영수증 묶음이었습니다.
“눈 수술하고 잘 보이게 되니까 제일 먼저 한 일이 이걸 다시 읽는 거였다.”
아버지는 한 장씩 넘기며 읽었습니다. “무릎 수술 동의서, 보호자 우리 큰딸. 입원 약정서, 보호자 우리 큰딸. 간병인 계약서도, 백내장 수술 동의서도 다 큰딸 이름이다. 큰아들 이름은 한 장도 없다.”
연회장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큰오빠가 “아버지, 오늘 같은 날 왜 이러세요” 하며 다가섰지만 아버지는 손을 들어 막았습니다. 그리고 영수증 아래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더 꺼냈습니다. 은행에서 뽑아 온 연금 통장 거래 내역이었습니다.
“작년 겨울 은행에 갔더니 연금 통장에 몇만 원밖에 없더라. 그래서 4년 치를 다 뽑아 달랬다.” 아버지는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습니다. “매달 5일 현금 인출 50만 원. 그다음 달 5일 50만 원. 설 앞에는 100만 원. 4년 동안 모두 2700만 원이다. 카드는 큰아들이 가져갔고, 나는 그 돈을 한 번도 찾은 적이 없다.”
큰고모가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큰오빠의 얼굴이 붉어졌다가 하얘졌습니다. “사업이 어려워서 잠깐 빌린 거예요. 갚으려고 했어요.” 아버지가 말을 잘랐습니다. “빌렸으면 갚았어야지. 니 동생은 천육백을 내고 4년째 나누자는 말만 들었다.”
작은오빠가 고개를 숙인 채 일어났습니다. “아버지,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나눠야 하는 줄 알면서 모른 척했습니다.”
임 씨는 주전자를 내려놓고 아버지 곁으로 갔습니다. “아버지, 이제 그만하세요. 저는 아버지 다시 걷는 거 보려고 한 거예요.” 그러고는 큰오빠를 바라보았습니다. “오빠, 내 돈은 안 받아도 돼. 그런데 아버지 카드는 지금 돌려드려.” 큰오빠는 떨리는 손으로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아버지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잔치가 끝난 저녁, 아버지가 딸의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니가 끝까지 아무 말 안 할 것 같아서, 4년 동안 그걸 품고 다녔다. 내 입으로 말해 줘야 니 억울한 게 풀릴 것 같았다.” 임 씨는 그제야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딸이 지켜 온 침묵을 가장 많은 사람 앞에서 대신 깨 줄 날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며칠 뒤 임 씨는 아버지를 모시고 은행에 가서 연금이 새 통장으로 들어오게 바꾸었습니다. 작은오빠는 한 달 뒤 500만 원을 보내며 “늦어서 미안하다”는 문자를 남겼습니다. 큰오빠는 다달이 조금씩 아버지 통장에 돈을 넣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에서 늙은 왕은 듣기 좋은 말을 늘어놓는 두 딸에게 나라를 나눠 주고, 말없이 진심을 지킨 막내딸을 내쫓았다가 뒤늦게 통곡합니다. 큰 소리로 한 말보다 곁을 지킨 시간이 더 정직합니다.
형제끼리 부모 병원비를 낼 때 나중에 나누자는 말은 그 자리에서 정리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영수증을 챙기고 기록을 남기는 일은 정을 깎는 일이 아니라 지키는 일입니다. 부모의 통장과 카드도 한 사람이 혼자 쥐지 않도록 형제가 함께 살펴야 합니다.
올가을 임 씨는 아버지와 함께 읍내 저수지 둑길을 걸었습니다. 둑을 따라 억새가 은빛으로 흔들렸고, 저녁 햇살이 물 위에 길게 누웠습니다. 인공관절을 넣은 아버지의 무릎은 지팡이 없이도 제법 단단했습니다. 임 씨는 아버지의 팔짱을 끼고 해가 다 질 때까지 천천히 둑길을 걸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