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2 15:19

“셋방 주인 할머니 병원비 3년 대줬는데..” 49재 뒤 그 아들이 펼친 옛 장부에 말문이 막혔다

어려울 때 받은 도움은 평생 잊히지 않습니다. 형편이 나아지면 그 은혜를 어떻게든 갚으려 애쓰게 됩니다. 그런데 은혜를 베푼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 정을 엉뚱하게 셈하려 드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충청도의 한 작은 도시에 사는 조 씨는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시장 골목 끝에서 29년째 세탁소를 하고 있습니다. 아침 일곱 시에 셔터를 올리고 스팀다리미 앞에 서면 저녁 여덟 시가 넘어야 허리를 폅니다. 아내는 가게 안쪽 재봉틀 앞에서 바짓단을 줄이고 지퍼를 갈며 남편 곁을 지켜 왔습니다. 아들은 결혼해 수도권에 살고, 딸은 근처 은행에 다닙니다.

조 씨에게는 평생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30년 전 신혼살림을 차렸던 단칸방의 주인 윤 씨 할머니입니다. 마당에 감나무가 서 있던 낡은 한옥의 문간방이었습니다. 연탄아궁이 하나에 부엌이라고 해 봐야 쪽마루가 전부였습니다. 그때 조 씨는 남의 세탁소에서 다림질을 배우던 직원이었습니다.

신혼 이듬해 봄, 조 씨가 일하던 세탁소가 문을 닫았습니다. 아내는 만삭이었고 통장은 바닥이었습니다. 월세 날 조 씨가 고개를 숙이고 “할머니, 한 달만 기다려 주십시오” 하자 할머니는 손을 내저었습니다. “새 식구 들어오는데 무슨 월세여. 애 낳고 자리 잡으면 그때 봐.”

할머니는 그 뒤로 1년 동안 월세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아들을 낳던 날에는 새벽부터 미역국을 끓여 문간방에 들여 주었습니다. 조 씨가 일자리를 구하러 다니는 동안에는 갓난아이를 업고 마당을 돌며 재웠습니다. 조 씨가 다시 일자리를 얻어 밀린 월세를 봉투에 담아 내밀자, 할머니는 그 봉투를 조 씨 주머니에 도로 찔러 넣었습니다. “이 돈으로 다리미나 좋은 거 하나 사. 나중에 자네 가게 차리면 내 옷이나 공짜로 빨아 줘.”

이듬해 조 씨는 시장 골목에 작은 세탁소를 열었습니다. 그 뒤 29년 동안 할머니의 겨울 외투와 명절 한복은 한 번도 돈을 받지 않고 빨아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그때마다 “이러면 내가 남는 장사여” 하며 웃었습니다.

3년 전 겨울, 할머니가 빙판길에 넘어져 고관절을 다쳤습니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그 뒤로 기억이 흐려지기 시작했고, 결국 요양병원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할머니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은 사람은 조 씨였습니다. 할머니가 보호자 연락처에 자식들 대신 세탁소 번호를 적어 두었던 것입니다.

조 씨는 할머니의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들은 사업이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어머니 집 팔리면 그때 정산하죠. 지금은 저도 여유가 없어요.” 딸은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조 씨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그 양반 아니었으면 우리 아들 첫돌도 못 넘겼어. 우리가 하자.” 아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병원비 본인 부담금에 간병비, 기저귀와 물티슈 값까지 합치니 매달 60만 원이 들었습니다. 조 씨는 노후를 위해 붓던 적금을 깼고, 낡은 프레스 기계를 바꾸려던 계획도 접었습니다. 아내는 동네 교복 수선 일감을 더 받아 왔습니다. 일요일마다 조 씨 부부는 기저귀 한 꾸러미를 들고 병원에 갔습니다. 할머니는 조 씨를 못 알아보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문간방 새댁 신랑 왔네” 하며 조 씨의 손을 잡았습니다.

3년 동안 할머니의 아들은 병원에 한 번도 오지 않았습니다. 간호사실 면회 명부에는 조 씨 부부의 이름만 줄지어 적혔습니다. 할머니는 올여름 장맛비가 그치던 새벽, 조 씨 아내의 손을 잡은 채 숨을 거두었습니다.

49재가 지나고 일주일쯤 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오후였습니다. 세탁소 문에 달린 종이 울리더니 할머니의 아들이 들어섰습니다. 손에는 누렇게 바랜 공책 한 권이 들려 있었습니다. 아들은 비닐을 씌운 양복들 사이를 지나 계산대 앞에 섰습니다.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다가 이걸 찾았습니다.” 아들이 계산대 위에 공책을 펼쳤습니다. 할머니가 셋방 월세를 받을 때마다 적어 두던 장부였습니다. 칸마다 날짜와 금액이 볼펜으로 적혀 있었고, 문간방 칸에는 열두 달 내리 ‘미납’이라는 글자가 이어졌습니다.

“그때 월세가 8만 원이었다면서요. 1년이면 96만 원이고, 30년이 지났으니 이자까지 쳐서 천만 원은 받아야겠습니다. 어머니가 못 받은 돈, 자식인 제가 받는 게 맞지 않습니까?”

조 씨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다리미에서 김 빠지는 소리만 가게 안을 채웠습니다. 조 씨는 돋보기를 꺼내 장부를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미납’이 끝나는 칸 아래에서 연필로 꾹꾹 눌러 쓴 할머니의 작은 글씨를 찾아냈습니다. ‘안 받기로 함. 아기 돌 선물.’

“여기 이 글씨는 보셨습니까?” 조 씨가 손가락으로 그 줄을 짚었습니다. 아들의 눈길이 잠깐 흔들렸습니다. “그거야 어머니가 정이 많아서 그런 거고, 장부는 장부죠.”

조 씨는 말없이 계산대 아래에서 과자 상자 하나를 꺼냈습니다. 뚜껑을 열자 고무줄로 묶은 영수증 다발이 빼곡했습니다. 요양병원 영수증 서른여섯 장과 기저귀 값 영수증, 일요일마다 적어 둔 면회 날짜 메모까지 모두 들어 있었습니다.

“3년 동안 어머님 병원비와 기저귀 값으로 매달 60만 원, 모두 2,160만 원을 냈습니다. 그동안 병원에 한 번이라도 오셨습니까? 면회 명부에 선생 이름은 한 줄도 없습니다.”

아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조 씨는 상자 뚜껑을 덮고 천천히 말을 이었습니다. “어머님은 제게 월세를 받지 않으셨고, 저는 그 은혜를 이 상자로 갚았습니다. 은혜는 갚았고, 빚은 없습니다. 장부는 가져가십시오. 다만 오늘부터 그 댁과 저희 집 사이에 셈할 일은 더 없습니다.”

아들은 한참을 서 있다가 장부를 덮어 겨드랑이에 끼고 나갔습니다. 문에 달린 종이 다시 울렸고, 빗소리가 가게 안으로 잠깐 밀려들었다가 끊겼습니다.

그날 저녁 조 씨는 셔터를 내린 뒤 휴대전화에서 그 아들의 번호를 지웠습니다. 아내가 서운하지 않으냐고 묻자 조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할머니하고 나 사이는 깨끗하게 끝났어. 그 아들하고는 처음부터 셈할 게 없었고.”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은 증서 한 장을 들고 끝까지 제 몫을 고집하다가 결국 그 증서의 글자 때문에 모든 것을 잃습니다. 종이에 적힌 숫자만 읽고 그 뒤에 담긴 마음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자기가 내민 셈 앞에서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은혜를 갚는 일에 영수증까지 남길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은혜를 빚으로 바꾸려는 사람 앞에서는 차분히 기록을 내밀고 선을 그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정은 끝까지 지키되, 정을 셈으로 바꾸는 사람과의 인연은 미련 없이 정리하는 것이 은인에 대한 마지막 도리입니다.

지난 일요일, 조 씨 부부는 할머니가 잠든 산자락 공원묘지에 다녀왔습니다. 비탈의 은행나무들이 노란 잎을 떨구고 있었고, 비석 앞에 놓은 국화 위로 늦은 햇살이 내려앉았습니다. 조 씨는 할머니가 쓰러지기 전 맡겨 놓고 끝내 찾아가지 못한 한복 저고리를 비석 앞에 잠시 펼쳐 두었습니다. 그러고는 저고리를 다시 곱게 접어 품에 안고 천천히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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