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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아프면 자식들은 저마다 사정을 이야기합니다. 멀어서, 바빠서, 형편이 안 돼서 하나둘 빠지고 나면 결국 가까이 사는 자식 하나가 병실을 지키게 됩니다. 그런데 부모가 남긴 것을 나눌 때가 되면, 병실에 오지 않던 자식이 먼저 목소리를 높이곤 합니다.
전라도 바닷가 작은 읍내에 사는 신 씨는 올해 예순둘입니다. 읍내 외곽 김치공장에서 열여덟 해째 배추 절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새벽 다섯 시에 출근해 소금물에 손을 담그고 하루 수천 포기 배추를 뒤집습니다. 버스 기사로 일하다 은퇴한 남편과 둘이 살고, 아들과 딸은 도시로 나가 각자 가정을 꾸렸습니다.
신 씨는 삼 남매의 막내입니다. 위로 여덟 살 많은 큰오빠와 언니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선산 아래 마을에서 평생 농사를 지었습니다. 큰오빠를 서울로 대학 보내느라 논 두 마지기를 팔았고, 막내인 신 씨는 중학교를 마치자마자 읍내 공장에 나갔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막내를 유난히 아꼈습니다. 장날이면 자전거 뒤에 신 씨를 태우고 읍내까지 나가 풀빵을 사 주었습니다. 시집가던 날에는 아무도 모르게 은가락지 하나를 손에 쥐여 주며 “오빠한테는 말하지 마라” 하고 웃었습니다.
3년 전 봄, 여든다섯이던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졌습니다. 오른쪽 몸이 마비되어 읍내 요양병원에 누웠습니다. 삼 남매가 모인 자리에서 큰오빠가 먼저 말했습니다. “나는 서울이라 자주 못 온다. 막내가 가까우니 좀 맡아 다오. 돈은 형편 되는 대로 보태마.”
그 형편은 끝내 오지 않았습니다. 언니는 남편 병수발로 꼼짝을 못 했고, 큰오빠는 아들 사업이 어렵다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공장을 그만둘 수 없던 신 씨는 낮에는 간병인 양 씨를 두고, 퇴근하면 병실로 가 밤을 지켰습니다. 한 달 110만 원 남짓한 간병비는 신 씨의 월급과 공장 다니며 부어 온 적금에서 나갔습니다. 3년을 더해 보니 4천만 원이 넘었습니다.
남편은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신 씨가 보조침대에서 쪽잠을 자고 곧장 공장으로 가는 날이면, 도시락을 싸서 공장 경비실에 맡겨 두었습니다.
큰오빠가 병실에 온 것은 3년 동안 손에 꼽을 정도였습니다. 그중 한 번은 이상했습니다. 2년 전 여름, 혼자 내려온 큰오빠는 아버지와 단둘이 한참을 있다가 “서류 볼 일이 좀 있었다”며 서둘러 올라갔습니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신 씨가 떠 주는 죽을 끝내 넘기지 못했습니다.
올여름 아버지는 신 씨의 손을 잡은 채 숨을 거두었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석 달이 지난 지난달 말, 삼 남매는 유산을 정리하러 시골집에 모였습니다. 아침부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아버지가 쓰던 앉은뱅이 밥상 위에 시골집 등기 서류와 농협 통장 두 개가 놓였고, 작은아버지와 고모도 자리를 지켰습니다.
큰오빠가 헛기침을 하고 입을 열었습니다. “선산 임야는 예로부터 장손 몫이다. 조상 묘 지키는 게 내 일이니 그건 내가 맡겠다. 집하고 예금은 셋이 똑같이 나누자.” 작은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신 씨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간병비 이야기를 꺼내 봐야 돈 따지는 막내 소리만 들을 것 같았습니다.
그때 누군가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우산을 접고 들어선 사람은 간병인 양 씨였습니다. 양 씨는 비닐봉지에 싼 낡은 수첩 한 권을 두 손으로 내밀었습니다.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병실 사물함에 넣어 두시고 부탁하셨어요. 장례 끝나고 자식들 다 모이는 날, 막내 따님께 꼭 전해 달라고요. 오늘 모이신다기에 왔습니다.”
신 씨가 수첩을 펼쳤습니다. 마비되지 않은 왼손으로 쓴 글씨가 비뚤비뚤했습니다. ‘막내 오늘도 공장 마치고 옴. 손에서 고춧가루 냄새.’ ‘막내 손등이 다 텄다. 미안하다.’ 그리고 2년 전 여름 날짜가 적힌 장에서 신 씨의 손이 멈추었습니다.
‘큰애가 병원에 와서 내 인감을 가져가 임야를 팔고 2억을 이미 챙겼다. 남은 건 전부 막내 몫.’
신 씨가 그 대목을 소리 내어 읽자 방 안이 얼어붙었습니다. 작은아버지가 수첩을 받아 들고 몇 번이고 다시 읽었습니다. “형님 글씨가 맞다. 이게 무슨 소리냐.” 큰오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선산 가운데 신작로에 붙은 아랫자락은 이미 2년 전에 남의 손으로 넘어가 있었습니다. 큰오빠는 아들 사업 빚을 막느라 아버지 인감과 서류를 챙겨 가 땅을 팔았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선산을 장손 몫으로 못 박으려 한 것도 아무도 등기를 들여다보지 않게 하려던 것이었습니다. 고모가 무릎을 치며 울었습니다. “아이고, 오라버니가 그걸 혼자 알고 누워 있었구나.”
신 씨는 수첩을 덮고 한참 숨을 골랐습니다. 아버지의 수첩이 법에서 정한 유언장 형식을 갖춘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신 씨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아버지의 뜻인지는 그 자리의 누구도 모르지 않았습니다.
“오빠, 나는 간병비 돌려받을 생각 한 번도 안 했어요. 아버지가 이걸 다 알고 3년을 누워 계셨다는 게 제일 가슴 아파요. 판 땅값 2억은 오빠가 먼저 받아 간 몫으로 칠게요. 묘가 있는 윗자락은 형제들 이름으로 같이 두고, 집하고 예금은 아버지 뜻대로 하겠어요.”
큰오빠는 한참 만에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막내야, 내가 면목이 없다.” 작은아버지가 그 자리에서 정한 대로 협의서를 쓰자고 했고, 큰오빠는 말없이 도장을 찍었습니다. 신 씨는 양 씨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 낸 뒤, 우산을 씌워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에서 늙은 왕은 달콤한 말을 하던 큰딸들에게 나라를 나눠 주었다가 버림받고, 말없이 곁을 지킨 막내딸의 진심을 너무 늦게 알아봅니다. 신 씨의 아버지는 병상에서 그것을 알았고, 떨리는 손으로나마 기록을 남겼습니다.
부모를 돌보는 일은 돈으로 셈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간병비와 병원비, 부모의 재산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형제들과 투명하게 나누어 두는 것이 좋습니다. 말로 다 하지 못한 진심은 결국 기록이 지켜 줍니다.
이달 초 신 씨는 남편과 함께 선산에 올랐습니다. 아버지 묘 옆 감나무에는 주홍빛 감 몇 알이 까치밥으로 매달려 있었고, 산 아래 들판에는 벼를 거둔 자리마다 볏짚이 둥글게 말려 있었습니다. 신 씨는 은가락지 낀 손을 묘 앞에 가만히 얹고, 해가 산등성이를 넘을 때까지 앉아 있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