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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사이의 돈은 셈이 잘 서지 않습니다. 한 이불을 덮고 자란 사이라 도와 달라는 말을 차마 외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돈 사이에 거짓말이 끼어들면 남에게 받은 상처보다 훨씬 깊게 남습니다.
서울 변두리 동네에 사는 장 씨는 올해 쉰아홉입니다. 동네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15년째 조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새벽 여섯 시 반에 출근해 커다란 솥에 국을 끓이고 수백 명분의 밥을 짓습니다. 팔뚝에는 화상 자국이 하나둘 늘었고, 손목은 밤마다 욱신거립니다. 남편은 인쇄소에서 정년퇴직한 뒤 아파트 경비 일을 하고, 외동딸은 결혼해 지방에서 삽니다.
장 씨는 사 남매의 맏이입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시장에서 채소 좌판을 했고, 장 씨는 열두 살 때부터 동생들 밥을 지었습니다.
여섯 살 아래 남동생은 유난히 큰누나를 따랐습니다. 장 씨는 열일곱에 봉제공장에 들어가 받은 월급으로 동생의 고등학교 등록금을 댔습니다. 동생은 군대 가던 날 정류장에서 울며 말했습니다. “누나, 내가 나중에 꼭 갚을게.”
어머니가 말년에 치매를 앓았을 때 병원을 오가며 기저귀를 갈아 드린 사람도 장 씨였습니다. 동생은 인테리어 자재 납품 일이 바쁘다며 명절에나 얼굴을 비쳤습니다. 그래도 장 씨는 사업하는 동생이 어디 가서 기죽지 않기만을 바랐습니다.
4년 전 봄, 동생이 귤 한 상자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누나, 큰 현장을 하나 땄는데 자재 대금이 모자라. 아는 사장님한테 4,000만 원을 빌리기로 했는데 보증인이 있어야 한대. 이름만 올려 주면 내가 다 알아서 갚을게.”
남편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보증은 형제끼리도 서는 게 아니라고 했소.” 장 씨는 차용증의 보증인 칸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그러다 끝내 도장을 찍었습니다. 업어 키운 동생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1년쯤 지나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누나, 나 부도났어. 거래처가 줄줄이 넘어가서 버틸 수가 없었어. 미안해.” 그 뒤로 동생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독촉장은 장 씨 집으로 날아왔습니다.
장 씨는 급식실 월급에서 매달 120만 원씩 떼어 빚을 갚았습니다. 일이 없는 방학이면 반찬가게 설거지 일을 따로 나갔고, 딸네 보내던 김장 김치도 양을 줄였습니다. 그렇게 꼬박 3년 동안 이자까지 4,000만 원이 넘는 돈을 다 갚았습니다.
그사이 어머니 제사도 장 씨가 맡게 되었습니다. 동생이 형편이 어렵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제사 비용을 나누자는 말을 꺼내자 둘째 여동생이 웃으며 넘겼습니다. “큰언니는 형부 연금도 있고 원래 여유 있잖아.” 장 씨는 그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몰라 속으로만 삭였습니다.
올해 시월, 어머니 기일이 돌아왔습니다. 저녁부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장 씨네 좁은 거실에 제사상이 차려졌습니다. 전날 밤 장 씨가 부친 동그랑땡과, 어머니가 생전에 좋아하던 무나물이 영정 앞에 놓였습니다. 남동생 내외와 대학생 조카, 둘째 여동생 내외, 막내 여동생이 모였습니다.
제사를 마치고 둘러앉아 음복을 할 때였습니다. 휴대폰을 보던 조카가 무심코 말했습니다. “엄마, 상가 세 놓은 거 이번 달부터 월세 들어온대. 부동산에서 문자 왔어.”
올케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동생은 들고 있던 술잔을 슬그머니 내려놓았습니다. 막내 여동생이 물었습니다. “무슨 상가?”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막내는 그 자리에서 휴대폰으로 등기부를 띄웠습니다.
“올케 이름으로 돼 있네. 날짜가… 오빠가 부도났다고 한 그해야. 부도나기 석 달 전.”
거실이 조용해졌습니다. 창밖의 빗소리만 들렸습니다. 장 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럼 그 빚은… 처음부터 나한테 넘길 생각이었니?”
동생은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누나, 그때 다 날아가게 생겨서 상가라도 지키려고… 누나는 어떻게든 갚을 사람이라서….”
올케가 말을 끊었습니다. “형님, 그 상가는 제 돈으로 산 거예요. 이 사람 사업하고는 상관없어요.” 막내 여동생이 되물었습니다. “언니가 그 큰돈이 어디서 났는데?” 올케는 입을 다문 채 끝까지 고개를 돌렸습니다.
장 씨는 둘째 여동생을 바라보았습니다. 둘째는 눈을 피했습니다. “작년에 오빠네 차 바꾼 거 보고 좀 이상하다 싶긴 했어. 그런데 오빠가 큰언니는 여유 있으니까 괜찮다고 해서….” 그 말을 퍼뜨린 사람이 동생이었다는 것을 장 씨는 그제야 알았습니다. 막내도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언니, 미안해. 나도 낌새는 챘는데 집안 시끄러워질까 봐 말을 못 했어.”
장 씨는 한참 동안 어머니 영정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대신 갚은 돈은 너한테 돌려달라고 할 수 있는 돈이다. 그 월세에서 매달 갚아라. 상가가 누구 돈으로 산 건지는 따져 보면 나올 일이니, 그건 올케가 알아서 하고. 그리고 내년부터 어머니 제사는 네가 모셔라. 아들이 모셔야 한다고 어머니가 늘 그러셨다.”
동생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장 씨는 여동생들에게도 말했습니다. “너희를 탓하지는 않겠다. 그래도 다음에는 모른 척하지 마라.”
며칠 뒤 장 씨의 통장에 동생 이름으로 첫 돈이 들어왔습니다. [누나, 미안해. 다 갚을게.] 짧은 문자가 함께 왔습니다. 장 씨는 답장 대신 그 문자를 오래 들여다보았습니다.
형제 사이의 보증은 정으로 서지만, 빚은 결국 도장 찍은 사람 몫으로 남습니다. 가족일수록 돈은 계좌로 주고받고 기록을 남겨 두세요. 그것은 정을 아끼는 일이지 정을 끊는 일이 아닙니다.
알면서 입을 다무는 것도 한쪽 편을 드는 일입니다. 누군가 혼자 짐을 지고 있다면 집안이 조금 시끄러워지더라도 먼저 말해 주세요.
첫 추위가 찾아온 날, 장 씨는 급식실 일을 마치고 남편과 함께 학교 뒷길을 걸었습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발밑에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남편이 장 씨의 손을 잡아 외투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두 사람은 시장 입구 붕어빵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김이 오르는 봉지를 나눠 들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