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3 15:10

“사위네 생활비 150만원 보냈는데..” 1년 뒤 병실 찾은 사위가 내민 서류에 귀를 의심했다

자식이 어려울 때 부모가 보내는 돈에는 이자도 기한도 없습니다. 딸 내외가 다시 일어서기만 한다면 몇 년이든 기꺼이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받는 쪽이 그 마음을 셈으로만 읽기 시작하면, 보내는 손이 부끄러워지는 날이 옵니다.

충청도의 한 작은 도시에 사는 황 씨는 올해 예순다섯입니다. 재래시장 골목 안쪽에서 32년째 떡집을 하고 있습니다. 새벽 세 시에 쌀을 불리고 시루에 김을 올리는 일을 남편과 함께 해 왔습니다. 9년 전 남편을 먼저 보낸 뒤로는 20년 동안 함께 일한 직원 오 씨와 둘이서 가게를 꾸려 왔습니다. 가족은 수도권에 사는 외동딸 내외와 초등학생 손녀 둘이 전부입니다.

사위는 처음 인사 오던 날부터 싹싹했습니다. 떡집에 들르면 앞치마를 두르고 가래떡을 썰었고, 명절이면 손녀들과 송편을 빚었습니다. 남편 장례 때는 사흘 내내 빈소를 지키며 조문객을 맞았습니다. 황 씨는 그때 아들 없는 집에 아들이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2년 전 봄, 사위가 다니던 자동차 부품 회사가 구조조정을 하면서 사위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며칠 뒤 사위가 직접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장모님, 면목이 없습니다. 아파트 대출 이자가 매달 나가는데 실업급여로는 감당이 안 됩니다. 자리 잡을 때까지만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황 씨는 그날 밤 셔터를 내리고 장부를 펼쳤습니다. 명절 대목과 돌잔치 답례떡으로 모아 둔 적금이 있었습니다. 다음 날 황 씨가 말했습니다. “매달 150만 원씩 보내 주마. 손녀들 기죽이지 말고 일자리 찾는 것만 생각하게.” 사위는 대출 이자가 빠져나가는 통장이라며 자기 계좌 번호를 불러 주었습니다.

그렇게 매달 5일이면 150만 원이 사위 통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쌀값이 오른 해에도 황 씨는 한 번도 날짜를 거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딸네가 일 년 넘게 명절에 내려오지 않았고, 돈을 보낸 뒤에 오던 고맙다는 문자도 언젠가부터 끊겼습니다. 사위는 면접 준비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사이 무릎이 탈이 났습니다. 수십 년 동안 쌀자루를 들고 떡판에 체중을 실어 온 탓에 연골이 거의 닳아 있었습니다. 의사는 인공관절 수술을 권했고, 황 씨는 올가을로 날짜를 잡아 딸에게 알렸습니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입원 나흘째 되던 날 창밖으로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황 씨가 압박 붕대를 감은 다리를 뻗고 누워 있는데, 오후 한 시쯤 사위가 셀로판지로 싼 과일 바구니를 들고 들어섰습니다.

“장모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집사람은 애들 때문에 못 오고 저만 잠깐 왔습니다.” 사위는 탁자에 바구니를 내려놓았습니다. 다리는 좀 어떠냐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위는 바구니를 들어 올려 그 밑에 깔아 둔 서류 봉투를 꺼냈습니다.

“어머님, 이제 일 못 하시니 저희한테 넘기시죠. 새벽에 떡 찌는 건 무리시잖아요. 여기 도장만 찍어 주시면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봉투에서 나온 것은 떡집 영업 양도 계약서였습니다. 양수인 칸에는 사위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양도 대금 칸은 비어 있었습니다. 맨 아래 작성일은 딸에게 수술 날짜를 알린 바로 다음 날이었습니다. 황 씨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때 사위의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사위는 몸을 돌려 낮게 받았습니다. “네, 과장님. 점심시간이라 잠깐 나왔습니다. 30분 안에 들어가겠습니다.” 전화를 끊는 사위의 점퍼 안쪽으로 사원증 끈이 비죽 드러나 있었습니다.

“자네, 언제부터 출근했나.” 사위는 머뭇거리다 고개를 숙였습니다. “작년 이맘때부터요. 대출도 있고 해서….” 사위는 일 년 동안 월급을 받으면서도 장모의 돈을 꼬박꼬박 받아 왔습니다. 딸에게는 장모님께 그만 보내시라 말씀드렸다고 해 두었다고 했습니다.

황 씨는 계약서를 반으로 접어 사위 손에 쥐여 주었습니다. “이 가게는 내 남편이랑 내가 새벽마다 쌀 불려 일군 가게네. 자네한테 넘길 일은 없네. 생활비는 오늘로 끝일세. 자네가 월급 받으면서 가져간 1,800만 원은 내 딸한테 직접 털어놓게.” 사위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30분도 되지 않아 병실을 나갔습니다. 황 씨는 그 자리에서 휴대전화로 자동이체를 해지했습니다. 2년 동안 보낸 돈은 모두 3,600만 원이었습니다.

그날 밤 딸이 울면서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엄마, 나는 정말 몰랐어. 그 돈 내가 갚을게.” 황 씨는 딸을 달랬습니다. “너는 울지 마라. 그 일은 너희 부부가 정리하고, 손녀들 앞에서는 싸우지 마라.”

퇴원하던 날 오 씨가 병원 앞까지 차를 몰고 왔습니다. 황 씨는 조수석에 앉아 말했습니다. “오 씨, 우리 가게 자네가 맡아 주게. 스무 해 동안 나보다 먼저 나와 불 켠 사람이 자네야. 권리금은 안 받을 테니 간판만 지켜 주게.” 오 씨는 운전대를 잡은 채 한참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한 달 뒤 두 사람은 정식으로 양도 계약서를 쓰고, 오 씨 이름으로 사업자 등록을 새로 냈습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 늙은 왕은 달콤한 말을 하는 딸들에게 나라를 나누어 주었다가 결국 거리로 내쫓깁니다. 말이 아니라 세월이 보여 준 마음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왕은 너무 늦게 깨닫습니다.

어려운 자식을 돕는 일은 부모의 도리입니다. 그러나 도움에는 끝나는 날을 함께 정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받는 쪽도 고마움을 잊지 않고, 주는 쪽도 노후를 지킬 수 있습니다. 평생 일군 것을 누구에게 맡길지는 핏줄보다 그 곁을 지켜 온 손을 보고 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첫눈이 내린 초겨울 아침, 황 씨는 지팡이를 짚고 시장 골목에 들어섰습니다. 낡은 간판 아래 시루에서 하얀 김이 피어오르고, 오 씨가 갓 찐 백설기 한 조각을 건넸습니다. 황 씨는 떡을 천천히 씹으며 눈 쌓인 골목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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