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4 14:40

“자식 넷 집에 김장김치 보냈는데..” 석 달 뒤 손주가 한 한마디에 귀를 의심했다

어머니의 김치에는 한 해 농사와 한 사람의 겨울이 통째로 담겨 있습니다. 배추를 키우고 절이고 버무리는 일은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자식이 “잘 먹었어요” 한마디만 해 주면, 어머니는 허리 아픈 것도 잊고 이듬해 또 배추 모종을 심습니다.

충청도 작은 산골 마을에 사는 강 씨는 올해 예순일곱입니다. 스무 살에 시집와 47년째 고추와 배추, 콩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남편은 7년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큰딸과 큰아들, 둘째 딸, 막내아들은 모두 서울과 경기도에서 가정을 꾸렸고, 강 씨는 마을 끝 슬레이트 지붕 집에서 혼자 지냅니다.

자식들은 강 씨의 김치를 먹고 자랐습니다. 큰아들이 서울에서 자취하던 대학 시절, 강 씨는 한 달에 한 번 김치통을 보자기에 싸 들고 첫차를 탔습니다. 아들은 “엄마 김치 하나면 라면도 진수성찬이야” 하며 웃었습니다. 막내아들이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왔을 때도 제일 먼저 찾은 것은 항아리에서 갓 꺼낸 묵은지였습니다.

김장을 자식 넷 몫으로 하기 시작한 것은 15년 전, 큰아들이 장가를 든 해였습니다. 상견례 자리에서 며느리가 수줍게 말했습니다. “어머님, 저는 김치를 담글 줄 몰라요.” 강 씨는 며느리 손을 잡았습니다. “걱정 마라. 엄마가 해마다 보내 주마.” 그해부터 배추 200포기가 강 씨의 겨울 일이 되었습니다.

김장은 늦여름 모종을 심는 일부터 시작이었습니다. 가을 내내 배추벌레를 잡고, 볕에 말린 고추를 방앗간에서 빻고, 장날마다 젓갈을 조금씩 사 모았습니다. 고추 판 돈의 절반이 양념값과 택배비로 나갔습니다. 김장 날에는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절인 배추를 뒤집었고, 꼬박 사흘을 마당 비닐 위에 쪼그려 앉아 속을 넣었습니다.

강 씨는 김치통마다 종이테이프를 붙이고 매직으로 ‘엄마 김치’라고 또박또박 썼습니다. 아이스박스 네 개를 옆집 박 씨의 트럭에 싣고 읍내 택배 영업소에 맡기고 나면, 그제야 한 해 농사를 다 지은 것 같았습니다.

해가 갈수록 몸이 먼저 알았습니다. 무릎이 시큰거려 쪼그려 앉기가 힘들었고, 김장이 끝나면 일주일은 파스를 붙이고 누워 지냈습니다. 박 씨가 혀를 찼습니다. “형님, 요새 김치는 마트에서도 팔아요. 이제 그만 해요.” 강 씨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애들이 엄마 김치 아니면 못 먹는다는데 어떡해.”

언제부턴가 자식들의 전화는 짧아졌습니다. “엄마, 김치 잘 받았어요. 잘 먹을게요.” 간이 맞는지 물어도 대답은 늘 “맛있어요”뿐이었습니다. 강 씨는 다들 사느라 바쁜가 보다 하고 넘겼습니다.

지난겨울 김장을 보내고 석 달이 지난 올해 2월 말이었습니다. 손자가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간다는 소식에 강 씨는 냉이와 시래기, 된장 한 통을 챙겨 시외버스에 올랐습니다. 두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큰아들네 아파트에는 겨울 끝자락의 찬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저녁을 먹은 뒤 손자가 재활용 봉투를 들고 일어섰습니다. “할머니, 나랑 분리수거하러 가요.” 강 씨는 손자 손을 잡고 아파트 뒤편으로 내려갔습니다.

형광등 불빛이 어둑한 분리수거장, 플라스틱 자루 옆에 낯익은 통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붉은 뚜껑에 누렇게 바랜 종이테이프, 그 위에 강 씨가 꾹꾹 눌러 쓴 ‘엄마 김치’ 네 글자였습니다. 뚜껑은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었고, 통 옆구리는 가스가 차 불룩하게 부풀어 있었습니다.

강 씨가 그 자리에 굳어 서 있는데, 손자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습니다. “엄마가 할머니 김치는 냄새 난다고 맨날 버려요. 아빠도 알아요.”

강 씨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손자 앞이라 울지도 못하고, 지난 11월 무릎을 주무르며 붙였던 테이프만 한참 내려다보았습니다.

집으로 올라온 강 씨는 소파에 앉은 아들 앞에 섰습니다. “얘야, 밑에 있는 김치통 세 개, 내가 보낸 거 맞지?” 아들의 얼굴이 하얘졌습니다. 부엌에서 며느리가 행주를 쥔 채 나왔습니다. “어머님, 죄송해요. 냄새가 집에 밸까 봐 받는 대로 버렸어요. 올해는 경황이 없어 베란다에 뒀다가 오늘에야 내놨고요.”

아들은 고개를 숙였습니다. “엄마가 고생해서 보내시는데, 안 먹는다고 하면 서운해하실까 봐 해마다 잘 먹었다고만 했어요.”

이튿날 시골로 내려온 강 씨는 다른 자식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번에는 돌려 묻지 않았습니다. 큰딸은 둘이 다 못 먹어 아래층에 나눠 줬다고 했고, 둘째 딸은 김치냉장고 맨 아래 칸에 3년 치가 그대로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막내아들은 회사 동료들에게 한 통씩 들려 보냈다고 했습니다. 15년 동안 넷 중 누구도 엄마 김치를 기다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강 씨를 아프게 한 것은 버려진 김치보다 해마다 들었던 “잘 먹었어요”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자식들에게 정말 필요하냐고 한 번도 묻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올가을 강 씨는 여느 해처럼 배추를 심었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이장을 먼저 찾아갔습니다. “올해 김장은 경로당이랑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 몫으로 하려고요.” 마을에는 몸이 불편해 김장을 못 하는 홀몸 어르신이 여섯 분 있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부녀회와 박 씨가 팔을 걷고 나섰습니다.

김장을 앞둔 11월 초, 강 씨는 가족 대화방에 문자 한 줄을 보냈습니다. [올해부터 김치는 없다. 엄마.] 큰아들이 곧장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엄마, 화나셔서 그러시는 거죠?” 강 씨는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화난 거 아니다. 먹을 사람한테 주려는 거다. 엄마 허리는 이제 엄마가 아껴야지.”

경로당 마당에 동네 여자들 열 명이 모이자, 혼자 사흘 걸리던 일이 하루 만에 끝났습니다. 김치통을 받아 든 아흔의 할머니가 강 씨 손을 붙잡았습니다. “아이고, 올겨울 김치 걱정 덜었네. 고마워서 어쩌나.” 강 씨는 그 말에 처음으로 김장한 보람을 느꼈습니다.

셸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나무는 사과와 가지, 줄기까지 소년에게 내어 주고 밑동만 남습니다. 주는 사람이 기쁘다고 해서 받는 사람이 그 마음을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성은 받는 사람이 원할 때 비로소 빛이 납니다. 보내기 전에 한 번쯤 물어보세요. 그리고 내 손길을 진심으로 기다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둘러보세요. 고맙다는 말이 진짜인 곳에 마음을 쏟을 때, 주는 사람도 다치지 않습니다.

김장을 마친 저녁, 강 씨는 박 씨와 함께 배추를 다 뽑아낸 밭둑길을 걸었습니다. 산자락 너머로 붉은 노을이 번졌고, 첫서리 내린 들판 위로 경로당 굴뚝 연기가 낮게 퍼졌습니다. 강 씨는 허리를 쭉 펴고 오래도록 그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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