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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친구 사이에서는 셈을 따지지 않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집니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사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빌려준 돈 이야기를 꺼내는 쪽이 오히려 죄인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서 씨는 올해 예순둘입니다. 충청도의 한 작은 도시에서 30년째 개인택시를 몰고 있습니다. 새벽 다섯 시에 차고를 나서서 밤 열 시가 넘어야 들어오는 날이 대부분입니다. 아내는 동네 반찬가게에서 일하고, 다 자란 아들과 딸은 각자 가정을 꾸려 수도권에 삽니다.
서 씨에게는 고향 산골 초등학교 동창인 최 씨가 있었습니다. 둘은 십 리 길을 같이 걸어 학교에 다녔고, 여름이면 함께 냇가에서 멱을 감았습니다. 열 살 무렵 서 씨가 불어난 냇물에 휩쓸렸을 때 바짓단을 붙잡아 끌어낸 사람이 최 씨였습니다. 서 씨는 그 일을 평생 갚아야 할 빚처럼 여겼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서 씨는 최 씨 집안의 일이라면 빠지는 법이 없었습니다. 최 씨의 결혼식과 부모님 두 분의 장례, 아들딸의 혼사와 손주 돌잔치까지 30년 동안 봉투를 들고 찾아갔습니다. 서 씨의 낡은 수첩에는 날짜와 금액이 한 줄씩 적혀 있었습니다.
최 씨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서 씨는 사흘 내내 영업을 접고 빈소를 지켰습니다. 사흘치 벌이가 그대로 날아갔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반면 서 씨 아버지 장례 때 최 씨는 바쁘다며 전화 한 통으로 대신했습니다. 서 씨는 그럴 수도 있다며 넘겼습니다.
12년 전 봄, 최 씨가 서 씨의 택시를 불러 탔습니다. 뒷좌석에서 한참 창밖만 보던 최 씨가 입을 열었습니다. “친구야, 고깃집을 하나 차리려는데 보증금이 2,500만 원 모자라. 은행은 더 안 빌려준다네. 장사 자리 잡으면 1년 안에 갚을게.”
그 돈은 서 씨가 택시를 바꾸려고 5년 동안 부어 온 적금이었습니다. 아내는 차용증이라도 받아 두라고 했습니다. 서 씨가 조심스럽게 그 말을 꺼내자 최 씨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우리 사이에 무슨 종이 쪼가리냐. 나 못 믿어?” 서 씨는 적금을 깨서 돈을 보냈고, 십 년 넘은 택시를 몇 해 더 몰기로 했습니다.
고깃집은 생각보다 장사가 잘되었습니다. 점심때면 줄이 섰고, 몇 해 뒤에는 최 씨가 큰 승용차를 새로 뽑았다는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하지만 돈 이야기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서 씨가 넌지시 물으면 대답은 늘 같았습니다. “요즘 고깃값이 올라서 남는 게 없다. 조금만 기다려.” 서 씨는 더 묻지 못했습니다. 친구에게 빚 독촉하는 사람이 되기 싫었습니다. 그사이 운전석에 오래 앉은 서 씨의 허리는 점점 굳어 갔습니다.
올가을, 고향 동창들이 환갑 기념 동창회를 열었습니다. 장소는 최 씨의 고깃집이었습니다. 10년째 동창회 총무를 맡아 온 서 씨는 회비를 미리 걷고 기념 수건과 꽃바구니를 챙겨 일찍 도착했습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스무 명 남짓 모인 자리는 화기애애했습니다. 불판 위에서 삼겹살이 익어 가고 소주잔이 몇 순배 돌았습니다. 그런데 최 씨가 내민 계산서를 본 서 씨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동창 모임이니 깎아 주겠다던 고깃값이 메뉴판 가격 그대로였고, 나오지도 않은 고기 다섯 인분이 더 붙어 있었습니다.
서 씨는 계산서를 내려놓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최 사장, 다섯 인분은 안 나온 것 같은데. 할인해 준다고도 하지 않았나.” 그러자 술기운이 오른 최 씨가 서 씨를 내려다보았습니다. “택시나 모는 놈이 뭘 그렇게 따져. 몇 만 원 가지고.”
“따질 건 따져야지. 다들 낸 회비인데.” 서 씨가 말하자 최 씨는 동창들을 둘러보며 비웃었습니다. “그럼 그 2,500은? 그건 네가 투자한 거지, 빌려준 거냐? 장사 잘되니까 이제 와서 배 아파?”
몇몇 동창이 킥킥 웃었습니다. 누군가 작은 소리로 “호구가 웬일로 따지네”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서 씨는 손에 든 계산서가 떨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불판에서 고기 타는 냄새가 났지만 아무도 집게를 들지 않았습니다.
서 씨는 회비 봉투를 탁자에 올려놓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처마 끝에서 빗물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뒤따라 나온 동창 한 씨가 우산을 씌워 주며 머뭇거리다 말했습니다. “이제라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쟤는 처음부터 그 돈 갚을 생각이 없었어. 술만 마시면 ‘서 씨는 말만 하면 지갑 여는 사람’이라고 떠들었고, 애들끼리는 너를 ‘돈 대 주는 호구’라고 불렀어. 말리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날 밤 서 씨는 식탁에 앉아 낡은 수첩을 펼쳤습니다. 30년 치 부조 기록을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다시 더하니 432만 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가슴을 짓누른 것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오랫동안 웃음거리로 살아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내가 보리차 한 잔을 내려놓고 남편의 손등을 덮었습니다. “당신이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니에요. 사람을 믿은 거지.” 서 씨는 오래도록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서 씨는 마음을 정했습니다. 동창회 단체 대화방에 그날의 회비 내역과 남은 돈을 한 줄도 빼지 않고 올렸습니다. 그리고 10년 맡아 온 총무 자리를 내려놓고, 남은 회비를 다음 총무에게 넘긴 뒤 대화방을 나왔습니다.
최 씨에게는 짧은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 돈은 투자라고 하니 그렇게 알겠다. 다만 오늘부로 우리 사이도 정리하자. 앞으로 너희 집 경조사에 나는 가지 않는다.” 답장은 오지 않았습니다.
서 씨는 수첩 마지막 줄에 ‘정리’ 두 글자를 적었습니다. 그동안 남의 경조사로 빠져나가던 돈은 이제 아내와 자신을 위해 쓰기로 했습니다. 미뤄 두었던 허리 치료도 다음 주로 예약을 잡았습니다.
오랜 인연일수록 돈 앞에서 선을 긋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정으로 건넨 돈이 상대에게는 당연한 것이 되고, 끝내 업신여김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줄 때 차용증 한 장을 받아 두는 것은 의심이 아니라 그 우정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나를 함부로 대하는 관계를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붙들고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내 수고와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남은 시간을 쓰는 것이 늦게라도 나를 아끼는 길입니다.
11월 첫 주말, 서 씨는 택시 지붕의 표시등을 끄고 아내를 조수석에 태웠습니다. 30년 동안 남을 태우던 차로 처음 아내만을 위해 달린 길이었습니다. 서해 작은 포구에 닿자 수평선 위로 노을이 번졌고, 부부는 갓 구운 대하를 나눠 먹으며 오래도록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