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3 10:23

“장남 PC방에 1억5천만원 대줬는데..” 수확 날 인부가 내민 쪽지에 말문이 막혔다

자식이 새 출발을 하겠다고 하면 부모는 가진 것을 먼저 헤아립니다. 내 몫을 덜어 자식 밑천이 된다면 그보다 보람된 쓰임은 없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 돈을 주고받는 마음이 서로 같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서 씨는 올해 예순여덟입니다. 경상도 내륙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 40년 넘게 사과 과수원을 일궜습니다. 아내와 둘이 7천 평 비탈밭을 가꾸며 남매를 키웠습니다. 장남은 수도권 신도시에 살고, 딸은 가까운 도시에서 간호사로 일합니다.

장남은 어려서부터 과수원에서 자랐습니다. 초등학생 때는 아버지 뒤를 따라다니며 적과한 열매를 바구니에 주워 담았습니다. 고3 가을에는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 학교도 빠지고 아버지와 함께 떨어진 사과를 주웠습니다. 흙 묻은 손으로 땀을 닦던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나중에 제가 이 과수원 두 배로 키워 드릴게요.”

서 씨는 그 말을 오래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아들은 결국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게 되었지만, 서 씨는 서운해하지 않았습니다. 자식은 제 길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년 전 봄, 마흔이 된 장남이 내려왔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PC방을 차리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자리도 봐 뒀어요. 학원가 앞이라 손님은 걱정 없어요. 1억5000만원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어요.”

서 씨에게는 그만한 현금이 없었습니다. 그날 밤 아내가 말렸습니다. “여보, 밭은 우리 밥줄이에요. 판 땅은 다시 못 사요.” 서 씨는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돌아와 말했습니다. “장남이 처음 손 벌리는 거요. 밭은 남은 걸로도 우리 둘 먹고살 만하오.”

서 씨는 아랫동네 최 씨에게 개울가 쪽 과수원 절반을 넘겼습니다. 30년 된 부사 나무들이 서 있던 가장 좋은 땅이었습니다. 땅값에 부부가 모아 둔 적금을 보태 1억5000만원을 만들어 아들 통장으로 보냈습니다.

처음 한 해는 아들이 자주 전화를 했습니다. 손님이 많다, 기계를 더 들였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다 둘째 해부터 전화가 뜸해졌습니다. 명절에도 “가게를 비울 수가 없다”며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아들 사진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쉬었고, 서 씨는 장사하는 사람이 원래 그렇다며 아내를 달랬습니다.

올가을, 수확을 보름 앞두고 서 씨는 사다리에서 떨어졌습니다. 발목뼈에 금이 가 깁스를 했습니다. 의사는 한 달은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남은 과수원이라도 사과는 매달려 있었고, 일손은 구할 수 없었습니다.

서 씨는 망설이다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얘야, 이번 토요일 하루만 내려와 줄 수 있겠냐. 아버지가 다리를 다쳐서 그런다.” 아들은 잠깐 말이 없다가 대답했습니다. “알았어요, 아버지. 사람 보낼게요.” 서 씨는 ‘사람’이라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습니다.

토요일 아침, 산골짜기에는 안개가 자욱했습니다. 서 씨는 새벽부터 목발을 짚고 마당에 나와 수확 상자를 쌓았습니다. 아내는 아들이 좋아하는 감자전을 부쳐 두었습니다. 일곱 시가 조금 넘어 낡은 승합차 한 대가 과수원 길로 올라왔습니다.

차에서 내린 사람은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쉰 남짓 되어 보이는 낯선 남자였습니다. 그는 모자를 벗고 꾸벅 인사했습니다.

“일당 받고 온 박 씨라고 합니다. 아드님이 이걸 꼭 전해 드리라고 하셨어요.”

박 씨가 내민 것은 흰 봉투 하나였습니다. 봉투 안에는 오만원권 몇 장과 반으로 접은 쪽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서 씨는 안개에 젖은 손으로 쪽지를 펼쳤습니다.

‘아버지, 바빠서 못 가요. 일당은 제가 냈어요. 그리고 생각해 봤는데 그때 그 돈은 상속 미리 받은 걸로 해요. 이걸로 퉁 쳐요.’

서 씨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부엌문 앞에 서 있던 아내가 쪽지를 받아 읽고는 그대로 주저앉았습니다. 식어 가는 감자전 냄새만 마당에 떠돌았습니다.

박 씨가 어색하게 사다리를 들었습니다. “어르신, 일은 제가 성심껏 하겠습니다.” 서 씨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날 박 씨는 해가 질 때까지 묵묵히 사과를 땄고, 서 씨는 목발을 짚고 서서 상자에 담긴 사과를 하나하나 바라보았습니다. 아들이 고3 때 주워 담던 그 사과였습니다.

그날 밤 서 씨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화가 나기보다 무언가가 분명해졌습니다. 아들은 그 돈을 아버지가 준 마음이 아니라 미리 받은 몫으로 셈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몫도 이제 셈대로 정리해야 했습니다.

수확을 마친 뒤 서 씨는 최 씨를 찾아갔습니다. “남은 밭도 자네가 맡아 주게. 나무들이 주인 잘 만났으면 좋겠네.” 최 씨는 몇 번이나 되물었지만 서 씨의 뜻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땅을 판 돈은 부부 명의로 나누어 예금해 두고, 매달 생활비처럼 조금씩 꺼내 쓰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딸과 함께 읍내 공증 사무소를 찾아 유언 공증을 새로 했습니다. 장남에게 건넨 1억5000만원은 생전에 미리 준 재산이라는 점을 분명히 적었습니다. 부모가 생전에 자식에게 준 재산은 나중에 상속을 나눌 때 함께 따져 보게 된다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남은 재산은 아내의 노후를 먼저 챙기고, 그다음 남매가 공평하게 나누도록 했습니다.

서 씨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네 말대로 했다. 그 돈은 네 몫으로 받은 거다. 이제 아버지 몫은 아버지가 쓰마.” 아들은 한참 말이 없다가 “네” 하고 짧게 대답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에서 늙은 왕은 딸들에게 나라를 미리 나눠 준 뒤 머물 곳조차 잃고 광야를 헤맵니다. 부모가 내어 준 것은 사랑이었지만, 받은 쪽은 그것을 그저 제 몫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돕는 일은 귀합니다. 그러나 내 노후의 밥줄까지 내어 줄 때는 한 번 더 생각해야 합니다. 큰돈을 건넬 때는 그것이 빌려주는 것인지, 미리 주는 것인지 분명히 말하고 기록으로 남겨 두세요. 그래야 부모도 자식도 서로를 덜 원망하게 됩니다.

첫서리가 내린 늦가을 아침, 서 씨는 깁스를 푼 발로 아내와 함께 마을 저수지 둑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건너편 비탈에는 이제 남의 것이 된 사과나무들이 잎을 떨구고 서 있었습니다. 부부는 둑 끝 벤치에 나란히 앉아 물안개가 걷힐 때까지 골짜기를 내려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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