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4 15:23

“손자 학원비 1500만원 대줬는데..” 4년 뒤 시루떡 들고 간 학원에서 벌어진 일

맞벌이 자식을 대신해 손주를 키운 조부모에게 손주는 자식보다 더 애틋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형편이 빠듯해도 손주 앞으로 드는 돈만큼은 아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돈이 정말 손주에게 가고 있는지 확인해 보는 사람은 드뭅니다.

경상도 내륙의 한 소도시에 사는 김 씨는 올해 예순여섯입니다. 스무 해 동안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사로 일하다 6년 전 정년퇴직했습니다. 남편은 10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났고, 외동딸은 같은 동네에서 사위와 맞벌이를 합니다.

딸이 아들을 낳고 출산 휴가를 마치자, 김 씨는 오후 세 시면 급식실 앞치마를 벗고 어린이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손자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평일이면 외할머니 집에서 먹고 잤습니다.

손자가 숫자에 눈을 뜬 곳도 김 씨의 부엌이었습니다. 김 씨는 저녁마다 급식실에서 하던 대로 식수 인원과 재료 양을 수첩에 셈했고, 일곱 살 손자는 그 옆에 붙어 앉아 물었습니다. “할머니, 오백 명이 콩나물을 오십 그램씩 먹으면 몇 킬로예요?” “스물다섯 킬로다. 우리 강아지 몸무게만 하네.”

손자는 말수가 적은 대신 쪽지를 잘 남겼습니다. 김 씨가 새벽같이 출근하고 나면 냉장고 문에 삐뚤빼뚤한 글씨가 붙어 있었습니다. ‘할머니 오늘도 밥 많이 하세요. 힘내세요.’ 김 씨는 그 쪽지들을 버리지 못하고 과자 깡통에 모아 두었습니다.

4년 전 봄, 딸이 퇴근길에 찾아와 머뭇거렸습니다. “엄마, 담임 선생님이 애가 수학 머리가 있다고 학원을 보내 보래요. 근데 한 달에 30만 원이라…” 김 씨는 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건 내가 대마. 그 애 셈은 내 수첩에서 배운 기다.”

연금만으로는 빠듯해서 김 씨는 시장 골목 국숫집 주방에 오전 일을 나갔습니다. 매달 25일이면 하얀 봉투에 30만 원을 넣어 딸에게 건넸고, 방학 특강이 있는 달에는 몇만 원을 더 얹었습니다. 그렇게 4년 동안 건넨 돈이 1,500만 원이었습니다.

그사이 손자는 부모 집으로 돌아갔고, 김 씨는 주말마다 반찬을 싸 들고 딸네를 찾았습니다. 2년 전 사위가 커다란 새 차를 뽑았을 때 김 씨가 “차 값이 만만찮을 텐데” 하고 걱정하자, 딸은 “엄마는 신경 쓰지 마요” 하며 말을 잘랐습니다.

손자도 어딘가 달라졌습니다. 학원 이야기를 물으면 “잘 다녀요” 한마디로 끝내고 눈을 피했습니다. 밤 열 시가 다 되어 돌아오는 손자의 가방은 늘 책으로 불룩했습니다. 김 씨는 사춘기려니 하며 서운한 마음을 삼켰습니다.

지난겨울, 중학생이 된 손자가 처음 치른 기말고사에서 전 과목 만점을 받았습니다. 학년에서 1등이라는 소식에 김 씨는 전화기를 붙든 채 울었습니다. “그냥 운이 좋았어요, 할머니.” 손자의 목소리는 이상하리만치 담담했습니다.

이튿날 새벽, 김 씨는 시장 떡집에 팥고물을 두툼하게 올린 시루떡 한 말을 맞췄습니다. 김이 오르는 떡을 상자 세 개에 나눠 담으면서, 4년 동안 손자를 가르쳐 준 선생님들께 꼭 인사를 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학원은 큰길가 약국 건물 2층에 있었습니다.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계단을 오르는 동안 상자 틈으로 따뜻한 김이 새어 나왔습니다. 김 씨는 안내 데스크에 상자를 내려놓고 허리를 숙였습니다. “우리 손자가 이번에 1등을 했습니다. 다 선생님들 덕분이라 떡이라도 좀…”

원장 최 씨는 반갑게 나왔다가 손자 이름을 듣고 컴퓨터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고는 난처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어머님, 그 학생은 2년 전에 그만뒀는데요. 5학년 겨울에 학생 어머님이 전화로 정리하셨어요.”

“그럴 리가요. 지난달에도 학원비를 줬는데요.” 최 원장은 잠시 망설이다 덧붙였습니다. “그 뒤로도 저녁마다 학원 앞을 지나가는 걸 봤어요. 늘 시립 도서관 쪽으로 가더라고요.” 김 씨는 떡 상자를 도로 품에 안고 계단을 내려왔습니다. 상자 끈을 쥔 손끝이 자꾸 떨렸습니다.

그날 저녁, 김 씨는 떡 상자를 든 채 딸네 아파트로 갔습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손자 방 책상 앞에 앉으니, 책장에는 표지가 해진 헌 문제집과 도서관 대출 영수증이 빼곡했습니다. 서랍을 열자 반으로 접힌 공책 종이 한 장이 나왔습니다.

냉장고에 붙어 있던 그 글씨가 조금 반듯해져 있었습니다. ‘할머니 돈, 엄마가 써서 죄송해요. 제가 공부로 꼭 갚을게요.’ 김 씨는 쪽지를 쥔 채 방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밤 아홉 시가 넘어 딸 부부가 들어왔습니다. 식탁 위 떡 상자를 본 딸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김 씨는 쪽지를 그 옆에 내려놓았습니다. “오늘 학원에 떡 돌리러 갔다. 원장이 2년 전에 그만뒀다 카더라.”

딸은 한참 말이 없다가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차 할부가 한 달에 70만 원이에요. 우리도 숨이 막혀서 그랬어요. 애가 혼자서도 1등 했으니 된 거잖아요.” 사위도 거들었습니다. “장모님, 어차피 저희 애 앞으로 주신 돈인데, 저희가 쓰나 애가 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김 씨는 쪽지를 사위 앞으로 밀었습니다. “마찬가지면 이 애가 이런 걸 왜 썼겠노. 초등학생이 2년 동안 이 할미 속상할까 봐 입 닫고 도서관 구석에서 혼자 공부했다. 너희가 차 할부를 갚는 동안, 이 애는 너희 빚을 갚고 있었던 기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고 어깨에 진눈깨비를 맞은 손자가 들어섰습니다. 식탁 위 쪽지를 본 손자는 메고 있던 가방을 떨어뜨렸습니다. “할머니, 엄마 아빠 혼내지 마세요. 저 진짜 괜찮았어요.” 딸은 그제야 고개를 떨구고 소리 죽여 울었고, 사위는 말없이 바닥만 내려다보았습니다.

김 씨는 손자를 끌어안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이제 봉투는 없다. 이 애한테 드는 돈은 내가 직접 낸다. 2년 치는 갚으라 안 할 테니, 그 돈만큼 이 애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라.” 학원보다 도서관이 좋다는 손자의 말에, 김 씨는 이튿날 손자와 서점에 가서 문제집을 함께 골랐습니다. 그리고 자기 이름으로 적금을 새로 들어 통장 겉장에 ‘손자 대학 등록금’이라고 적었습니다.

자식을 믿고 건넨 돈이라도 그 돈이 어디로 가는지는 가끔 눈으로 확인해 볼 일입니다. 자식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그래야 서로 정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알고, 많은 것을 혼자 견딥니다. 손주가 부쩍 말이 줄었다면 성적보다 먼저 그 아이의 하루를 물어봐 주세요.

올가을 김 씨는 보온병과 시루떡 한 덩이를 싸 들고 시립 도서관 앞 은행나무 길을 찾았습니다. 노랗게 물든 잎이 바람에 흩날려 벤치 위로 내려앉았고, 열람실 창가에는 책에 고개를 묻은 손자의 등이 보였습니다. 김 씨는 은행잎을 발끝으로 쓸어 모으며 손자가 공부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벤치에 앉아 기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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