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3 15:02

“장모님 옆집 기름값 100만원 줬는데..” 8년 뒤 할아버지가 내민 통장에 펑펑 울었다

처가를 챙기는 사위의 마음은 대개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아내가 미안해할까 봐, 처가 식구들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말없이 손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숨겨 둔 마음은 뜻밖의 자리에서, 뜻밖의 사람 손을 거쳐 세상에 나오기도 합니다.

강 씨는 올해 쉰일곱입니다. 경상도 내륙의 한 소도시 시장 골목에서 26년째 철물점을 하고 있습니다. 못과 경첩부터 보일러 부품까지 없는 게 없는 가게라, 겨울이면 수도가 얼었다는 전화가 하루에도 몇 통씩 걸려 옵니다. 가족으로는 두 살 아래 아내와 직장에 다니는 아들, 올해 고3인 막내딸이 있습니다.

장모님은 차로 한 시간 반 떨어진 산골 마을에서 혼자 사셨습니다. 장인어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내 집 두고 어디를 가노” 하시며 자식들 집으로 오지 않으셨습니다. 처남은 수도권에서 회사를 다녔고, 아내는 가게 일을 거드느라 한 달에 한 번 내려가기도 빠듯했습니다.

그 빈자리를 채운 사람이 옆집 윤 씨 할아버지였습니다. 장모님보다 네 살 위인 윤 씨는 일찍 아내를 여의고 혼자 지냈습니다. 눈이 오면 새벽같이 장모님 마당부터 쓸었고, 닷새마다 서는 읍내 장에 1톤 트럭으로 장모님을 태우고 다녔습니다.

8년 전 겨울, 장모님이 독감으로 밤새 열에 시달린 적이 있습니다. 윤 씨는 새벽에 장모님을 트럭에 태워 읍내 의원으로 갔고, 수액을 맞는 내내 곁을 지켰습니다. 연락을 받고 달려간 강 씨는 복도 의자에서 졸고 있는 윤 씨를 보았습니다. 윤 씨는 눈을 비비며 말했습니다. “자네 장모님 열 내렸다. 걱정 마래이.”

그날 저녁 강 씨는 인사를 하러 윤 씨 집에 들렀습니다. 방에 들어서자 입김이 하얗게 나왔습니다. 철물점 하는 사람의 버릇대로 뒤꼍 기름통부터 들여다보니 바닥이 보였습니다. “어르신, 기름이 다 됐는데예.” 윤 씨는 웃었습니다. “혼자 사는 늙은이가 뭐 하러 뜨시게 사노. 전기장판이면 된다.”

돌아오는 길에 강 씨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장모님 집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는데, 그 집을 챙기는 사람은 냉골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마침 가게 금고 한쪽에는 그해 겨울 동파 수리 출장비를 따로 모아 둔 봉투가 있었습니다. 딱 100만 원이었습니다.

일주일 뒤 강 씨는 다시 내려가 윤 씨 손에 봉투를 쥐여 드렸습니다. 윤 씨는 펄쩍 뛰었습니다. “이웃끼리 무슨 돈이고. 도로 넣어라.” 강 씨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장모님 봐 달라고 드리는 돈 아닙니다. 어르신 방이 따뜻해야 제가 잠을 자겠습니다. 장모님한테도, 집사람한테도 말씀 마십시오.” 윤 씨는 한참 강 씨를 바라보다가 봉투를 받았습니다.

강 씨가 입을 닫은 데에는 까닭이 있었습니다. 장모님은 남에게 신세 지는 걸 가장 싫어하는 분이라, 알면 윤 씨의 도움부터 마다하실 게 뻔했습니다. 아내는 친정 일에 남편 돈이 들어가면 두고두고 미안해할 사람이었습니다. 강 씨는 처가 식구 누구에게도 이 일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해마다 11월 첫 주가 되면 윤 씨 통장에 100만 원이 들어갔습니다. 강 씨는 겨울마다 출장비를 따로 떼어 그 돈을 맞췄습니다. 윤 씨는 받을 때마다 짧게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받았네. 올겨울도 고맙네.”

세월은 두 노인에게 공평하게 흘렀습니다. 장모님은 기력이 눈에 띄게 줄었고, 윤 씨도 무릎 수술을 받은 뒤 지팡이를 짚게 되었습니다. 트럭은 팔았지만, 장모님이 읍내 병원에 가는 날이면 윤 씨는 택시를 불러 꼭 함께 갔습니다.

다만 강 씨에게는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있었습니다. 처가에 갈 때마다 들러 보면 윤 씨 방은 여전히 썰렁했습니다. “어르신, 보일러 좀 넉넉히 돌리시지예.” 윤 씨는 손을 내저었습니다. “늙으면 더운 게 답답하다.” 강 씨는 서운함 반, 걱정 반으로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올해 늦가을, 장모님이 주무시다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침에 인기척이 없다며 처음 문을 열어 본 사람도 윤 씨였습니다.

장례식장은 읍내에 있었습니다. 둘째 날 저녁에는 진눈깨비가 내려 조문객 발길이 뜸했습니다. 그때 윤 씨가 지팡이를 짚고 들어왔습니다. 품이 큰 검은 양복은 어깨가 젖어 있었습니다. 윤 씨는 무릎을 굽히지 못해 절 대신 영정 앞에서 오래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러고는 상주 자리의 아내 손을 잡았습니다. “내가 마지막을 못 지켰다. 미안타.”

윤 씨는 품에서 비닐봉지 하나를 꺼내 강 씨에게 내밀었습니다. 안에는 모서리가 닳은 통장과 반으로 접은 쪽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사위 양반, 이거 받게.” 통장 표지에는 삐뚤삐뚤한 매직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사위 양반 기름값.’

옆에서 들여다본 아내가 물었습니다. “여보, 이게 무슨 말이에요? 기름값이라니요.” 강 씨가 대답을 못 하자 윤 씨가 대신 입을 열었습니다. “자네 신랑이 8년을 겨울마다 내한테 기름값 백만 원씩 보냈다. 자네 어매 봐 달라는 말은 끝까지 안 하더라. 자기 마음 편하자고 주는 거라 카면서.”

통장을 펼치자 해마다 11월에 찍힌 100만 원이 여덟 줄 나란히 있었습니다. 빠져나간 기록은 한 줄도 없었습니다. 윤 씨가 말했습니다. “그 돈 한 푼도 못 썼다. 자네 장모님 챙긴 기 돈 받고 한 일이 되믄, 내가 우째 그 사람 얼굴을 보겠노. 장모님도 끝까지 몰랐다.”

쪽지에는 떨리는 연필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자네 장모님 아끼는 마음 받은 걸로 충분하네. 손녀 대학 갈 때 보태게.’ 수능을 보름 앞둔 막내딸이 아빠 뒤에서 그 쪽지를 읽고 입을 막았습니다.

아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엄마가 전화할 때마다 윤 씨 어르신 아니면 겨울 못 난다 했는데, 그 뒤에 당신이 있었어요?” 강 씨가 겨우 말했습니다. “말하면 당신이 미안해할까 봐.” 아내는 남편의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한참을 울었고, 처남은 윤 씨 앞에 말없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강 씨는 통장을 돌려드리려 했습니다. “어르신 겨울 나시라고 드린 겁니다.” 윤 씨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내 겨울은 옆집 굴뚝에 연기 올라오는 거 보는 걸로 따뜻했다.”

장례를 마친 뒤 강 씨 부부는 그 돈을 막내딸 이름의 통장으로 옮겼습니다. 대신 올해 11월 첫 주에는 읍내 주유소에 전화를 걸어 윤 씨 집 기름통을 가득 채워 달라고 했습니다. 윤 씨에게서 투덜대는 전화가 왔습니다. “이 사람아, 기름은 도로 빼 가지도 못한다 아이가.” 강 씨는 웃었습니다. “그러니 꼭 때시라고 넣은 겁니다.” 아내는 이제 한 달에 한 번 반찬을 싸 들고 윤 씨를 찾아갑니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 부모 곁을 지켜 주는 이웃이 있다면, 그 고마움은 늦기 전에 표현하는 게 좋습니다. 돈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안부 전화 한 통, 반찬 한 그릇이 그 사람의 겨울을 데워 줍니다.

다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까지 오래 숨길 일은 아닙니다. 좋은 마음은 함께 나눌수록 더 깊어집니다.

첫눈이 내린 12월 초, 강 씨 부부는 산골 마을을 찾았습니다. 주인 없는 장모님 집 마당과 윤 씨 집 마당의 눈을 둘이서 나란히 쓸었습니다. 윤 씨 집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곧게 피어올랐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팔짱을 끼고, 그 연기가 저녁 하늘로 사라질 때까지 마당에 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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