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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가게에서는 물건만 오가지 않습니다. 날마다 드나드는 얼굴을 기억하고 형편을 짐작해 말없이 값을 덜어 주는 인심도 함께 오갑니다. 그렇게 베푼 정은 대개 잊히지만, 가끔은 긴 세월을 돌아 주인에게 되돌아오기도 합니다.
윤 씨는 올해 예순셋입니다. 경상도 내륙의 소도시 시장 골목 어귀에서 35년째 작은 세탁소를 해 왔습니다. 아내는 가게 안쪽 재봉틀 앞에서 바짓단을 줄이고 지퍼를 갈았고, 윤 씨는 앞쪽에서 다리미를 잡았습니다. 외아들은 다른 도시에서 회사에 다니며 가정을 꾸렸습니다.
세탁소 맞은편 건물 3층에는 고시원이 있었습니다. 12년 전 봄, 그곳에 사는 스물여섯 살 청년이 구겨진 와이셔츠 한 장을 들고 왔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는 청년은 세탁비 3천 원을 동전으로 세어 내밀었습니다. 윤 씨는 동전을 도로 쥐여 주었습니다. “총각, 셔츠 한 장 다리는 데 무슨 돈을 받노. 공부나 열심히 해라.”
그 뒤로 청년은 일주일에 한 번씩 셔츠와 바지를 들고 왔고, 윤 씨는 끝내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겨울이면 아내가 무릎 나간 트레이닝 바지에 천을 덧대 기워 주었습니다. 청년이 미안해 문 앞에서 서성이면 아내는 “밥은 묵었나” 하며 가게 안쪽 밥상에 앉혔습니다.
두 번 떨어진 해 겨울, 청년이 문 닫을 무렵 찾아와 고개를 떨궜습니다. “사장님, 이제 고향에 내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윤 씨는 다리미를 내려놓았습니다. “한 번만 더 해 봐라. 니 셔츠는 붙을 때까지 내가 다려 줄 끼다.”
이듬해 여름, 청년이 필기시험에 붙었다며 뛰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기뻐하던 얼굴이 이내 어두워졌습니다. 면접에 입고 갈 양복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윤 씨는 아내와 마주 앉았습니다. “여보, 그 총각 양복 한 벌 해 주자. 면접은 첫인상 아이가.” 아내는 잠시 말이 없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가게 적금 하나 깨면 되지요. 그 아는 우리 아들 같은 아다.”
윤 씨는 청년을 데리고 시장 안 맞춤 양복점에 갔습니다. 30년 넘게 거래해 온 양복점 박 씨가 치수를 재며 말했습니다. “윤 사장 손님인데 내가 남겨 묵을라 카겠나.” 그래도 감색 양복 한 벌 값은 80만 원이었습니다. 한 달 가게 수입의 절반이 넘는 돈이었지만, 윤 씨는 면접 전날 밤 그 양복을 손수 다려 비닐을 씌워 건넸습니다.
청년은 합격했습니다. 발령지는 먼 산골 군청이었습니다. 떠나던 날 청년은 세탁소 앞에서 큰절을 했습니다. “사장님, 이 은혜 꼭 갚겠습니다.” 윤 씨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갚기는 뭘 갚노. 가서 나랏일이나 잘해라.”
처음 몇 해는 명절마다 전화가 왔습니다. 그러다 연락이 뜸해졌고, 어느 해부터는 번호마저 바뀌었습니다. 아내는 가끔 “그 총각 잘 사나 모르겠네” 하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윤 씨도 서운했지만, 소식 없는 것이 잘 지내는 것이라 믿기로 했습니다.
그사이 동네에 재개발이 확정되었습니다. 고시원 건물과 낡은 상가가 차례로 비었고, 세탁소도 올가을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윤 씨의 손목은 오랜 다림질로 시큰거렸고, 아내는 바늘귀를 꿰기 힘들어졌습니다. 때가 됐다 싶으면서도 35년 손때 묻은 가게를 비우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폐업하던 날은 아침부터 가랑비가 내렸습니다.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옷들을 정리하고 다리미대를 접던 참에, 택배 기사가 상자 하나를 내려놓고 갔습니다. 보낸 사람 칸에 낯익은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상자 안에는 감색 양복 한 벌이 곱게 개켜져 있었습니다. 소매 끝은 닳아 반들거렸고 무릎은 얇아져 있었습니다. 9년 전 윤 씨가 다려 건넨 바로 그 양복이었습니다. 아내가 양복을 들어 올리자 안주머니에서 접힌 종이 두 장이 나왔습니다.
한 장은 임용장 사본이었습니다. 9년 전 날짜와 청년의 이름이 또렷했습니다. 다른 한 장은 손으로 쓴 쪽지였습니다. 아내가 돋보기를 쓰고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사장님, 사모님. 면접도, 첫 출근도 이 옷으로 했습니다. 상견례 날에도 이 옷을 입었습니다. 새 양복을 몇 벌 사도 이 옷만은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연락을 못 드린 건 부끄러워서였습니다. 번듯하게 갚을 수 있을 때 찾아뵙고 싶었는데, 그 마음이 9년이 됐습니다. 가게 문 닫는다는 소식을 고시원 사장님께 들었습니다. 마지막 다림질은 사장님 손으로 받고 싶어요.”
윤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아내가 유리문 밖을 가리켰습니다. 빗속에 우산을 쓴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서른 후반이 된 그 청년이었습니다. 곁에는 아내와 대여섯 살쯤 된 사내아이가 함께 있었습니다.
청년이 문을 열고 들어와 고개를 숙였습니다. “사장님, 너무 늦었습니다. 이 아이한테 꼭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아빠 양복 다려 주신 분이라고요.” 윤 씨는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늦기는 뭐가 늦노. 이래 와 줬으면 됐다.”
윤 씨는 접어 두었던 다리미대를 다시 폈습니다. 김이 오르기를 기다려 닳은 소매와 얇아진 무릎을 천천히 다렸습니다. 아내는 옆에서 떨어진 단추 하나를 새로 달았습니다. 다림질을 마친 양복을 청년이 걸치자 품은 조금 끼었지만 어깨선은 9년 전 그대로였습니다. 사내아이가 손뼉을 쳤고, 윤 씨는 다리미대를 붙든 채 펑펑 울었습니다. 35년 세탁소의 마지막 손님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다섯 사람은 시장 골목 칼국숫집에 둘러앉았습니다. 청년은 윤 씨 그릇에 김치를 얹으며 말했습니다. “이제 명절마다 이 녀석 데리고 오겠습니다.” 아내가 사내아이 입가를 닦아 주며 웃었습니다.
베푼 정은 장부에 적히지 않지만, 받은 사람의 마음에는 오래 남습니다. 연락이 끊겼다고 마음까지 끊긴 것은 아닙니다. 부끄러움과 고마움이 뒤섞여 차마 문을 두드리지 못한 채, 자기 자리에서 그 정에 걸맞게 살아가려 애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 돌아오지 않는 소식에 너무 서운해하지 마세요. 내가 건넨 작은 인심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입고 다니는 옷이 되기도 합니다.
초겨울 어느 날, 윤 씨 부부는 강둑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마른 갈대 사이로 찬바람이 지나갔고, 멀리 철거를 기다리는 시장 골목 지붕들 위로 저녁 해가 낮게 걸려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해가 질 때까지 그 골목을 바라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