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WN 뉴스 · 2026.11.05 06:56

“사돈 수술비 1500만원 대줬는데..” 5년 뒤 칠순 잔치에서 받은 통장에 울었다

자식을 혼인시키고 나면 사돈댁은 가깝고도 어려운 사이가 됩니다. 마음으로는 한 식구라 여겨도, 돈이 한 번 오가고 나면 고마움보다 서먹함이 먼저 자리 잡기 쉽습니다. 좋은 뜻으로 내민 손이 오히려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도 적지 않습니다.

경기도 변두리 도시의 오래된 재래시장에서 반찬가게를 하는 강 씨는 올해 예순둘입니다. 마흔 줄에 남편을 떠나보낸 뒤 시장 골목 끝 두 평 남짓한 가게에서 스물두 해째 나물을 무치고 장아찌를 담가 왔습니다. 외아들은 서른여섯으로 물류 회사에 다니고, 며느리와 일곱 살 손녀를 두고 있습니다.

사돈은 며느리의 친정아버지입니다. 일찍 상처한 뒤 동네 철물점을 하며 남매를 혼자 키운 사람이었습니다. 상견례 날 사돈은 식당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들어와 고개부터 숙였습니다. “저희가 형편이 넉넉지 못해 예단도 제대로 못 할 것 같습니다.” 강 씨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사돈어른, 저도 시장에서 반찬 파는 사람입니다. 그런 거 없이 애들만 잘 살면 됩니다.”

그 뒤로 사돈은 가끔 시장에 들러 반찬을 사 갔습니다. 강 씨가 그냥 가져가라 해도 꼭 만 원짜리를 계산대에 놓고 갔습니다. 손녀가 태어난 해에는 철물점 뒤에서 나무를 깎아 만든 작은 흔들의자를 들고 왔습니다. 말수는 적어도 셈이 바른 사람이라고 강 씨는 생각했습니다.

일이 생긴 건 5년 전 초봄이었습니다. 사돈이 철물점에서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졌습니다. 심장 혈관이 막혀 수술을 서둘러야 한다는 진단이었습니다. 건강보험으로 많은 부분이 처리된다 해도 입원비와 간병비, 몇 달 문을 닫아야 할 가게 사정까지 생각하면 큰돈이 필요했습니다. 사돈의 아들도 사업을 접고 빚을 갚는 중이라 손을 쓸 형편이 못 되었습니다.

강 씨는 병원 복도에서 혼자 우는 며느리를 보고 그날 저녁 은행에 갔습니다. 새벽 네 시에 나와 나물을 다듬어 번 돈을 하루 만 원, 이만 원씩 부어 온 적금이었습니다. 언젠가 아들 집 대출에 보태려던 돈이었습니다. 강 씨는 1,500만 원을 찾아 사돈의 아들에게 건넸습니다. “수술비로 쓰세요. 갚을 생각은 하지 마시고요.”

그런데 그 일로 집안이 뒤집혔습니다. 뒤늦게 알게 된 아들이 가게로 찾아와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엄마, 그 돈 우리 집 대출에 보탠다던 돈이잖아요. 왜 우리 돈을 처가에 써요?” 강 씨가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그럼 어쩌니” 하고 맞서자 아들은 가게 문을 거칠게 닫고 나갔습니다.

며칠 뒤에는 며느리가 찾아왔습니다. 눈가가 붉게 부어 있었습니다. “어머님, 저희 아버지 그런 동정 필요 없으세요. 다음부터는 이러지 마세요.” 며느리는 그 말만 남기고 울면서 시장 골목을 빠져나갔습니다. 강 씨는 들고 있던 나물 바구니를 한참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그 뒤 5년은 길었습니다. 아들 내외는 명절에만 잠깐 들렀다 갔고, 며느리는 꼭 필요한 말만 했습니다. 손녀가 “할머니 반찬 맛있다”고 할 때만 집 안에 웃음이 돌았습니다. 사돈에게서 온 연락은 수술이 잘 끝났다는 짧은 문자 한 통이 전부였습니다. 강 씨는 괜한 일을 했나 싶어 가게 셔터를 내린 뒤에도 한참씩 앉아 있곤 했습니다.

올해 시월, 사돈의 칠순 소식이 왔습니다. 사돈의 아들이 직접 전화를 걸어 꼭 와 주셨으면 한다고 했습니다. 강 씨는 몇 번을 망설이다 아들 차 뒷자리에 올랐습니다. 가는 내내 아들도 며느리도 말이 없었습니다.

잔치는 동네 뷔페식당의 작은 연회장에서 열렸습니다. 비가 그친 오후라 창밖 은행나무 잎이 젖은 채 반짝였습니다. 강 씨는 맨 끝 원탁에 앉아 떡 한 조각만 만지작거렸습니다. 5년 만에 본 사돈은 머리가 하얗게 셌지만 얼굴빛은 오히려 좋아 보였습니다.

케이크 촛불을 끈 뒤 사돈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오늘 꼭 모셔야 할 분이 계십니다. 사부인, 앞으로 좀 나와 주시겠습니까.” 하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강 씨에게 쏠렸습니다. 강 씨는 영문도 모른 채 단상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사돈은 양복 안주머니에서 모서리가 닳은 통장 한 권과 하얀 봉투를 꺼냈습니다. “5년 전 제가 죽을 뻔했을 때 이분이 수술비를 대 주셨습니다. 그 돈 덕에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사돈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수술 끝나고 아파트 주차장 관리 일을 했습니다. 다달이 25만 원씩 넣었더니 지난달에 딱 1,500만 원이 찼습니다.”

강 씨가 펼친 통장에는 예순 줄의 입금 기록이 빼곡했습니다. 한 달도 거른 달이 없었습니다. 봉투 속 편지지에는 꾹꾹 눌러쓴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사부인, 그때 고맙다는 말을 못 했습니다.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사부인 덕에 손주 결혼하는 것까지 보게 됐습니다. 이 돈은 빚을 갚는 게 아니라 제 고마움입니다.]

그때 며느리가 단상으로 뛰어 올라왔습니다. 며느리는 강 씨의 두 손을 붙잡고 무너지듯 울었습니다. “어머님, 죄송해요. 그때 아버지가 어머님 돈 받았다고 밥도 못 드시고 우셨어요. 그게 너무 속상해서 어머님한테 모질게 굴었어요.” 강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며느리의 등만 쓸어내렸습니다. 연회장 뒤편에서는 아들이 고개를 숙인 채 눈가를 훔쳤습니다.

강 씨는 통장을 사돈 손에 다시 쥐여 주려 했지만 사돈은 끝내 받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온 강 씨는 그 돈을 손녀 몫으로 따로 모아 두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두 집안의 고마움이 함께 담긴 돈이니, 두 집안의 아이에게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의 마음은 주는 사람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무겁습니다. 고맙다는 말 대신 모진 말이 돌아왔다고 해서 그 마음까지 모질었던 것은 아닙니다. 부끄러움을 견딜 시간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정은 건네는 순간보다 기다려 주는 시간 속에서 익어 갑니다. 서운한 말 한마디에 문을 닫아걸지 않고 조용히 견딘 세월이 결국 두 집안을 다시 이어 주었습니다.

십일월 첫 주말, 시장 골목에 김장 배추가 산처럼 쌓였습니다. 강 씨의 반찬가게 앞에서는 며느리가 앞치마를 두르고 손님에게 깻잎장아찌를 담아 주었고, 그 옆 낮은 의자에는 사돈이 앉아 손녀에게 귤을 까 주고 있었습니다. 늦가을 햇살이 비닐 차양 틈으로 새어 들어와 세 사람의 어깨 위에 가만히 내려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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