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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를 놓고 사는 사람에게 좋은 세입자는 큰 복입니다. 월세 날짜를 지키고 집을 아껴 쓰는 사람을 만나면 몇만 원 덜 받더라도 오래 함께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인심이 길어질수록 그것을 고마움이 아니라 권리로 여기는 사람도 생깁니다.
충청도 강변 도시에 사는 황 씨는 올해 일흔입니다. 시장 골목에서 30년 동안 떡집을 하다 다섯 해 전에 가게를 접었습니다. 남편은 열두 해 전 세상을 떠났고, 외아들은 서울에서 가정을 꾸려 살고 있습니다. 황 씨는 남편과 함께 지은 2층짜리 다가구 주택의 1층에서 혼자 지냅니다.
2층에 그 부부가 이사 온 것은 열 해 전 봄이었습니다. 남편은 택배 일을 했고, 아내는 마트 계산대에서 일했습니다. 아이는 셋이었는데, 막내는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기였습니다.
황 씨는 그 아이들이 예뻤습니다. 막내 돌날에는 새벽같이 가게에 나가 백설기와 수수팥떡을 쪄서 2층 계단에 올려 두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마당에 가방을 던져 놓고 “할머니, 떡 있어요?” 하며 부엌 창문을 두드렸습니다.
이사 온 첫겨울에는 한파에 2층 보일러 배관이 터졌습니다. 수리비가 80만 원 넘게 나왔지만 황 씨는 부부에게 한 푼도 받지 않았습니다. “집이 낡아서 그런 걸 어떻게 너희한테 내라고 하니.” 아내는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2년 계약이 끝나 갈 무렵 동네 시세는 이미 55만 원까지 올라 있었습니다. 황 씨가 재계약 이야기를 하러 2층에 올라갔을 때, 아내가 먼저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할머니, 염치없지만 애 셋 키우기가 너무 힘들어요. 월세만 그대로 두시면 저희 정말 열심히 살게요.”
황 씨는 아이들 신발이 어지럽게 놓인 현관을 잠시 내려다보았습니다. “올리긴 뭘 올려. 애들 밥이나 잘 해 먹여라.”
그날 이후 황 씨는 한 번도 월세를 올리지 않았습니다. 떡집을 접은 뒤로는 연금과 2층 월세 40만 원이 살림의 전부였지만, 그 돈을 쪼개 쓰며 버텼습니다. 아들이 “어머니, 요즘 그 동네는 70만 원은 받아요” 해도 “애 셋 키우는 집이다” 하며 말을 막았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이들 얼굴을 보기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4년 전쯤부터는 2층에 낯선 젊은이들이 드나들었습니다. 황 씨가 물으니 아내는 “시골 조카들이 근처 대학에 다녀서 잠깐 데리고 있어요” 하고 웃었습니다. 월세는 매달 25일이면 어김없이 들어왔고, 아내는 명절마다 귤 한 상자를 들고 1층 문을 두드렸습니다. 황 씨는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사이 황 씨의 무릎은 하루가 다르게 나빠졌습니다. 2층으로 오르는 바깥 계단은 쳐다보기도 힘들어졌고, 올여름 병원에서는 양쪽 무릎 모두 인공관절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수술비와 재활 비용, 수술 뒤 계단 없는 작은 집으로 옮길 돈까지 생각하니 방법은 하나뿐이었습니다. 황 씨는 남편과 지은 집을 내놓기로 했습니다.
집을 사겠다는 사람은 금세 나타났습니다. 시월 말, 은행잎이 골목을 노랗게 덮은 날이었습니다. 며칠 전 황 씨가 집을 보러 간다고 전화하자, 아내는 한참 말이 없다가 “그날은 제가 일을 가서요. 다음 달에 보시면 안 될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매수자가 그날밖에 시간이 없다고 하자, 아내는 마지못해 “초인종 누르시면 애들이 열어 줄 거예요” 했습니다.
그날 오후, 동네 부동산의 중개사 오 씨와 쉰 줄의 매수자가 마당에 들어섰습니다. 황 씨는 지팡이를 짚고 한 칸씩 쉬어 가며 계단을 올랐습니다. 2층에 올라가 보는 것은 3년 만이었습니다.
현관 옆 우편함에는 처음 보는 이름이 적힌 고지서와 택배 상자가 쌓여 있었습니다. 초인종을 누르자 안에서 슬리퍼 끄는 소리가 났습니다. 문을 연 사람은 트레이닝복 차림의 처음 보는 대학생이었습니다. 그 뒤로 두 명이 더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누구세요?”
“이 집 주인이에요. 집 보러 온다는 얘기 들었지요?”
대학생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집주인이요? 집주인은 그 아주머니 아니세요?”
황 씨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자 더 기가 막혔습니다. 거실이던 자리에 얇은 가벽이 세워져 방이 하나 더 생겼고, 방문마다 번호와 자물쇠가 달려 있었습니다. 아이들 키를 재던 문틀 자국은 흰 시트지로 덮여 있었습니다.
중개사 오 씨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학생들, 여기 월세는 어떻게 내요?”
“셋이서 나눠 내요. 보증금도 한 사람당 300만 원씩 냈고요. 저희는 월세 85만원 꼬박꼬박 냈는데요? 무슨 문제 있어요?”
한 학생이 휴대폰으로 계약서 사진을 보여 주었습니다. 임대인 칸에는 2층 아내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부부는 4년 전 신도시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도 황 씨와의 계약은 그대로 둔 채, 방을 쪼개 대학생들에게 다시 세를 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황 씨에게 40만 원을 내고 학생들에게 85만 원을 받아 다달이 45만 원씩 챙겨 온 셈이었습니다. 4년이면 2천만 원이 넘는 돈이었습니다.
황 씨가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자 부부는 40분 만에 차를 몰고 나타났습니다. 매수자와 중개사, 대학생 셋이 지켜보는 거실에서 남편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할머니, 너무 그렇게 보지 마세요. 어차피 싸게 준 집 아니에요? 비워 두느니 저희가 관리해 드린 거죠. 월세 한 번이라도 밀린 적 있어요?”
아내도 거들었습니다. “저희가 10년을 살았는데 이 정도는 이해해 주셔야죠.”
중개사 오 씨가 굳은 얼굴로 말했습니다. “집주인 동의 없이 남에게 다시 세를 놓으면 계약을 해지당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학생들 보증금도 걸려 있고요.” 매수자는 가벽을 한 번 두드려 보더니 말없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황 씨는 지팡이를 고쳐 쥐었습니다. 10년 전 눈물을 글썽이던 그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애 셋 키우기 힘들다길래 월세를 안 올렸다. 그 돈은 너희 애들 몫이었지, 이런 장사 밑천이 아니었어.”
황 씨는 그 자리에서 정리할 것을 정리했습니다. 4년 동안 챙긴 돈은 따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대신 이달 말로 계약을 끝내고, 학생들 보증금 900만 원은 부부가 빠짐없이 돌려주라고 했습니다. 주말에 내려온 아들과 함께 법률 상담을 받고, 계약 해지 통지도 서면으로 보냈습니다.
대학생들에게는 따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학생들 잘못은 없어요. 집이 팔릴 때까지 나랑 새로 계약하고, 시세대로만 내요.” 학생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습니다. 열흘 뒤 다시 온 매수자는 학생들이 원하면 계약을 이어 가겠다는 조건으로 매매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남에게 베푼 인심은 그 사람의 형편을 보고 건넨 것입니다. 형편이 나아졌는데도 그 인심을 놓지 않고 제 이익으로 굴리는 사람이라면, 그동안의 고마움도 거기까지입니다.
정을 주되 눈까지 감지는 마세요. 내 집과 내 돈이 걸린 일이라면 가끔은 직접 계단을 올라 문을 두드려 보는 것이 서로를 지키는 길입니다.
올겨울 첫눈이 내리던 날, 황 씨는 수술을 마치고 아들 집 근처 병원에서 재활을 시작했습니다. 창밖으로 하얗게 덮인 공원 산책로가 내려다보였습니다. 황 씨는 보행 보조기를 붙잡고 복도 끝 창가까지 한 걸음씩 걸어가, 눈 쌓인 나뭇가지를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