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3 11:53

“치매 친정엄마 간병 도맡았는데..” 3년 뒤 기일에 오빠가 내민 서류에 주저앉아 울었다

부모가 아프기 시작하면 자식들 사이에 저울이 하나 놓입니다. 누가 더 자주 찾아왔는지, 누가 밤을 새웠는지가 하나씩 그 위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부모가 떠난 뒤 남긴 것을 나누는 날, 그 저울은 서운함 쪽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경기도 변두리 도시에 사는 최 씨는 올해 쉰아홉입니다. 시장 골목 끝에서 30년째 의자 세 개짜리 미용실을 하고 있습니다. 동네 할머니들 파마는 거의 다 최 씨 손을 거쳐 갔습니다. 시내버스를 몰다 퇴직한 남편과 단둘이 살고, 외아들은 장가를 들어 서울에 삽니다. 최 씨는 2남 1녀 가운데 막내딸입니다.

어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은 것은 11년 전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먼저 보낸 어머니는 삼 남매를 키운 낡은 단독주택에서 혼자 지냈습니다. 큰오빠는 지방 공장에 다니며 주말에나 올라왔고, 작은오빠는 사업이 기울어 제 앞가림도 버거웠습니다. 결국 어머니 곁은 걸어서 15분 거리에 사는 막내딸 몫이 되었습니다.

최 씨는 그날부터 미용실 문을 오후 두 시에 닫았습니다. 오전 손님 머리를 서둘러 말아 놓고 점심도 거른 채 어머니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머니를 씻기고 밥을 떠먹이고, 한밤중에 대문을 열고 나가려는 어머니를 붙잡느라 쪽잠을 잤습니다.

한번은 어머니가 최 씨 얼굴을 빤히 보더니 물었습니다. “아줌마는 누구요? 우리 막내 못 봤소?” 최 씨는 “막내 곧 와요” 하고 웃어 보인 뒤, 부엌에 들어가 수돗물을 세게 틀어 놓고 울었습니다.

오후 장사를 접자 단골이 하나둘 떨어져 나갔습니다. 가게 월세를 맞추느라 아들 결혼 자금으로 붓던 적금을 두 번이나 깼습니다. 큰오빠가 “간병비라도 받아라” 하며 봉투를 내밀었지만 최 씨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내 엄마 모시는데 무슨 돈을 받아요.” 그렇게 8년 동안 최 씨는 간병비를 한 푼도 받지 않았습니다.

정신이 맑은 날이 드문드문 찾아오면 어머니는 최 씨의 손등을 쓰다듬었습니다. “우리 막내 손이 왜 이렇게 텄냐. 파마약 때문이냐, 나 때문이냐.” 최 씨는 그 말 한마디면 다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3년 전 겨울, 어머니는 막내딸 품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한 달 뒤, 어머니가 정신이 맑던 시절 공증까지 받아 둔 유언장이 나왔습니다. 집은 큰오빠에게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막내 몫은 어머니가 끼던 금가락지 한 쌍뿐이었습니다.

돈이 탐나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집 부엌에서 미음을 끓이고 그 집 욕실에서 어머니를 씻긴 사람이 누구인지 어머니도 오빠도 다 알 텐데 싶었습니다. 큰오빠는 고개를 숙인 채 “엄마 뜻이다” 한마디만 했습니다. 최 씨는 그날 이후 오빠의 전화를 받지 않았고, 첫 기일도 두 번째 기일도 가지 않았습니다.

올해 10월, 3주기를 앞두고 큰올케가 미용실로 찾아왔습니다. “아가씨, 이번엔 꼭 와 줘요. 그이가 할 말이 있대요.” 최 씨는 대답 대신 가위만 만지작거렸습니다.

기일 저녁에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3년 만에 들어선 어머니 집 마당에는 감나무 잎이 젖은 채 깔려 있었습니다. 그때 골목 끝 버스 정류장 쪽에서 큰오빠가 우산을 쓰고 걸어왔습니다. 바짓단이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늘 몰고 다니던 낡은 승용차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사를 마치고 상을 물리기 전, 큰오빠가 장롱 위에서 누런 봉투 하나를 꺼내 최 씨 앞에 내밀었습니다.

“이거 받아라. 늦어서 미안하다.”

봉투 안에는 서류 두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집을 막내 앞으로 넘긴 등기권리증과, 증여세 납부 영수증이었습니다. 영수증의 납부자 이름은 큰오빠였습니다. 최 씨는 영문을 몰라 서류만 들여다보았습니다. 오빠가 낡은 휴대전화를 꺼내 녹음 파일 하나를 눌렀습니다.

“큰애야, 이 집은 막내 줘야 한다. 그런데 지금 막내한테 바로 주면 그 애는 세금 낼 돈이 없어서 집을 날린다. 나 때문에 적금도 다 깼어. 네가 먼저 받아서 상속세 내고, 몇 년 뒤에 세금까지 네가 내서 막내 앞으로 넘겨 줘라. 너한테 짐 지우고 가서 미안하다.”

어머니의 목소리였습니다. 진단을 받기 전, 정신이 또렷하던 해에 녹음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큰오빠는 상속세를 몇 해에 나눠 냈고, 마지막 해에 돈이 모자라 차를 팔았다고 했습니다. 동생이 내야 할 증여세를 대신 내 주면 그것도 증여로 보아 세금이 더 붙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퇴직금 남은 것을 털어 그것까지 냈다고 했습니다.

“엄마가 다 끝나기 전엔 절대 말하지 말라더라. 네가 알면 세금 보탠다고 또 가게 문 닫을 애라고.”

최 씨는 서류를 쥔 채 방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3년 동안 미워한 사람이 빗길에 버스를 타고 와서 동생 집 서류를 품에 넣어 온 것이었습니다. 녹음은 조금 더 이어졌습니다. “가락지는 막내 손 튼 데 끼워 주고.” 최 씨는 오빠의 젖은 소매를 붙잡고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가 남긴 것이 한쪽으로 기운 것처럼 보여도, 그 안에는 자식 형편을 하나하나 헤아린 셈법이 숨어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셈을 묵묵히 끝까지 지켜 준 형제도 있습니다.

서운함은 사실을 다 알기 전에 먼저 찾아오는 법입니다. 마음이 상해 등을 돌리고 싶을 때, 한 번만 더 물어보세요. 그 침묵이 무엇을 지키고 있었는지.

이듬해 봄, 어머니 집 마당에 앵두꽃이 하얗게 피었습니다. 최 씨는 툇마루에 큰오빠를 앉히고 목에 보자기를 둘러 머리를 다듬었습니다. 어머니 머리를 자르던 바로 그 자리였습니다. 꽃잎이 오빠의 희끗한 머리 위로 내려앉았고, 최 씨 손가락에서는 금가락지가 봄볕에 반짝였습니다.

OWN 뉴스

당신의 뉴스를 담습니다. 오늘의 건강부터 내일의 노후까지, 꼭 필요한 생활 정보를 전합니다. 하루에 엄청나게 많이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